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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Aug 08. 2021

삶은 언제나 펼치지 않은 책과 같다

매트 헤이그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인생과 마찬가지로 체스에서는 가능성이 모든 것의 기본이야.



  책은 읽어봐야 무슨 책인지 알 수 있다. 삶도 똑같다. 살아봐야 아는 법이다. 표지만 보고서는 무슨 책인지 이야기할 수 없듯, 삶 역시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살아보지 않은 사람과 살아본 사람의 허무는 같은 허무여도 방향이 다르다.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수동적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지만 살아본 사람은 능동적 허무주의에 가까운 태도를 갖게 된다. 삶이 이해의 대상이 아니란 걸 깨닫고 난 뒤 전자는 절망하지만 후자는 그 진실을 각오하고 살아낸다. 삶은 그 지점에서 달라지는 법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좀 더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여러 삶을 선택해 살아본 뒤에야 가장 돌아가고 싶은 삶이 가장 도망치고 싶었던 최초의 삶임을 깨닫는 '노라'는 '무엇을 보는가' 보다 '어떻게 보는가'가 더 중요하단 깨달음을 얻는다. 삶을 관통하는 보편성이 감정의 풍부함에 있다면, 마냥 행복하고 평온하기만 한 삶은 불가능하단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기쁨은 슬픔의 대구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행복 역시 불행의 역으로서 존재하는 감정이다. 슬퍼보지 않고 불행해보지 않은 사람은 기쁨과 행복을 모르니 '기쁨과 행복으로만 가득한 삶'은 존재할 수 없는 형태의 삶인 셈이다. 삶의 외연은 그 풍부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확장될 수 있다. 삶의 곳곳엔 언제나 그 확장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우린 그저 그 가능성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삶은 때때로 (혹은 자주) 불만족스럽기에 잠재력이나 가능성 따위를 계속해서 기억해내기는 어렵다. 현실은 허무할 정도로 의미 없이 지루하고 성취가 없는 과정은 무력감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그 무력함이 일시적 상태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굳어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불행한 현실 속에 갇힐지도 모른단 점이다. 그런 두려움이 엄습할 때, 우린 삶의 가능성을 찬찬히 탐색해봐야 한다. 문제점을 인지했을 때야말로 변화하기 가장 좋은 때이기 때문이다. 우린 '노라'처럼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삶을 직접 살아볼 순 없지만, 최소한 시도해볼 수는 있다. 내가 삶에 질린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유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지, 제거할 수 없다면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함께 살아나갈 수 있는지 고민한 뒤, 삶의 방식을 수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삶을 돌볼 때, 우린 비로소 삶을 살아낼 수 있다.


  이는 삶의 기본 구동 원리다. 현재의 삶이 실망스럽다면 바꾸면 된다. 다만, 다른 길을 찾아 나가는 용기와 이를 현실에 구현해내는 힘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나 내가 내리는 '선택'에 불과하다. '선택의 결과'는 내 힘 밖의 영역이다. 그래서 삶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지만, 그것이야말로 삶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삶을 즐기는 미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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