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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Dec 07. 2021

바다는 상처를 닦아내 아픔을 안고 흐른다

영화 그리고 소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바다여야만 하는 사람과 바다든 육지든 상관없는 사람이 만날 때, 그 관계의 끝은 으레 후자가 쓰기 마련이다. 바다여야만 하는 조제는 땅에서 포효하는 호랑이를 두려워하지만 자유롭게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며 편안해한다. 이와 달리 츠네오는 호랑이를 무서워하지도 물고기를 편애하지도 않으니 육지든 바다든 상관없다. 그래서 츠네오의 이별 통보로 둘의 관계는 끝이 난다.


  조제에게 호랑이가 존재하는 육지는 차가운 현실이다. 다리가 불편한 조제가 외롭게 견뎌내야 했던 장애인을 향한 차별적 시선과 이를 피해 도망치며 포기한 모든 것이다. 츠네오와 함께 있을 때 조제는 호랑이에 홀로 맞서지 않아도 된다. 두려울 땐 얼마든지 츠네오에게 기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있단 이유만으로 용기를 얻는다. 그럼에도 조제는 육지보다는 물 속에서 부유하며 살기를 선택한다. 조제는 츠네오와 세상을 마주하기보다 세상을 피해 숨어 들어간 물 속에 츠네오가 동참하기를 바라고, 츠네오는 이런 조제의 방식을 따르며 둘만의 세상에 골몰한다.


  물속엔 호랑이가 없다. 다리도 중요하지 않다. 츠네오와 조제가 세상의 차별이나 선천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둘만의 안식처다. 조제는 현실에서 떨어져 나와, 즉 현실과의 작별인 죽음을 맞이해 오로지 츠네오와 부유함으로써 비로소 행복하다고 느낀다. 바다는 조제의 상처를 닦아내 아픔을 안고 흐른다. 물고기는 비록 다리는 없지만 미끄러운 비늘을 씻으며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조제와 츠네오가 함께 있는 한 둘이 어디에 있든 그 곳은 바다다.


  한편, 조제와 다르게 츠네오는 호랑이와 물고기를 보면서도 큰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호랑이와 물고기에 판이하게 반응하는 조제를 바라보며 기뻐하거나 걱정할 뿐이다. 츠네오는 육지와 바다, 자유롭게 그 두 세계를 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제를 만난 뒤로도 그는 조제가 존재하지 않는 육지라 할 수 있는 대학생활을 충실히 해내고 다른 여자를 만나거나 직업을 구한다. 그에게는 조제가 있는 바다가 큰 의미를 갖는 만큼 현실이 있는 육지도 중요하다. 조제는 츠네오 없이 육지에서 살아갈 수 없지만 츠네오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조제가 바다에서 헤엄치듯 살기를 원하기에 함께 머물기를 택할 뿐이다.


  이 둘 사이의 공통된 감정을 오직 사랑이라 칭하기엔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는 관계처럼 느껴진다. 조제는 츠네오가 있어야만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지만 츠네오는 조제가 일상에서 사라져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굳이 츠네오의 어떤 결핍을 찾아내보자면 그에게는 외롭고 가난한 대학생 시절이 있었다. 그때 조제의 할머니가 차려주던 따뜻한 밥과 함께 밥을 먹으며 싹튼 정, 그리고 자꾸만 돕고 싶은 조제를 향한 시선이 조제와의 연결고리다. 하지만 당시의 기억이 좋아 조제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건 동정과 의리가 뒤섞인 별개의 감정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이 둘의 관계를 잇는 감정은 사랑 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형태의 다른 감정, 이를테면 동정이나 연민 혹은 동경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에서 이 둘이 행복한 생활을 지속하며 결말을 맺는 것과 달리, 2003년 개봉한 영화에서는 츠네오가 조제를 떠나며 끝이 난다. 이는 기울어진 관계가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연인 관계를 지속하려면 어떤 감정보다도 두 사람이 공유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교집합이 남아있어야 한다. 기울어진 관계에서는 보통 더 적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사라질 때 그 관계는 끝이 난다. 교집합의 크기가 줄어들고 결국엔 혼자만의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제는 홀로 바다에 남았고, 츠네오는 다시 육지로 돌아갔다. 역시 바다여야만 하는 사람과 바다든 육지든 상관없는 사람이 만날 때, 그 관계의 끝은 으레 후자가 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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