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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Feb 24. 2021

제리는 니체를 만났을까

영화 <소울>

  사람은 삶의 목적을 찾는다. 굳이 개인적 차원에서의 추구가 아니더라도 학교는 학생들에게 꿈을 찾으라 강요하고 사회는 꿈 없이 돈과 명예 혹은 안정성을 좇는 MZ세대를 무력하다고 비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삶의 목적은 너무나 거대하고도 막연해 지난 몇 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미래를 그려보아도 아득하기만 하다. 삶의 목적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영화는 존재의 조건으로 불꽃을 제시한다. 모든 영혼은 자신만의 불꽃을 찾아야 비로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영혼22를 담당한 과거의 멘토들과 얼떨결에 멘토가 된 조는 모두 불꽃을 삶의 목적으로 정의하고 여러 직업 체험을 통해 영혼22가 흥미를 느낄만한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시선에서 보자면 삶의 목적이란 불꽃처럼 빛나는 재능을 십분 발휘해 해당 분야에서 직업적 성취을 거두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영혼22는 숱한 위인들과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했음에도 불꽃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던 중 영혼22와 조는 지구에 떨어져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다시 영혼들의 세계로 돌아온 뒤 어느새 영혼22의 불꽃이 완성됐음을 깨닫는다. 이에 조는 안내자인 제리에게 영혼22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길래 불꽃이 완성된 것인지 묻지만 제리는 코웃음을 친다. 멘토들은 불꽃을 일으키기 위해 삶의 목적이니 의미 따위를 찾아헤매지만 그건 모두 착각이라는 듯이. 마치 허상인 삶의 목표를 찾아헤매는 미물을 딱하게 굽어보는 허무주의자 니체처럼.

   니체는 삶에 아무런 목표도 의미도 없다고 말한다. 우연으로 이어지는 삶 속에서 목표에 지나치게 얽매이다간 삶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니체는 살아가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 몇번을 태어나더라도 지금처럼 살고 싶도록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이야기한다. 허무에 잠식당하는 수동적 허무주의가 아니라 삶의 고통과 기쁨을 인정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능동적 허무주의를 통해 삶을 긍정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삶 자체를 사랑하며 살아갈 때 우린 허무를 인정하며 삶의 의미를 자연스레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니체의 능동적 허무주의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와닿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영혼22의 불꽃이 생긴 과정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혼22는 비록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하지만 조의 몸으로 지구를 감각하며 분명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는 걷고 싶은대로 걸으며 이따금씩 하늘을 올려다보고 피자의 맛에 감동하거나 노래를 들으며 감격한다. 이런 영혼22에게 조는 말한다.

   "하늘을 보거나 걷는 건 목적이 아니야. 그냥 사는 거지."

   하지만 삶의 진정한 존재 조건은 바로 그런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몸의 감각이다. 스러져가는 육체로 온 감각을 열어 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살아있음의 증표다. 불꽃은 거창한 삶의 의미나 허상인 목표 따위를 찾았을 때가 아니라 삶의 순간에 제대로 몰두하여 감각하고 느낄 때 생긴다. 존재의 조건은 온통 살아있다는 감각 뿐이다. 현재에 집중해 제대로 느끼고 감각할 때 제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삶의 목적과 의미는 이를 갈구할 때보다 현재에 집중하여 살아갈 때 비로소 자연스레 드러난다. 꿈을 강요당하는 경쟁과열의 MZ세대에게 학교가 진정 가르쳐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삶의 본질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제리는 이런저런 성취와 허무를 맛본 조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묻는다. 조는 대답한다.

 "I don't know, but 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난 매 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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