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 사진의 발명 뒤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미지로 고정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하려는 19세기 과학자들의 열정적인 몸부림이 있었다. 인간은 시각이 확장될수록 더 보고 싶었다. 밤하늘의 달을 보고 싶었고, 눈송이의 빛나는 결정을 보고 싶었고 미세한 곤충의 기이한 몸도 들여다보고 싶었다. 광학 기술의 발달은 X-레이 기술로 인간의 뼈와 근육을 보게 했고, 특수 카메라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볼 수 없었던 것도 밝혀내게 되었다.
특히 현미경을 통해 미세한 생물체와 구조를 촬영하는 현미경 사진술이 19세기말에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생물학자와 과학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이 기술을 예술로 끌어온 사진가들은 과학과 의학, 산업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SF MOMA는 사진 예술과 깊은 역사가 있다. SF MOMA는 1935년 개관 이후, 사진을 회화나 조각과 동등한 예술의 한 형태로 바라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전시함으로써 사진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공식적으로 사진을 현대미술의 독립적인 장르로 받아들인 현대미술관 답게 1층에는 사진이 현대미술에 드리운 영향력을조명하는 대표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윌슨 알윈 벤틀리(Wilson A. Bentley)가 1885년에 찍은 눈꽃(Snowflake)이다. 그는 현미경과 사진을 결합한 카메라를 이용하여 눈송이의 복잡한 구조를 촬영하여 눈꽃이 가지고 있는 자연이 세밀한 아름다움을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눈송이의 다양한 형태를 수천 장 이상 기록하며 자연의 복잡성과 조물주의 솜씨를 인간에게 환상적으로 드러내는데 일생을 바쳤다.
아더 보트리(Arthur Wells Bawtree)가 촬영하여 20배 이상 확대한 거미 사진이다. 거미의 신체 내부 구조가 마치 눈앞에 거대한 피사체처럼 보인다. 카메라가 사용하여 육안으로 잘 볼 수 없는 미세한 생명체의 세계를 드러낸 중요한 과학적 시도다.
이사야 웨스트 테이버(Isaiah West Taber)가 촬영한 달(The Moon)이다. 이 사진은 19세기 후반, 특히 망원경과 카메라를 결합하여 천체를 촬영하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의 천문학적 기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달의 표면을 정밀하게 담아냈고 있다.
19세기에 달을 촬영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을 텐데 테이버는 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망원경을 이용하여 달의 크레이터, 산맥, 그리고 달 표면의 세밀한 질감을 상세히 기록했다. 망원경의 성능과 카메라의 감도, 그리고 적절한 노출 시간이 중요했기 때문에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수한 장비와 촬영 기법을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중은 사진으로 보인 최초의 달 사진 앞에서 그림에서만 보았던 달과는 다른 전율을 느꼈고, 우주와 천체에 대해 보다 많은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되었다.
버나드 헌(Bernard Laurent Heon)의 사진 <X-Ray of Pelvis>는 엑스레이를 이용해 인간의 골반을 촬영한 사진 작품이다. 엑스레이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의학적 목적과 예술적 관점이 결합된 사진이다. 이 사진은 엑스레이 기술이 어떻게 예술에 활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작가가 엑스레이를 바라보는 독창적인 시각 덕분이다.
엑스레이는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에 의해 발견되었다. 인간의 내부 구조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이 혁신적인 기술은 의학의 진단과 치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초기의 엑스레이 촬영은 주로 뼈와 내부 장기의 구조를 확인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곧 의학적 진단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탐구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엑스레이는 의학적 진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형태와 구조의 시각적 아름다움은 예술적 영감도 제공한다. 빛을 투과하지 않는 뼈의 밀도 차이를 활용하여 내부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 사진은 골격의 복잡한 구조와 곡선을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부터 엑스레이 이미지는 단순한 의학적 도구에서 벗어나 예술가들에게 신체와 내부 구조를 탐구하는 새로운 매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X-Ray of Pelvis>는 골반 뼈의 구조를 시각화한 작품으로, 인간의 해부학적 아름다움과 과학적 정확성을 동시에 탐구한 작업이다. 예술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투과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숨겨진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그의 시도는 현대 사진, 의학, 예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칼 오토 람프란트(Carl Otto Lampland)의 사진 <화성의 24가지 모습>이다. 람프란트는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천문학자로, 태양과 행성의 표면을 촬영한 사진으로 유명하다. 그는 천문학적 장비와 특수 필터를 사용하여 태양의 표면을 촬영하여 태양의 흑점과 달, 그리고 다른 천체의 표면을 정밀하게 기록한 과학적 사진들을 남겼다. 이 작품에는 작은 사각형 사진들이 그리드 형태로 배열되어 있는데, 각 사진은 특정 시간대에 촬영된 태양의 표면 변화를 포착하여 태양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당시의 기술적 한계 속에서도 매우 정밀한 관찰이어 놀랍다. 태양의 활동주기와 흑점의 이동을 연구하는데 기여한 사진이다.
이 사진들은 단순한 천문학적 관찰을 넘어서, 자연의 거대한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자연의 반복성과 패턴을 통해 질서와 혼란이 공존하는 우주의 모습을 예술적인 레이아웃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SF MOMA에 전시된 위의 기념비적인 사진들은 인간의 시각적 한계를 극복하고, 기술을 통해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을 드러내는 모더니즘 정신을 잘 반영한다. 기술과 예술이 어떻게 협력하여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예술가와 과학자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중요한 작업이다. 관람객은 이 작품을 통해 자연과 기술, 예술이 결합된 시각적 탐구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난데없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1층 사진 전시에서 정약용 이야기라니. 옆길로 빠진다. 그렇다고 연관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1839년 사진이 발명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정치가, 과학자, 철학자가 안타까워서다.
그는 조선시대 실학자로서 그의 다양한 과학적 연구는 기술적 발명과 실용화에 연관되어 있었다. 그는 특히 기계 공학, 수학, 의학, 농업 기술에 관심이 많아서 기중기, 수차, 거중기 등 여러 기계를 설계하고 사용법을 설명하는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의 실용적인 사고는 <기기도설> 등의 수력 기계, 측량 기구 설계 등에 담겨있다.
사진의 역사에서 최초의 사진이 촬영된 해는 1826년이다. 프랑스의 조셉 니세포르 니에프스(Joseph Nicéphore Niépce)가 감광물질에 장시간 빛을 쐬여 최초의 이미지를 얻은 것이다. 니엡스의 실험은 정약용이 생존해 있던 시기와 겹친다. 당시 유배지에 있던 정약용이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배를 타고서라도 유럽의 사진술을 배우기 위해 길을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최초의 고정 이미지 카메라인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 공식적인 최초의 카메라로 기록된 것이 1839년이니 정약용이 사망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정약용은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지식을 추구했으며, 서양의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활용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조선 후기에 서양의 천문학 서적과 기구들이 일부 전래되어 학자들 사이에서 연구되었고, 정약용도 이러한 서양의 과학기술을 접한 것으로 보인다.
정약용이 지금의 카메라와 유사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사용해 천체를 관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이라는 뜻으로, 빛을 작은 구멍을 통해 어두운 공간에 투사하여 외부의 이미지를 반대쪽 벽에 투사하는 장치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사용했다는 이 장치는 오늘날의 카메라의 기본 원리와 유사하며, 과거에는 예술가들이 정밀한 그림을 그리거나 천문 관측을 하는 데 사용되었다.
정약용은 왜 카메라 옵스큐라와 유사한 기구를 사용했을까? 천체를 관찰하고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거나, 달과 별의 위치를 기록하여 농업 계획과 관리를 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인 정약전은 평생 조선의 물고기에 올인하더니, 동생 정약용은 온갖 생활 도구 발명에 진심이었다니 융합형 과학 영재 형제였음이 분명하다.
정약용의 영정을 보면 방대한 독서로 시력이 많이 약화되어 안경을 쓰고 있다. 안경도 스스로 디자인한 것은 아닐까? 대단히 세련된 디자인의 안경이다.
그의 별호는 '삼미자(三眉子)다. 어릴 적 천연두를 앓은 흔적으로 세 갈래로 갈라진 눈썹을 뜻하는 이름으로 셀프 작명이라 한다. 알면 알수록 시크하다.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오늘날 태어났다면 특허청에 무수한 특허를 등록했을 법한 융합형 천재가 카메라 한번 들어보지 못했음이 오호통재라. 경 영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