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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Jan 14. 2022

손톱만 한 달이 차오르면, 비로소 어른이 된다

폴 오스터 - 『달의 궁전』

일단 북미 대륙 끝에 이르자 어떤 중요한 문제가 풀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대답은 이미 내 발걸음으로 틀이 잡혀 있었고, 나는 자신을 뒤에 남겼다는 것, 내가 이제는 예전의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계속 걷기만 하면 되었다.


제도권 내로 편입된다는 건 자신이 '예전의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변화의 완수가 선행돼야 편입할 수 있단 뜻이다. 그러니 편입 과정은 그야말로 고군분투일 수밖에 없다. 날로 높아지는 취업 경쟁률 때문에 요즘 청년들은 더 고생인 것 같다. (내가 청년이라 하는 소리가 아니라 취업준비생들은 정말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이 희망적인 위로가 되지 않을까.


대학을 졸업한 후 방황기를 맞아 노숙을 하거나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던 포그는 자신을 예전에 고용했던 노인이 실은 친할아버지임을, 그리고 어머니의 교수인 줄로만 알았던 이가 실은 친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 사실인가. 심지어 어떤 이도 포그에게 의도를 갖고 접근하지 않았으므로 포그를 이끈 건 오로지 우연이었다. 이러한 전개가 관점에 따라서는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연이 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은 필연의 또다른 이름이다. 폴 오스터는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상황을 전개하면서, 여러 번 겹치는 우연을 어떻게 필연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포그는 자신의 부계가족을 만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임종을 맞이하고 갖고 있던 돈을 모두 도둑맞는다. 경제적 형편도, 어떤 인간관계도 결코 예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포그는 차오르는 달을 보며 자신이 무언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여기서 이 소설의 필연이 빛을 발한다. 불행하고 음울하다고만 생각했던 우연이 다른 의미를 환기하는 순간이다. 지난한 곤혹을 겪지 않았더라면 포그는 달의 의미를 끝내 해석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건 여전히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단 뜻일 테니, 과거의 가혹했던 우연은 지금 이 찬란한 필연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삶은 알 수 없는 우연이 만나 빚어내는 필연으로 이어지고, 미래를 볼 수 없는 인간은 그 필연성을 인지하고 나서야 과거에 자신이 통과했던 우연의 가치를 겨우 헤아릴 수 있다. 요컨대, 여태 포그에게 닥쳤던 여러 곤혹은 그를 세상으로 인도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누구에게든 삶에 이런 순간이 온다. 지난 곤혹을 새로운 관점으로 읽을  있다는  비로소 자리를 잡을 준비가, 어른이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가 빛나는 달이라는  아닐까. 손톱만  달은 자신이 달인지도 모른  가느다란 빛을 발산할 뿐이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살을 채운 달은 동그랗게 차올라 충만하게 빛난다. 그렇게 자리를 잡으면 지난 고군분투가 마냥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테다. 폴 오스터는 그런  시선으로 삶을 조망할  얻을  있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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