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 『싯다르타』
"내게 유일한 관심사는 세계를 사랑하는 것, 세계를 경멸하지 않는 것, 세계와 나를 미워하지 않고, 세계와 나, 그리고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과 경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네."
늙은 싯다르타는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 고빈다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행자로서의 길을 내려놓고 세속의 삶을 택한 싯다르타가 수행하지 않고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저런 마음으로 삶을 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홀로 수행하는 일보다 실은 더 고된 일인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책은 싯다르타를 비롯해 진리를 얻기 위한 여러 삶의 태도를 제시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질문한다.
책의 주인공인 싯다르타는 브라만 계급으로 태어나 풍족하게 살다가 청년이 되어서는 수행자가 되려 했다. 그러나 구도하는 자세를 갖출수록 싯다르타는 수행하는 삶에 의문을 품고, 끝내 세속적인 도시로 가겠다고 결심한다.
"저는 오히려 모든 가르침과 모든 스승들을 떠나기 위해서, 그리하여 오로지 나 혼자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렇지 못하면 죽으려고 떠나는 것입니다."
이 도발적인 말을 붓다에게 남기고, 젊은 싯다르타는 도시로 떠난다. 그곳에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장사를 하며 돈을 버는 데 열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싯다르타는 문득 자신이 본래 목적으로부터 아주 멀어졌다는, 자신이 가장 경멸하던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때 촉망받던 예비 수행자였던 그가 돈과 술과 여자에 환장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삶에 한 번쯤은 이런 고민이 찾아오는 것 같다. 현실의 틀에 맞춰 다듬어놓은 현재 모습이 젊은 날의 순수한 모습으로부터 얼마나 달라졌는지 깨닫는 자각 말이다. 그런 자각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기 마련이다. 중요한 점은 그걸 깨닫고 나서, 깨달음을 말미암아 삶을 변화시키는 행동이 있느냐다. 사유를 실천하는 방식으로만 삶은 나아진다. 속물주의 근성이 들끓는 도시에서도 그런 태도를 갖추고 있다면 진리에 다가설 수 있다. 싯다르타는 그렇게 한다. 여태 번 돈을 모두 버리고 뱃사공이 된다.
뱃사공이 된 후, 싯다르타는 수많은 손님을 실으며 강의 소리를 듣는다. 그는 강의 소리를 들으며 인간의 탐욕과 충동과 허영이 어떻게 삶을 추동하는지 깨닫고, 자신이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다. 또, 예전에 사랑했던 여인을 만나고, 그녀가 낳은 (있는 줄도 몰랐던) 자신의 아들을 키우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큰 상처이자 행복인지 깨닫는다.
싯다르타는 젊은 자신이 했던 다짐 그대로, 삶을 살아내며 스스로 배웠다. 실험적인 삶을 택했던 싯다르타는 수행자의 삶보다 많은 파란을 겪었지만 그 속에 고통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체험으로 배웠다. 그런 깨달음은 고통 속에서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려고 했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열악한 삶의 조건에 관대해지려는 태도는 시야를 넓혀준다. 시야를 넓힐 때,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