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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Sep 06. 2022

남은 사랑의 무게를 헤아릴 때 알게 되는 것

김금희​​​​​​​ - 『​나의 사랑, 매기​​​​​​』

그러니까 사랑의 형식인 연애는 끝이 나지만 사랑이라고 하는 상태는 끝이 나지 않아서 미래가 현재의 무제한 연장인 것처럼 어쨌든 유지되리라는 것, 가능한 죽을 때까지 사랑하리라는 것.

(...)

미래는 현재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긴 현재일 뿐이야.



안재훈과 매기의 사랑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사랑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했던 것일까. 안재훈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자꾸 어긋나고 상대를 향한 모멸의 흔적을 남기게 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매기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냥 그것은 시작과 동시에 숙명처럼 가져갈 수밖에 없었던 슬픔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덜 사랑하거나 더 사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실패가 아니기 위해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안재훈과 매기의 사랑은 실패가 숙명이었기 때문이다. 깨달음과 실전엔 시차가 있다. 깨달음은 언제나 실전에 후행한다. 실전에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게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니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랑엔 연습 게임도 없고 오직 실전뿐인데 우린 얼마나 많은 실패와 실수를 답습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대가로 남은 슬픔은 얼마나 길게 이어지는 걸까. 소설 말미에서 혼자 남은 안재훈은 매기가 있는 제주로 가 이렇게 생각한다.

"장바구니 위로 어느 푸성귀의 푸른 잎이 보일 때마다, 비닐봉지를 묵직하게 누르는 야채의 부피감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심지어 당근도 자기 삶을 감당하고 있다고. (...) 그건 어디에도 미뤄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매기에게도 정권에게도 이 세상이나 어느 사랑에게도. 아무리 동산 수풀은 사라지고 장미꽃은 피어 만발하더라도, 모두 옛날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시간이 지나 나의 사랑, 매기가 백발이 다 된 이후라도."

필연적으로 사랑에 실패한다면, 어떻게 사랑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그 실패를 어떻게 감당해낼 것이냐는 질문만 남는다. 누구도 그 질문에 완벽한 답은 내리지 못하겠지만 그 질문을 멈추지 않을 때 비로소 깨달음이 찾아온다. 그렇게 뒤늦은 깨달음이 쌓일 때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 그러니 질문을 미루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질문의 무게만큼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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