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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Jan 26. 2021

6펜스의 세계에도 달빛이 스미기를

서머싯 몸 - 『달과 6펜스』

  6펜스의 세계엔 달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국가가 정한 교육을 눈치껏 따라 안정적인 삶의 판로를 마련하고 법제의 편안함에 기대 편리하게 산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자율적이라고 하나 그토록 단단한 이유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일수록 사회에 적응을 잘한다. 기초교육에서부터 정해진 답을 맞히기 위해 획일적 답안만을 고민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 자본주의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본의 향방을 쫓으며 그 논리에 자신을 껴맞추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개인의 개성은 쉽게 지워지고 끝내 권력, 명예, 돈을 좇는 초라한 노인이 남는다. 요즘의 상식으로 통용되는 대다수 도시민의 삶이다. 예전에 영국에서 사용되던 가장 낮은 화폐 단위인 6펜스는 달처럼 둥글고 빛나면서도 그 가치는 결국 자본으로밖에 환산될 수 없단 점에서 자신의 색을 지운 채 인습에 순응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서머싯 몸은 사교계와 세속적인 런던을 묘사하며 6펜스의 세계를 풍자하고 구체화한다.


  이에 반해 달의 세계는 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자신의 영혼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세계다. 영국에서 증권브로커로서의 안정적인 삶과 사교계를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스트릭랜드가 찾아 떠난 곳이다. 처음 스트릭랜드는 파리로 간다. 그곳에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영국을 떠나야 했다는 그는 사회의 상식선 수용을 거부하며 자신의 신념을 기판 삼아 고유의 예술관을 구축해 나간다. 이런 그의 모습에는 어딘가 모진 구석이 있다. 스트릭랜드는 아내가 굶어 죽든 말든 관심 없다고 말하며 가차 없이 떠나고, 자신을 사랑하던 스트로브의 아내가 자살을 할 때에도 초연하게 일관한다. 스트릭랜드에게 이들은 모두 사회의 인습을 따라 사는 어리석은 6펜스의 세계 속 사람들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그는 그들로부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라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기도 거부한다. 그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은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닌 오직 이러한 열정이기 때문에 그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비록 그는 죽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화가였지만 훗날 천재라고 불리며 역사에 기록된다. 아무도 가닿지 못했던 예술의 너머에 끝내 새로운 깃발을 꽂는다.


  충만한 영혼이 모인 달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제가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며 달의 세계는 고사하고 6펜스의 삶도 보존하기 힘들어진 현실이다. 서머싯 몸은 6펜스의 세계를 풍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6펜스의 세계를 비난할 수는 없다. 서로에게 의존하며 윤리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세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에 맞춰 자신을 영혼을 지워냈더라도 ‘약(弱)함'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사회구조에 굴복한 6펜스 속 세계의 사람들도 한번쯤 자신의 영혼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을 꿈꿔보지 않았을까. 이 책이 그런 사람들에게 틈을 열어줬으면 좋겠다. 달의 세계로 아주 넘어가 버릴 용기는 없지만 자신의 영혼을 두 손에 꼭 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트릭랜드의 삶을 엿보는 동안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그 세계에 푹 빠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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