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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ckypinkpiggy Jan 20. 2021

삶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을 당신에게

김금희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 中「깊이와 기울기」

  살아가며 때론 푸닥거리를 받아내야 한다. 삶은 우연이 엇겯은 실 몇 가닥에 불과하기 때문에 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며 이는 깊이와 기울기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상을 헤집어 놓는다. 그렇게 흔들리고 나면 방향을 잃은 채 방황하기도 하고 상처를 돌보느라 헤매기도 한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우린 그런 외로운 푸닥거리를 통해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단 점이다. 우연과, 돌이켜봐도 아프기만 한 푸닥거리와, 어느새 통과해 낸 몇 개의 지점으로 삶은 이어진다.


  소설은 가파도와 레지던스의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깊이와 기울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기라성은 가파도의 예술가를 위한 레지던스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기라성은 가파도의 앞바다에서 시체를 본 양 선장이 받아낸 푸닥거리에 대해 듣게 된다. 주민들은 양 선장에게 깊이와 기울기를 고려하지 않고 꼭 아프게 찌르길 의도한 것처럼 칼을 직각으로 깊숙이 들이밀었고, 양 선장은 파도에 쓸린 시체를 우연히 마주한 것뿐인데도 그 깊이와 기울기를 고려하지 않고 찌르는 행위가 생각보다 아팠다고 말한다.


  섬 주민의 농담이 으레 그렇듯 여운이 길수록 어딘가 묵직하게 짓누르는 마음을 한편에 두고 기라성은 잠시 서울에 간다. 서울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쓸려가며 혹은 거스르며 기라성은 양 선장이 말한 파도를 환기한다. 서울의 많은 사람들과 흔들거리는 불빛을 생경스레 바라보며 마치 양 선장처럼 모든 것이 과부하인 공간 속 깊이와 각도를 고려하지 않는 칼에 찔리는 기분을 경험한다. 각도와 기울기를 고려하지 않은 채 푹 찌르는 놈들 때문에 뒤에서 울었다고 농담하는 양 선장도, 서울의 인파 속에서 쓸려 내려가며 푸닥거리의 일종을 경험하는 주인공도 모두 외로워 보인다.


  그 외로움의 대치점에는 ‘르망’이 있다. 레지던스의 예술가들은 버려진 차였던 ‘르망’을 운행하기 위해 함께 수리한다. 이러한 행위는 그들을 한데 모아 결합시키고 고립된 개인에게 ‘르망의 운행’이라는 지향점을 제시한다. 파도에 마주한 배와 같은 처지로 각자도생하던 입주작가들은 그 지향점을 향해 함께 의기투합한다. 그 과정 속에서 개인은 결코 외롭지 않다. 지향점으로 함께 나아가는 개인이 곁에 있어 방향을 잃더라도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고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향점에 홀로 도달해내는 인물도 있다. 레지던스 거주 내내 작품의 방향을 잡지 못하던 기라성은 결국 레지던스 입주작가 결과 보고 전시회에 아무것도 제출하지 않는다. 그 뒤 전시회장을 찾은 기라성은 ‘르망의 운행’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은, 아무런 단체 생활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단체이기를 자처하는 '집단체’라는 작가가 전시한 작품을 마주한다. 소설은 여기서 아기의 이동을 돕는 ‘애기구덕’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이동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단체 생활에 참여하지 않았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과제 완수에 도달하는 '집단체'를 통해 개인의 항해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펼쳐갔던 작품 제작 방식을 기라성의 상상을 빌려 들려준다. 


  작품 말미에서 기라성은 모두가 가파도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동일한 결과였지만 그 누구도 어디에 닿지 않았다고 말하며 아직도 작중 인물이 모두 바닷속을 부유하는 중이란 점을 강조한다. 이는 기라성이 언젠가 또다시 푸닥거리를 받아내야 할 처지임을 암시하지만 ‘르망의 운행’이라는 지향점에 도달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항해에 더 낙관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요컨대 소설 속 주인공 어느 누구도 목적지라 할만한 곳에 닿진 못했지만 마치 해녀들이 바닷속 지점을 확인하며 물질을 하듯이, ‘집단체’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자신만의 지점을, 그리고 다른 작가들은 다 함께 ‘르망의 운행’을 완수하며 또 다른 지점을 통과했음을 시사한다. 이들의 항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깊이와 각도를 고려하지 않은 푸닥거리에 외롭다가도 자신만의 지점을 씩씩하게 통과해낼 것이다. 삶은 그렇게 여러 지점을 엮는 기다란 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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