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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Sep 10. 2024

내기 덕분에 예술이 된 사진이 있다?

(11) 나는 당신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1층 전시장에서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의 <The Horse in Motion> 앞에 섰다. 구글 이미지로나 보았던 1878년 사진을 직접 보는 영광이라니.



사진이 발명된 해가 1839년. 40년 가까이 지나 새삼스레 이 사진이 의미 있는 이유가 있다. 사진은 발명 당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구현하여 복제까지 가능한 기계로 등장하여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단순한 복제 기술 매체가 아닌 인간의 눈이 볼 수 없는 세밀한 사실을 디테일하게 증명해 낼 수 있는 사진의 가치는 이 사진 덕분에 인정받게 되었다. 머이브리지의 사진이 사진 역사에 차지하는 의미는 그래서 특별하다.


이 작품의 출발은 뜻밖에 과학적, 기술적 호기심 때문에 벌어진 내기였다. 캘리포니아의 철도 재벌이자 경마 애호가였던 릴런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는 친구들과 대화 중에 '말이 달릴 때, 네 발이 동시에 공중에 떠있는 순간이 있다'라고 말했다.  말의 움직임과 걸음걸이를 가까이 관찰해 온 자신의 경험을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많은 친구들이 말의 네발이 모두 허공이 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의 말에 반대했다. 말이 움직이는  역학에 까지 논쟁이 번지자 스탠퍼드는 이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이겠다고 내기를 제안하며 사진가이자 발명가였던 머이브리지를 고용했다. 당시 카메라야말로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매체였기 때문이었다.


머이브리지는 1872년 이 제안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연사 기능이 없었던 때라 빠른 시간에 연속 촬영을 할 수 없었다. 무려 6년 동안 연속 촬영 기술을 연구한 그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일렬로 배치하고, 말이 달릴 때마다 카메라 셔터를 끊임없이 작동시키는 방법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말이 레이스 트랙을 지나가면서 가느다란 와이어를 치면 자동 고속 셔터가 전시 신호에 의해 이미지를 기록되는 방식이었다.  


그가 1937년 6월 촬영한 <horse in motion> 사진이다. 사진은 말이 달리는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여러 장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머이브리지가 촬영한 연속 사진을 통해, 말이 달리는 중 네 발이 모두 공중에 뜨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과학적인 사실로 증명되었다. 당시 합성이나 포토샵이 없을 때이니 사진에 찍힌 것이 팩트였다. 스탠퍼드에게는 내기에서 승리한 것이 중요했겠지만, 이 실험은 그동안 회화나 일반적인 상상 속에서 묘사되던 것과 다르게 말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입증한  자료였다.


카메라라는 기술 매체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순간을 시각화한 첫 시도였으므로 그의 작업은 움직임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술적, 과학적 도구로서의 카메라의 가치를 증명한 것이었다.





SF MOMA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은 머이브리지의 초기 사진에서 보다 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The Horse in Motion> 시리즈 가운데서도 말의 움직임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끝판왕'이다.


각 사진은 순서대로 말의 다양한 순간을 포착해서 말의 연속 동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상단과 중간에는 말이 옆으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하단에는 말이 정면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의 동작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서 말의 복잡한 동작 구조를 시각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머이브리지가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정밀하게 포착하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순간을 시각화하게 되면서 인간의 시야는 드라마틱하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기술에서 과학에서 예술로 나아갔다.


머이브리지는 유사한 방식의 연속 촬영을 집요하게 계속하면서 움직임을 연속된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의 작업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기초가 되는 '모션 스터디'의 시발점이 되어 모더니즘 예술가들과 미래의 사진작가, 영화 제작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머이브리지의 작업은 현대 시각 예술과 영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변기 작가'인 마르셀 뒤샹이 30여 년이 지난 후 회화로 구현한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도 그 영향이다.



머이브리지의 사진은 모더니즘이 강조하는 '새로운 시각(New Ways of Seeing)'을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과 순간 동작을 시각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전통적인 시각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모던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새로운 기술과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혁신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이기도 하다.


SF MoMA와 같은 현대미술관은 예술, 기술, 과학이 어떻게 협력하여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창출해 왔는지 경험하는 공간이다.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통해 확장된 인간의 시각 경험이 19세기 이후 등장한 기술들에 의해 어떻게 비가시적이었던 세계를 '가시적 영역'으로 확장해 왔는지 예술의 진화를 자랑스럽게 경험하는 곳이다.


관람객은 현대미술관의 디지털 아트와 무빙 이미지에 몸을 맡긴 채  매체 기술 발달에 끊임없이 아이처럼 신나게 반응해 온 예술가들의 시도를 감사히 즐기면 된다.




SF MOMA는 관람객들에게 사진이 단순한 기록 매체를 넘어선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매체임을 상기시킨다. 처음으로 사진을 현대 예술로 인정한 미술관답다.  SFMoMA에서 사진 역사의 귀중한 유산을 감상하는 기쁨은 사진을 사랑하는 관람객에게는 성지 순례에 가깝다.



SF MOMA

샌프란시스코

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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