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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Aug 13. 2024

비행기 창가 자리가 좋은 이유

(1) 서해에서 태평양, 캐나다, 미서부 해안까지




나는 공항과 비행기를 사랑한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공항 관제탑이나 활주로에서 비행기 향해 깃발 드는 직업을 택할 만큼. 비행기에서는 늘 창가 자리에 앉는다.


이번 여행의 여정은 인천-샌프란시스코-포틀랜드-밴쿠버-인천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3주 동안 인천-샌프란시스코-포틀랜드-시애틀-샌프란시스코-LA-포틀랜드-밴쿠버-인천으로 이동하는 여정이었다. 공항에 한풀이할 것도 아닌데 그리 되었다.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경로는 북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비행으로 약 11시간이 걸린다. 다행히 비행기 창문 밖으로 장대한 풍경들이 등장한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조금씩 인천과 서울이 멀어지기 시작한다. 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서해안과 수도권의 도심에서 멀어지며 서해 바다와 여러 작은 섬들이 보인다. 나는 밤 비행기를 탔기에 야경이다. 낮 풍경은 상상만 해본다.



서해를 지나면 일본의 서부 해안선 차례인데 날씨가 좋으면 후쿠오카나 오사카 인근의 도시와 일본의 산악 지형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어느 경계로 한국이고 일본인지 구분선이 없기에 내가 본 것의 국적을 알 수 없다.


일본을 지나면서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을 가로지르는데 이 긴 구간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태평양을 한 없이 볼 수 있다. 끝이 없는 바다다.  " 태평양을 헤엄쳐서라도 당신을 만나러 가겠다"노래의 가사는 전문용어로 ''임이 분명하다.


옆 사람이 창문에 눈부셔하지만 않는다면 맑은 날씨에 구름층 위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한다. 비행시간에 따라 밤에는 별빛이 가득한 하늘도 감상할 수 있다는데 나는 그 시간에 잠을 잤는지, 영화를 보았는지, 와인을 마셨는지 본 기억이 없다.      


인천에서 가는 비행기에서는 좌석 모니터에서 비행기 경로를 살펴보는 것을 잊었는데, 비행기에 따라 북쪽 경로를 선택하는 비행기 경우  알래스카 남쪽의 알류샨 열도 및 베링해를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낮은 고도에서는 바다와 섬들이 보일 수 있고, 높은 고도에서는 하얀 구름이 깔린 장관을 볼 수 있다고. 구름은 무수히 보았으니 내가 탔던 아시아나 비행기가 북쪽 항로로 갔는지, 그 구름이 알래스카와 베링해 구름이었는지 확인해 보아야겠다.


   

태평양을 지난 비행기는 캐나다의 서부 해안에 접근한다. 밴쿠버가 있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울창한 산림과 해안선이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록키산맥도 일부 보인다. 나는 12일간 대학 선배가 사는 포틀랜드에 있다가 고등학교 짝꿍 친구가 사는 밴쿠버로 넘어가는 여정인데 여기서는 밴쿠버가 보여도 내려주지 않으니 비행기에 그대로 앉아있기로 한다.     


비행기는 서서히 미국의 서부 해안을 따라 남하한다.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의 해안선과 산악지대가 보인다. 후드 산(Mount Hood)이나 세인트 헬렌스 산(Mount St. Helens) 같은 활화산이 희미하게, 그러나 엄청난 위용을 드러낸다. 포틀랜드가 코앞이지만 나는 지금 포틀랜드행 비행기를 갈아타러 샌프란시스코로 가고 있으니 여기서도 내리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기로 한다.     


샌프란시스코에 가까워지면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과 산악 지대가 점점 더 명확하게 보인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접근하면서 골든 게이트 브리지가 보인다. 구름에 덮여 한쪽 교각이 빨대 끝처럼 조금 보인다.



이내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섬들과 도시들도 창문 아래 보이기 시작한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착륙할 무렵이면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전경과 함께 해안가의 아름다운 풍경이 두 팔 벌려 관광객을 맞이한다.


환영이 뜨거울수록 관광객은 지갑을 연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그대 머리에 꽂으라는 그 아름다운 도시다. 태평양과 북미 대륙의 다양한 지형을 관찰하며 열 시간이 지났다.


다시 샌프란시스코에서 환승하여 포틀랜드로 간다. 항로는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서부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비행하는데 이륙 후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전경과 다시 골든게이트 브릿지만난다. "Hi" 한지 세 시간 만에 다시 슬픔의 "Bye"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와 영화 빠삐용의 감옥이었던 알카트라즈 섬도 이륙 직후에 잘 보인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면 비행기는 서부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비행한다. 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함께 캘리포니아 해안선의 아름다운 절벽과 해변이 나타나고 해안선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륙으로 들어가면 유명한 와인 생산 지역인 소노마(Sonoma)와 멘도시노(Mendocino) 지역이 보인다. 여름날의 푸른 포도밭에 취한다.


비행기가 북쪽으로 계속 이동하면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주 경계 부근의 클래머스 산맥(Klamath Mountains)이 보인다. 울창한 숲과 산세가 험하다. 오리건 주에 들어가기 전에 캘리포니아 북부에 위치한 활화산인 샤스타 산(Mount Shasta)이 나타난다. 눈 덮인 정상은 멀리서도 잘 보인다. 삼신할머니 같다.


오리건 주로 넘어가면서 서쪽으로는 오리건 해안이 나타나고, 동쪽으로는 캐스케이드 산맥(Cascade Range)이 펼쳐진다. 캐스케이드(폭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능선이다. 이 산맥에는 후드 산(Mount Hood), 제퍼슨 산(Mount Jefferson)과 같은 유명한 화산들이 여전히 활화산으로 살아있다. 깔콘 같이 귀엽다고 했다가는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



포틀랜드에 가까워지면 윌라멧 강을 따라 위치한 윌라멧 밸리(Willamette Valley)가 보인다. 이곳은 오리건 주의 중요한 농업 지역으로, 포틀랜드 남쪽의 포도밭과 농장을 품는 젖과 꿀이 흐르는 지대다.  포틀랜드는 맑은 물로 만든 로컬 맥주와 틸라묵 같은 고급 유제품을 자랑하는 풍요로운 고장이다.


포틀랜드에 접근하면서 도시의 전경과 컬럼비아 강(Columbia River)이 보인다. 포틀랜드에 머무는 동안 제일 많이 들은 단어가 컬럼비아 강이다. 이 도시의 동맥이다.



포틀랜드 공항에서 나오면 눈앞에 떡 버티고 있는 산이 후드 산(Mount Hood)이다. 오리건 주에 위치한 캐스케이드 산맥의 일부로, 비행 중 오리건 주에 접근할 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던 산이다. 비행기가 캘리포니아 북부를 지나 오리건 주 경계에 가까워질 때쯤, 즉 샤스타 산을 지나고 나서부터 서서히 보이던 그 산이다.


후드 산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은 오리건 주 내로 깊이 들어가면서다. 포틀랜드에서 동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져 있는 후드 산은 포틀랜드다가갈수록 잘 보이게 된다. 날씨가 맑으면, 후드 산의 눈 덮인 봉우리가 상당히 멀리서도 시야에 들어온다.



후드 산(Mount Hood)은 포틀랜드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산이다. 포틀랜드 사람들에게 일종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산신령 같은 존재랄까. 이 산은 오리건 주에서 가장 높은 산(3,429m)이자 포틀랜드 사람들에게는 푸근한 키 큰 동네 뒷산이다.


사계절 내내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겨울에는 스키와 스노보드 같은 겨울 스포츠가 한창이다. 여름에는 하이킹, 캠핑, 등산 등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포틀랜드 사람들이 주말 레저나 당일 여행으로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많은 포틀랜드 사람들에게 후드 산은 단순히 자연경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도시 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연 속에서의 평화와 영적 회복을 찾는 장소라고. 후드 산의 웅장함과 고요함은 사람들에게 내면의 성찰과 안식을 제공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인식되고, 원주민들에게도 그런 공간이었다 전해진다.


(며칠 후 M과 후드 산의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하여 삼복더위에 이곳을 가려다가 교통 체증과  더위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하여 신성에 이르지 못한 슬픔을 안고 귀국한 슬픈 이야기다.)



포틀랜드 도심과 주변의 울창한 녹지가 항공기 창문 밖으로 펼쳐진다. 노을질 무렵 태평양 해안선, 웅장한 산들, 광활한 밸리, 불타는 살구빛 대지까지 온갖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비행이다. 한 편의 웅장한 항공 다큐를 감상한 느낌이다.


이 즐거움이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화장실 가기 위해 나란히 앉은 옆사람 동시에 일어날 때까지 참는 이유다.  누워 자는 일등석도 안 부러운 이유다.


인천-샌프란시스코-포틀랜드 내내 창가 좌석을 고집한 이유를 길게도 썼다. 이렇게 오래 걸려 도착한 포틀랜드에서 하루 만에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으니 이야기는 다음 편에.


20240710

ICN-SFO-PD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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