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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Aug 04. 2024

무슨 슈퍼를 네 곳이나 가요?

(4) 볶음밥, 초밥, 메리 농장의 계란 사기




M과 그녀의 아들 A와 점심을 먹기 위해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포틀랜드 다운타운은 다양한 문화, 예술, 자연, 역사적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곳곳에 스트리트 아트와 벽화가 있고, 포틀랜드 아트 뮤지엄도 이곳에 있다.



포틀랜드는 자전거 도로와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자전거를 이용한 이동이 편리하기도 하다. 곳곳에 고풍스러운 호텔 건축이 남아 있어 눈길을 끄는 건물도 있다.


매일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는 푸드 트럭으로 유명하고 다운타운 곳곳에서 현지 식재료를 사용하는 다양한 나라의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다.  유명한 애플스토어가 있고  나이키, 콜럼비아 본사가 있는 곳. 판매세가 없는 쇼핑의 천국이다.


남부식 립 바베큐 비빔밥으로 유명한 파인스트리트 마켓, 커피 애호가들에게 인기 높은 스텀프 타운 카페도 있다. 문제는 오후 5시면 카페가 문을 닫는다는 것. 그리하여 나는 결국 스텀프 타운의 유명한 오트 라테를 마시지 못하고 포틀랜드를 떠나야 했다.


다운타운의 캐주얼 레스토랑 '셰릴스'에서 메뉴 공부를 했다. 뭔가 포틀랜드스러운 것을 먹고 싶었는데 잘 고르지 못한 것 같다. 셰릴스에서 시그너쳐로 나온 빵튀김은 동네 시장 꽈배기 맛이었고 샐러드의 퍽퍽한 치킨을 먹으며 춘천 닭갈비의 보드라운 맛이 그립기도 했다.


팁 문화도 서빙하는 사람들이 팁이 주 수입원이기 때문에 팁이 소비자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운다는 느낌이었다. 음식 값에 20% 이상의 팁. 음식과 서비스가 감동적이라면 기꺼이 내고 싶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또는 서비스라 생각되지 않는 경우 관광객은 의문을 갖게 된다.


여기서는 내 손으로 주문해서 받아 오는 커피를 계산할 때도 팁 결제를 요구하는 문화다. 외식이 이렇게 부담스러울수록 가정에서 요리를 해서 먹을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이런저런 맛을 보고 메뉴도 익히고 문화도 경험하는 것이 여행자가 가져야 할 자세일 것!

      



다운타운에는 세계 최대의 독립서점, 책벌레의 천국인 파웰(Powell's) 서점이 있다. 커피는 파웰스 서점에서 마시자는 A의 제안을 따라 서점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A는 '이 길을 건너지 마라, 저 길도 건너지 마라' 등 내가 혼자 다니더라도 안전한 블록을 알려주었다. 길 하나 사이로 세이프 존이 바뀐다는 사실은 기억해 두자.


카페에서 주문하며 직원에게 시그너처 음료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라테가 들어간 커피들을 골라주었다. 알고 보니 포틀랜드는 신선한 유제품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이 엄청난 규모의 건물 구조를 가늠해 보았다.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한다는 크기의 독립서점이 53년째 살아남는다는 것은 커뮤니티의 보호 없이는 불가능한 일 아닌가. M에게 이 파월 서점에서 주중 하루쯤 온종일 보내고 싶다고 부탁했다.  처박혀 하루를 보내고 싶은 곳이었다.     



헬베시아 마켓에서 무엇을 살지 몰라 구경만 했다면, 내가 익숙한 슈퍼마켓에서는 에어스트림에서 일주일을 버틸 식재료를 살 수 있었다. 더위에 요리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기에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에서 내가 미국에 살때부터 즐겨 먹곤 했던 것들 위주로 골랐다.


불고기, 볶음밥, 만두, 짠 미국 음식의 염도를 조절하기 위한 추가 브로콜리를 샀다. 그 좋은 포틀랜드 치즈를 놓아두고 어느 것이 좋을지 몰라 한국에서 즐겨먹던 부라타 치즈로 샀다. 캠핑카에서 먹을 음식에 관한한 소심한 것이 안전하다.



트레이더 조스는 '은퇴한 대학교수'라는 별명을 가진 슈퍼마켓이라고 한다. 가성비가 있으면서도 취향을 살린 세계 각국의 향신료와 식재료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한다.


계산대에 은퇴한 노인들이 많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있다. 가져간 장바구니를 펼치면 '어디 집을 지어 볼까요?' 하면서 하나하나 식재료 박스를 넣어주며 스몰토크도 한다. 나는 노인들의 말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      


M은 나를 위해 첫날 웰컴디너 일정을 잡아 두었다고 집으로 저녁 먹으러 오라고 했지만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M은 마침 지붕 공사 중이었고, 나는 졸려 죽을 지경이었고. 그냥 또다른 마켓인 홀푸즈(Whole Foods)에서 초밥을 사서 집에서 MS와 같이 먹기로 했다.


홀푸즈는 헬베시아나 트레이더 조스와는 다른 건강 유기농 슈퍼마켓이다. 내가 제로 콜라를 사려고 물었다가 ‘건강에 안 좋은 것은 없어요’라는 답을 들은 곳이기도 하다.


초밥 코너에는 제법 다양한 롤과 초밥이 있었고 심지어 현미로 만든 롤도 있었다. 참고로 이 현미롤은  입맛이 관대한 내 입에도 용서가 안 되는 맛이었다. 진짜 맛없었다. 그나마 이 초밥 코너는 조금 늦게 도착하면 모든 초밥이 다 팔려버리기에 우리는 서둘러 연어와 아보카도가 있는 레인보우 롤과 캘리포니아 롤을 샀고 얼음을 얻어 아이스백에 넣고 집으로 출발했다.


이날 들른 슈퍼가 세곳인데, M은 보통 뉴시즌즈 마켓까지 네곳 정도를 오가며 장을 본다고 했다. 여기에는 이것이 있고, 저기에는 이것이 없고. 장보기 하나도 동선이 긴 삶이었다. 나처럼 복잡한 것 싫은 사람은 대한민국이 최고다.



바로 집에 가도 되는데, M은 동네 주변의 길이 서클 모양의 원형이라고 설명해 주며 한 바퀴 드라이브도 시켜주었다. 오는 길에 토마토 나무를 사기 위해 나무를 파는 아름다운 가정집 저택도 들렀다. 나를 위해 이것 저것 보여주려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다.



드디어 에어스트림이다! 나의 집이다! 영어 안 해도 된다!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고 침대에 누워 한낮의 포틀랜드 더위를 피해 잠시 에어스트림에서 쉬었다. 잠이 들려고 하던 차에 M이 귀신 같이 맞춰 다시 벨을 눌렀다.


M은 대체 무슨 약을 먹기에 저리 잠시도 쉬질 않는단 말인가.

"계란 사러 갑시다. "

"슈퍼에 쌔고 쌘 게 계란인데’

"그건 계란이 아니에요.진짜 계란을 사러 갑시다."



집에서 10분 거리의 메리 농장에 갔다. 메리가 갓 담은 계란을 가지고 나왔다. 농장을 봐도 되는지 묻자 메리가 농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식구가 많았다. 목이 긴 라마,  알파카, 샤갈의 그림에서 나온듯한 염소, 거위, 49마리의 닭, 닭장을 지키는 두 마리의 그레이트피라니스 견공. 얼마나 부지런히 청소하는지 냄새도 하나도 나지 않았다.




메리의 아들이 나와서 각각 아이들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그 아이들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설명해 주었다. 영화광인 아들이 지어준 이름은 스타워스, 주라기 공원, 반지의 제왕의 인물들의 이름이었다.


아들은 닭에 진심이었는데 우리가 그냥 '닭'이라 부르는 아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종이 있으며 서로 다르게 아름다운지 설명해 주었다.



M과 남편인 MS와 다이닝 테이블에서 같이 홀푸즈 초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여기 와서 평소 식감도 향도 별로였던 연어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마켓에서 산 레인보우롤은 맛있었다. 식사를 하며 만난 주인집은 부부의 예술적 관심과 취향이 가득한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두개의 벽에는 두 가족 역사가 담긴 사진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명상 교육가이자 미술, 사진, 영화를 다루는 MS는 저녁 설거지 담당 업무를 마치고 나와 자신의 서가와 거실의 책과 작품들을 설명해 주었고, 파리에 대한 아름다운 책도 권해주었다. 장미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뒷마당과 직접 디자인한 연못을 보여주었다. MS를 포틀랜드의 다빈치라 부르기로 했다.



주인장 댁에서 즐거운 저녁과 대화를 나누고 에어스트림을 걸어가는 길. 노을과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 저기 날 기다리는 아름다운 트레일러가 어느새 집으로 느껴졌다. 날은 아직 환한데 아홉시가 넘었다.



에어스트림에 들어와 메리의 달걀을 열어보았다.  신기하게도 달걀색이 서로 달랐다. 푸르스름한 것, 갈색, 흰색. 서로 다른 닭이 낳은 계란들이었다. 초록빛 계란은 처음 보았다.



M에게서 문자가 왔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주차장에서 보자고 했다. 사진 워크숍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가면서 나도 동행하는 일정을 이미 짜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새벽 4시에 출발이니 잠은 다 잤다. 혹시 일어나지 못할까 봐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기로 했다. 시간을 보내려고 포틀랜드에서 이어 방문하기로 되어있는 캐나다 비자를 신청했고, 이박삼일 여행짐을 쌌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메리의 달걀 두 개를 삶았다. 초록색 아이로.



반숙으로 삶아 조심스럽게 잘라보니 촉촉 말랑한 것이 부드럽기가 닭의 전생이 보일 정도였다. 아무데도 안 가고 에어스트림에 그냥  처박혀 있고 싶은 마음 절반, M을 따라 일등석 비행기타고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 가서 유서 깊은 팰리스 호텔에 묵는 호사를 누리고픈 마음 절반.


밤을 꼬박 새우고 피곤해 실핏줄 있는 대로 곤두선 눈으로 새벽 어두운 주차장으로 나갔다.


20240711

Port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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