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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방관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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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Apr 19. 2023

고장 난 시계는 하루에 두 번
답을 알려준다

방관일지 EP.2

"허락도 없이 내 이름을 부르던 녀석은, 끝까지 이기적이어서 허락도 없이 가버렸다."


    허락도 없이 내 이름을 부르던 녀석은, 끝까지 이기적이어서 허락도 없이 가버렸다. 


    이상한 녀석이었다. 나를 보고도 피하지 않던 녀석. 그 녀석은 홀로 색을 머금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았다. 날이 잔뜩 박힌 말을 뱉으면 내게 주먹을 날렸고, 실없는 소리를 하면 호탕하게 웃었다. 


    내 가슴팍에 달려 있던 이름표. 그게 녀석과 얽힌 악연의 시작이었다. 친구들과 떠들던 녀석은 나를 보게 되었고, 녀석이 가장 먼저 뱉은 말은 놀랍게도 내 이름이었다. 나는 서둘러 내 이름표를 가렸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그때부터였다. 그 녀석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불러댄 것이.


    편의상 그 녀석을 'D'로 가정하겠다. D는 정말 이상한 녀석이었다. 하루 종일 옆에 누군가를 끼고 다니며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니기 바쁜 녀석이었다. 조용히 앉아 있던 나를 건드리는 녀석이 성가시기도 했지만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반에 꼭 한 명씩 있는 두루두루 다 친하고 오지랖 넓은 녀석. 그런 녀석이었는데, 어째서인지 항상 D는 집에 갈 땐 혼자였었다. 나는 그런 D의 뒤를 바라보며,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D는 혼자 다닐 이유가 없는 녀석이었다. 학교에서 집도 가까웠고 친구도 많은 데다가 여기저기 들리는 것도 아니라 바로 집에 귀가하는 녀석이었다. 이때는 몰랐는데, 어쩌면 바로 집으로 가버리는 귀소본능 때문에 혼자 다닌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솔직히 D랑 내가 친했었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친했던 거 같은데 접점은 없고, 안 친했다고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쪽이 가까웠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D랑 친했고 그 이유는 아직까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 D랑 친해졌고, 그 후로도 여전히 D가 혼자 귀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그냥.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걷는 녀석의 뒷모습을 지키고 싶었다.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왜 D는 혼자였어야 했을까. 


    내겐 별명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대부분 소실되어서 희미하지만 그 별명만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별명을 들으면 지금도 그때의 기억들이 잠시나마 스친다. 어느 순간 대부분의 아이들이 날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좋은 뜻의 별명인 줄 알고 있었다. 진짜 뜻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단어 자체가 나쁜 단어는 아니었다. 확실한 건 내가 뜻을 알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 별명을 좋아했었고, 알고 난 후에도 별 동요 없이 그 별명에 응답했었다. 내가 대답을 안 한다고 달라질 건 없을 테니. 그들은 별명의 좋은 어감보다 조롱하기 위해 나를 그렇게 불렀다.


    진지해서였다. 알고 있는 거 많고, 발표도 잘하고, 진지하기도 하고. 내가 열심히 임하고 성실하게 이행했던 것들이 나의 별명이 되었다. 힘든 친구에게 마음을 내주었고 모두와 잘 지내보려고 대화도 자주 했었다.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의 기습 질문을 꼼꼼하게 대답했었다. 나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매사에 진지한 녀석. 숨이 턱 막히고 재미도 없으니깐. 그래도 좋은 의미로 그 별명을 불러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친구들을 모조리 끊어냈었다. 애초에 내가 나쁜 녀석이었던 것처럼 다 밀어냈었다. 비관적인 말들을 뱉어내며 다들 사라지기를 바랐었다. 별명 때문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별명 따위를 신경 쓸 여력이 아니었다. 단지 그런 별명마저 좋게 불러주던 사람들을 버렸단 걸 말하고 싶었다. 그 친구들은 내게 배신당했다. 네가 너무 힘들 때 내가 건넨 위로의 말들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내 진심일 리가 있냐고. 그냥 징징거리는 거 귀찮아서 있어 보이는 말 한 거라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어른 같았는데, 난 세상에서 제일 찌질하고 비겁하고 어린 녀석이었다. 


    내 진심은 항상 닿지 않았다. 밝을 땐 내가 해맑아서 닿지 않았고, 어두울 땐 내가 너무 시커멓게 타 들어서 닿지 않았다. 밋밋할 땐 애매한 진심이어서 닿지 않았다. 어제의 난, 밝은 척하면서 타들어간 속을 밋밋하게 내뱉어서 닿지 않았다. 내가 무언갈 잘못했겠지. 


    D도 나를 그 별명으로 불렀었다. 그 누구보다 쩌렁쩌렁 그 별명을 불러댔었다. 심지어 애들이 어떤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는지, 조롱의 의미가 아니면 어떤 괜찮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분명한 건 D는 조롱의 의미로 날 부르지 않았다. D는 내가 귀찮아해도, 밀어내도, 무슨 짓을 해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 녀석에게 나는 조금씩 곁을 내어줬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D가 날 귀찮게 해도 나는 늘 다 받아주었다. 어차피 D 말고 내게 그렇게 하는 사람도 없었으니깐. 


    어느 날 사람들이 D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았고, 노래는 틀지 않은 채 사람들 근처를 조용히 서성였다. D는 그날도 집에 혼자 귀가하고 있었다. D는 늘 돌아가는 길이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고, 그날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꾸 사람들이 하던 말들이 떠올랐고 머릿속이 복잡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D를 향해 뛰어갔고 D의 가방을 붙잡았다. 


    지키고 싶었던 D의 알 수 없는 표정이 깨진 순간이었다. 나를 본 D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내 금세 풀어진 얼굴로 내 별명을 불렀다. 딱 하루. 그날이 D와 함께한 처음이자 마지막 하굣길이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날은 의외의 순간으로 찾아왔다. 


    학년이 끝나갈 무렵 찾아온 겨울. 초겨울의 공기는 제법 쌀쌀했고, D는 하는 짓과 다르게 추위를 탔었다. 그날 D는 내게 춥다며 교복 마이를 빌려달라 말했다.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생각 없이 교복 마이를 빌려줬었다. 당시 내 교복 마이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5,000원을 잊은 채.


    나는 학급 청소 담당이었고 홀로 남아 청소를 마무리했다. 특이하게도 그날은 선생님과 둘이 청소를 한 날이었다. 청소가 끝난 후,  돌아가기 위해 벗어둔 교복을 주섬주섬 챙겼다. 문득 D에게 빌려준 교복 마이가 생각났고, D의 자리를 돌아보니 깔끔하게 개어둔 내 마이가 보였다. 나는 마이를 걸쳐 입으며 안주머니에 넣어둔 5,000원을 떠올렸다. 5,000원은 내 저녁값이었다. 그런데 안주머니에 있어야 할 5,000원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교실에 박혀 살던 내 동선은 단순했었다. 화장실과 교실. 그게 전부였다. 이동 수업도 없는 날이었다. 책상 서랍, 사물함, 가방, 화장실, 복도. 전부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내가 마이를 입고 있을 때만 해도 5,000원은 있었다. 선생님께 5,000원 나온 거 없냐 물었고, 선생님은 내 저녁을 걱정하며 밥을 사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만 남긴 채 교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바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내 마이를 공유한 D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서였다.


    다음 날 D는 달라진 점이 없었다. 평소처럼 날 보고 인사했고, 평소처럼 교실과 복도를 휘젓고 다니며 오지랖을 부렸고, 평소처럼 내 별명을 불렀다. 달라진 건 내 시선이었다. 종일 D에게 5,000원의 행방을 묻고 싶었다. D가 내 마이를 빌려 가기 전까지 나는 종일 마이를 입고 있었다. 정확히는 D에게 줄 때까지만 해도 내 5,000원은 마이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D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고, 결국 내가 입을 다무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려 했었다. 


    그런데 그날을 기점으로 주변에서 물건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옆반 친구의 교과서. 학급 친구의 동전. 학급 친구의 볼펜. 학급 친구의 틴트까지. 분명 D는 여전히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랬어야 했었다. 


    하필 학급 친구의 틴트가 사라진 날, D는 배가 아팠다. 평소와 달라진 건 그것뿐이었는데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평소처럼 씩씩할 것이지. 왜 하필 그때. 


    틴트가 사라진 날, D는 체육시간에 아프다며 교실로 먼저 돌아갔었다. 틴트가 사라진 건 정확히 체육시간이 끝난 후였고, D가 양호실을 간 사이에 틴트 주인은 교실 곳곳을 쑤시고 다녔다. 그러다 홀로 교실을 지키고 있던 D의 가방이 틴트 주인 눈에 걸렸다. 불행히도 D는 의심받기 좋은 상황에 걸린 것이었다. 나는 안 그래도 아픈 애한테 별일이 다 생긴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 생각은 틴트 주인이 D의 가방을 쏟아낸 후에 완벽히 뭉개졌다. 


    D의 가방에서 사라진 학급 친구의 틴트가 툭 떨어졌다. 하필 그때. D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틴트 주인은 온갖 욕을 해대며 눈물을 흘렸고, D는 어쩔 줄 몰라서 당황한 표정으로 틴트 주인을 달랬다. D는 자신이 절대로 훔친 적 없다고 그랬다. 그때 D의 표정은 걸려서 당황한 표정이 아니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말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아니다. 정말 아니다. 내가 왜 훔치겠냐. 정말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이게 왜 내 가방에서 나오냐. 이 말들만 반복했었다. 자신의 가방이 허락도 없이 내팽개쳐진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정말 결백만을 주장했었다. 틴트 주인은 화를 못 이겨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고, D는 틴트 주인을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갔다.


    혼잡한 분위기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 교실 밖으로 나갔음에도 아이들은 잔뜩 상기된 채 D를 겨냥한 악담을 퍼부었다. 반장과 부반장이 분위기를 가라앉히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저마다 느낀 심증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나는 교실이 조용해졌을 때 즈음 나지막이 말을 뱉어내고 말았다. 내 마이에 들어 있던 5,000원이 사라졌다고. 그리고 그건 D에게 빌려준 후에 일이었다고. 


    수많은 시선들이 순식간에 내게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금세 내 말은 녹아내렸다. 진지해서였다. 반장은 내게 심증만으로 몰아가지 말자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처음으로 비참한 내 영향력이 고마웠....






여기까지 적어 내린 N은 깊은 혐오감을 느꼈다. N은 잊지 않고 그날의 분함을 되새겼다. 차라리 늘 하던 대로 방관이나 했었으면 어땠을까. 물론 크게 변한 건 없었을 것이었다. 당시 사건은 이미 많은 학우들이 물건을 잃어버린 후였고, D의 가방에서 틴트가 나온 순간 내 말은 무뎌진 상태였다. 내 말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D는 씻을 수 없는 이미지가 박혀버린 것이었다. 실제로 N은 그날 자신이 뱉은 말을 곱씹으며 하루를 보냈고, 다음 날부터 D를 마주 볼 수가 없었다. N은 아무리 겉으로 부정했다고 해도, 사실 D를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D를 전처럼 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따위 말을 입에 올린 내가 끔찍했다. 그래서 모든 걸 방관하기 시작했다. D가 어떤 학교생활을 보내게 될지, 앞으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이어가게 될지,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사건 이후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건 이후 더 이상 물건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D에 대한 말들도 어느새 묻혀 더는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새 학년, 나는 D와 다른 반이 되었다. D와의 접점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D의 존재가 서서히 잊혀갈 때쯤, 보게 되었다. D가 홀로 귀가하는 모습을. 






N은 그때의 자신을 해석하는 것에 꽤나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럼에도 D의 사건은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한 가지, D는 N의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되는 존재였고 그 존재가 뒤틀린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 뒤틀림을 초례한 것은 자신의 말 때문이라고 굳게 믿은 것. 지금의 N은 D를 만나면 안부보다도 다른 걸 먼저 물을지도 몰랐다.







    나는 혼란스러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울렁임을 만들어 내는가. 정말 D가 그때 범인이었다면. 내가 모른 척했어야 한 걸까. 아니면 그걸 들추어서 모든 진실을 알아내야 했을까. D가 범인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나는 정말 끝까지 D의 편을 들 수 있었을까. 


    상념이 밀물처럼 몰려왔고, 나는 별안간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푹 숙인 고개를 들어 올렸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D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걷고 있었는데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고, 이미 D가 사는 동네를 한참 지나친 것을 알아차렸다. 







N이 D를 마주한 건 바로 다음 날이었다. D가 학교 복도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N은 D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N은 피하지 않고 D를 마주 봤었다. 그때도 피해버릴 걸 그랬다. 






    D 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가기 싫다는 말.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 갑작스럽게 이사를 해야 한다는 말. D는 웃고 있었다. 일주일 뒤라고 그랬다. 주변에 알리지 않은 건, 소란스럽게 왔으니 갈 땐 조용히 가고 싶다는 이유였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D는 웃고 있었고, 복도는 시끌벅적했으며, 나는. 나는 D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일주일 뒤, D는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D의 전학 소식은 바람대로 조용히 흘러갔다. 나는 당일까지도 D의 전학을 믿지 않았다. 거짓말이라 생각했었다. 허락도 없이 내 이름을 부르던 녀석은, 끝까지 이기적이어서 허락도 없이 가버렸다. 나는 D가 가기 전날이라도 나를 보고 갈 줄 알았다. D는 일주일 전의 미소를 끝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내겐 작별 인사를 할 틈도 주지 않았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얼른 꺼져버리라고 시원하게 욕이나 뱉을 걸 그랬다. 






N은 D가 떠나기 하루 전을 떠올렸다. 사실 N은 D를 봤었다. 늘 보던 D의 뒷모습을. 염두가 나지 않았다. 잘 가라고 할 만큼 친한 사이였던가. 그 정도도 못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었나. 망설였다. D를 부르는 게 맞을지. 결국 N은 뒤돌아섰다. D의 마지막 모습을 평소 같은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홀로 귀가하는 D. 지키고 싶은 모습이 마지막이었으면 했었다. 분명 그랬는데. D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N의 별명. N을 별명으로 부르는 큰 소리가 들렸다. 선명하게 들렸다. N은 그때 뒤돌아보지 않았다. 못 들은 척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만약 뒤돌아봤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 목소리가 N이 기억하는 D의 진짜 마지막이었다. 


고장 난 시계라도 하루에 두 번은 정답을 알려준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똑같은 시간대를 가리키는 고장 난 시계. 멈춰 있는 시계조차 하루에 두 번은 정확한 시간을 가리킨다. 경험한 감정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순간 시간 선상은 흘러 자정을 가리킨다. 어긋나 정의할 수 없는 관계의 종말은, 멈춰버린 시계가 아닌 온전히 흐르는 시계로부터 비롯된다. 


N은 노트를 덮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N의 방관이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N은 D를 나름의 시발점이라 여긴다. D는 어떤 의미로 남은 사람일까. 


D의 이야기가 이대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아니었다. 그로부터 3년 뒤, N은 D와 연락이 닿았다. 잘 지냈냐는 말. 이제는 키가 좀 컸냐는 말. 자신은 현재 어디 지역에 있다는 말. 시답잖은 근황들이었다. N은 D와 연락처를 공유하였는데, 이날 이후로 지금까지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냥 가끔씩, D가 아직도 홀로 집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했다.


N은 오늘도

조용히 펜을 내려놓았다. 






-방관일지 EP.2 'D'-




https://www.youtube.com/watch?v=NgAnXUbPq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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