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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Sep 08. 2024

현대미술전시에 변기가 있는 이유

(9) 왜 '이런 것'들이 예술이 되었을까?





“저 관광객인데요, 4시간밖에 없어요. 괜찮으시 제 동선 좀 짜주시겠어요?”

관광객임을 밝히면 현지인들은 대개 친절하게 도와준다. 특히 미술관에서 그렇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만난 디카프리오를 닮은 매표소 직원은 친절하게 미술관 지도에 화살표와 번호를 표시하며 한눈에 보이게 동선을 짜주었다.


“우선 SF MOMA의 상징인 1층 전시를 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가서 거꾸로 내려오세요. 아요이 쿠사마 좋아해요? 그럼 '거울의 방' 대기 줄이 기니까 6층을 먼저 보고 올라가세요.”

빨간 멜빵의 미술관 아저씨는 '오늘이 토요일이니 전망 좋은 4층 레스토랑은 점심시간을 피해 가라'라고 조언을 해주면서 전시는 반드시 1층부터 보라고 했다.




이곳이 SF MOMA의 1층 전시다. 1층의 모더니즘 전시는 현대미술의 기원인 모더니즘의 특징과 그로부터 진화한 현대미술의 개념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전시다. 20세기 초중반까지의 모더니즘 예술가들이 어떻게 기존의 전통을 거부하고 새로운 예술적 언어를 창조해 나갔는지 보여주는 SF MOMA의 상징적 공간이다.  





전시는 ‘모던하다는 것은 언제부터인가?’로 시작된다. 미술사에서는 현대미술의 출발을 모더니즘 앞에 후기(post)를 붙인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본다. 이것은 현대미술이 ‘모던’에서 출발하여 그를 다른 방식으로 이어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근대와 현대를 묶어 근현대라 부르는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근대의 모더니즘은 그 이전과 무엇이 달랐을까? 이 전시에서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겠다.      


모더니즘의 출발은 이 시기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급격한 변화에서 기인한다. 20세기 초는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산업혁명, 교통수단의 발명 등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세계 대전이 발발한 엄청난 변화의 시기였다. 예술가는 사회적 변화에 ‘반응’했고 상호작용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미술사조의 미학적 진화가 아닌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전시는 이 시기의 사회적 변화와 예술가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미술적으로 표현되었는지 대표작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이것이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첫 작품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Fountain(샘) (1917)>이다. 세상을 달리 보고 달리 표현한 모더니즘 미술의 상징적 시도다. 공산품인 남성 변기를 90도 회전시켜 놓고 예술이랍시고 내놓은 무모한 이 작품은 뉴욕의 독립 예술가 협회 전시회에 출품됐으나 엄청난 비난 속에 출품이 거부되었다.



뒤샹은 변기에 ‘R. Mutt 1917’으로 서명해 출품했다. ‘R. Mutt’는 당시 미국에서 인기 있던 만화 캐릭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비난을 예측하였는지 가명 사용도 일종의 실험이었는지 알 수 없다. 미술사가들은 이 작품이 예술 작품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풍자하고 도전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도 하고, 뒤샹이 의도적으로 예술가의 서명을 위조해서 진짜와 가짜, 진품과 위작, 작품의 진위성과 예술의 경계를 묻고자 했다고도 해석한다. 둘 다 흥미롭다.




훗날 이 작품은 미술사에서 레디메이드(Ready-made) 작품으로 소위 미술사의 '호적'에 올랐으며 예술의 개념을 전복시킨 일상적인 물건을 예술로 승격시킨 실험적 시도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기존의 미적 기준에 도전하고 예술의 정의를 확장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모더니즘 작품임에 분명하다. 예술이 창조적 과정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자체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달리 보기’의 대표작인 것이다.


뒤샹의 시도는 이후 현대미술의 다다이즘(Dadaism), 개념미술(Conceptual Art), 수프 캔 그려놓고 예술가가 된 앤디워홀 등의 팝아트(Pop-Art)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마중물이라 해석된다.





이 작품은 근현대 미술에서 미술의 가치를 선도하는 갤러리의 중요성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폐기되기 직전의 이 변기를 자신의 '갤러리 291'에 전시한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s Gallery)는 당시 사진가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미국 현대 미술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스티글리츠는 '스트레이트 포토(straight photography)'장르를 개척하여 지나가는 마차나 하늘의 구름 구름처럼 폄범한 소재를 담은 사진도 예술이 사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린 '달리 보기'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은 물리적 아름다움보다 사고의 전환과 개념적 혁신에 중점을 둔다.  이 시기의 모더니즘이 전통적인 예술 형식과 규범을 깨뜨리고 새로운 시각적 언어와 표현 방식을 탐구한 혁신적인 과정이 1층에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에 담겨있다. 작가의 미학적 실험, 그에 담고자 한 새로운 시대정신, 그를 이어받은 후대 작품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게 한다. '이런 것'들이 현대미술관에 당당히 작품으로 전시되기에 이른 맥락이 흥미롭다.


1층에서만 4시간을 보내도 부족하다. 탐미적이면서도 매체 기술의 무한 가능성에 들뜬 100년 전 예술가들을 향한 오마주의 시간이기도 하다. 변기 하나 봤는데 글이 끝났다. 이 공간에서 본 ‘달리 보기’ 대표작 몇 개는 다음 편에.  


SF MOMA에 살고 싶다.       


SF MOMA

샌프란시스코

20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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