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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Jan 12. 2022

사랑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려면 '이야기'가 필요하다

아니 에르노 - 『단순한 열정』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사랑이 무엇인지 답하려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구체적인 사건이 나의 행위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말하지 않고서는 사랑의 핵심에 다다를 수 없으며, 개인적인 체험을 넘어서는 수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한 사람이 경험한 사랑만이 그 사람이 설명할 수 있는 사랑의 진실에 가장 가깝다. 사랑은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사랑의 정의는 사랑을 경험한 사람의 수 만큼이나 다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므로 사랑의 정의는 끝내 확정할 수 없으며 그 불확정성에 기반한 구체적인 서사로써만 개인은 타인의 사랑에 비로소 공감할 수 있다. 이는 사랑을 주제로 하는 소설, 영화, 드라마가 이미 산재해 있음에도 끊임없이 폭넓게 소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조금 충격적일지도 모르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아니 에르노는 사실적이고도 세밀하게 풀어나간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소설의 초점은 불륜 행위를 함으로써 겪는 죄책감보다는 불륜에서 발견한 사랑의 진실에 맞춰져 있다. 그 사랑의 진실은 오히려 불륜이라는 점에서 더 배가된다. 보고 싶을 때마다 만날 수도 없으며 바깥에서 당당하게 사랑을 드러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은밀해야 하며 어느 정도 은폐되어야 한다는 금기 때문에 화자의 애타는 마음은 더 커지고 간헐적인 포상처럼 주어지는 제한된 만남은 화자의 생활을 뒤흔든다. 함께이지 않을 때조차 생활의 만면에서 애인을 찾고 기억하고 회상하는 화자는 마치 모든 만남의 끝을 거대한 상실처럼 받아들이고 다음 만남이 성사될 때까지 이를 애도하고 있는 듯하다. 


그 설렘과 질투의 미묘한 진동, 사랑을 나눌 때의 충만함과 사랑이 끝난 뒤의 절망감을 사실적인 필치로 그린다는 점에서 독자는 작가의 사랑에 공감하면서도 경악한다.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애인을 중심으로 흔들리는 일상에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이러한 내용이 작가의 불륜 경험담이란 걸 깨달을 때마다 이토록 사실적이고 냉정하게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고 마는 것이다.


이는 위선적인 도덕률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세계관이 오토픽션이라는 형식과 사랑이라는 소재를 만나 어떻게 재현되는지 보여준다. 아니 에르노는 계급적 차이가 어떻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다루는 글을 줄곧 써왔으나 <단순한 열정>을 발표하며 프랑스 문단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유명 작가가 연하남과 불륜 행위를 했고, 이러한 사실에 기반하여 소설을 창작했다는 점이 꽤 자극적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작가의 사생활을 파헤치려는 관음적인 시각으로만 평하기엔 무리가 있다. 작가의 사생활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려는 시각으로는 사랑의 유연한 진실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사랑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는지에 집중한다면 뻣뻣한 도덕률이 포착하지 못한 사랑의 잔인함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이는 그 사랑의 잔인함이 유명 작가의 위신을 어떻게 떨어뜨렸는지까지 나아가며 다시 작품에서 작가의 삶으로 나가야 한다는 논리로 순환하고 말지만, 이런 점이야말로 오토픽션만의 잠재성이라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 아니 에르노는 그 잠재성을 놀라우리만큼 냉엄하게 활용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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