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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Aug 03. 2024

포틀랜드 슈퍼마켓 구경하기

(3)헬베시아 팜 마켓




도착한 이튿날 시차 적응할 여유는 없었다. 부지런한 M이 에어스트림 눌렀다. 문을 열자 영국 풍경화가 컨스터블의 그림에서 걸어 나온 듯 밝은 미소에 알록달록한 먹거리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서있었다.


바로 아침 식탁이 차려졌다. 일리 커피, 커피 드리퍼와 필터, 딸기, 바나나, 자두, 삶은 계란까지. 떡이 그리울 레이디를 위해 남겨 가져온 기내식 디저트 기장떡도 레이디 접시에 올려 주었다. 커피 말고는 아침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캠핑 트레일러에서 먹어서일까?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맛있는 브런치였다.


에어스트림 안에서 짐 정리를 위해 이런저런 파우치가 많이 필요한 나를 위해 정리왕인 그녀는 각종 컬러의 파우치(M은 에코백 손잡이를 잘라 이것을 파우치로 사용한다고)도 잔뜩 빌려주었다. 우리는 1분에 한 번씩 주제를 바꾸어 떠들며 오늘 일단 무엇을 할지 30분 단위 계획에 돌입했다.



에어스트림이 위치한 M의 집이 있는 동네는 포틀랜드 다운타운에서 약 2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조용한 주택가다. 다운타운까지 차로 약 20~30분 정도 거리로 도심의 편의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트래픽을 고려하여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M첫날이니 동네에서 장도 보고 냉장고에 필요한 음식도 채워 넣자고 했다.


다시 바구니를 들고 에어스트림에서 나가 집으로 들어가며 M은 한 시간 후 유기농 마켓 헬베시아에 간다고 했다. 신선한 베리가 그곳처럼 맛난 곳은 없다고. 정원에 베리 나무가 있었지만 익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N의 통보를 따라 여행하며 실패한 적이 없기에 나는 순한 양처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차를 마켓을 향해 달리는 길은 황홀했다. M은 숲길에 감탄하는 나를 위해서 외출할 때마다 매번 다른 길로 운전을 해주기도 했다. 겨울이면 눈조차 치우지 않는다는 어느 날의 숲길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첫 외출 길에서 숲을 보며 7분이 넘는 동영상을 찍었다.     



Helvetia Farm Market 문 앞에 제일 처음 만난 것은 참나무통 위에 놓인 풍성한 꽃더미 Gal Annuals였다. 모든 꽃과 화분에는 세줄 정도의 설명이 적혀 있었다.




Lovage의 경우 ‘만나기 힘든 허브’, ‘수프나 스튜에 넣으면 좋은’. ‘셀러리 비슷한 허브향’, ‘3x3 피트까지 자람’.이라고 적혀있었다. 요리를 하든 집에서 화분으로 키우든 추천하는 것 같았다.


이 허브가 왜 만나기 힘든지 찾아보니 미나리과의 풀로 허브이기도 하고 향신료이기도 하고 채소이기도 한, 셰프들이 좋아하는 식재료라고 했다. 잎은 요리에 넣고 씨는 피클에 뿌리고 줄기는 수프에 넣어 끓이는데 이탈리아 전통 시골 요리에도 꼭 들어간다고 했다. 줄기와 뿌리를 버터에 볶아 러비지 씨를 간 가루로 맛을 내기도 한다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신통한 아이가 아닐 수 없다.      


  

헬베시아 팜 마켓은 현지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신선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작고 아담한 상점이었다. 들어가니 더 재미있었다. 제철 과일과 채소, 현지에서 포틀랜드가 자랑하는 전통 방식으로 생산하는 유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아침 햇살에 수줍은 사과와 자두 위로 떨어지는 빛도 아름다웠다, 미국인처럼 키가 커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마늘종도 있었다. 우리처럼 볶거나 요리 야채로 넣는 듯했다. 우리 엄마의 맛난 마늘종 레시피를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지만 영어가 딸려 참았다.      


  

모든 고기와 해산물은 생산자를 표기해 두었는데 대부분 '가정 목장', '목초에서 풀어 키움', '매일 고기잡이 배로 잡음', '줄낚시로 잡음', '손으로 다듬어 바로 급속 냉동함' 등을 표기해 두었다.


유제품은 지역의 스쿨 데어리가 유명한데 2.5불의 보증금을 내고 우유를 산 다음 공병을 반납하는 방식이었다. 목욕을 해도 좋을 크기의 우유병이었다. 포틀랜드를 떠나기 전에 이 스쿨 데어리를 방문했었지만 주인장이 장사에 관심이 없는지 가게를 비우고 수십 명 손님들이 기다리는데도 가게로 돌아오지 않아 귀여운 소들만 보고 왔다.




가정식 수제 잼, 딜이나 비트 피클을 갓 구워낸 빵과 치즈에 곁들여 바로 먹는 맛도 맛이거니와 이 상점은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장터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상점은 전형적인 슈퍼마켓과 달리 전통 시장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이 마켓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이 지역 농부들과 수제 제품 생산자들을 돕게 되니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구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M은 사려고 했던  베리가 없다고 절망한 눈치였으나 포기하지 않고 직원에게 물어 한쪽 냉장고에 별도로 보관된 베리를 찾아냈다. 내가 오레곤 어딘가에서 실종되었다가 살아 돌아와도 저리 기뻐하진 않겠다. 직원은 이 베리가 마켓에서 제일 인기가 많아 아예 계산대 앞쪽에 놓아두었다고 했다.  


  


사랑스러운 헬베시아를 뒤로 하고 동네 이곳저곳을 다녔다. 은행도 가고 주유도 하고.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지구별 어딘가 불시착해 위치를 확인하려는 외계인처럼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고 모든 이야기가 신기했다. 이 맛에 여행을 하는 것 아닌가.


포틀랜드에 도착해서 처음 간 곳이 헬베시아 마켓이었는데 포틀랜드를 떠나기 전 마지막 들른 곳이 다시 그곳이기도 했다. 영화의 인트로와 엔딩처럼.


베리가 얼마나 맛있나 궁금해서 레이디 아이스백에서 베리를 꺼내 먹자고 하려다 참았다. 저렇게 좋아하는 베리인데 줄리가 있나.      


20240711

Port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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