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때는 언제였나요"
<마지막 수업>의 선생님
지금은 당연히 여기는 무엇을 처음 이루었을때, 그날의 환희를 잊은지 오래다. 처음 삐뚤삐뚤 글씨를 썼을 때, 처음 덧셈을 해냈을 때, 두발 자전거를 달리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느덧 멀리 웃고 계시던 아버지의 기억...... 일상과 습관에 치여 그 때의 추억은 뿌연 먼지에 덮여 있었다. 배움과 성장의 첫 발을 떼던 유년의 교실로 우리를 안내하는 따뜻한 영화, 2002년 프랑스 다큐멘터리 <마지막 수업>이다.
프랑스 산간 오베르뉴에는 학교가 딱 하나 있다. 유치원에서 중학교 가기 전의 들쑥날쑥한 나이의 마을 어린이들, 전교생이라고 해 보았자 열한 명이다. 이제 은퇴를 앞둔 단 한 분의 선생님이 이 학교를 지키고 계신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저녁까지 작은 학교에서 하루 종일 머물지만 눈발에 덜컹거리는 버스에도 이른 아침 등교길이 즐거워보인다.
선생님은 서로 다른 나이와 눈 높이의 아이들을 세 개의 테이블에 둘러 앉히고 수업을 한다. 진지하게 알파벳을 배우는 유치원 아이들은 칭찬을 받고 싶어 앞 다투어 선생님을 불러댄다. 그러나 받아쓰기 실력이 좋은 고학년 학생들의 공부를 선생님이 돌보는 동안에는, 콧구멍에 연필을 꼽은 채 선배들의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기도 한다,
단란한 분위기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원칙이 있다. 학교에 온 아이들은 좁은 교실에서 제 공간과 친구의 공간을 존중하는데 익숙하다. 선생님에 대한 예의, 한정된 시간에 공부를 마치는 습관도 자연스레 익힌다. 선생님이 어떤 아이를 가르치고 있을 때, 다른 아이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서로 수업을 방해하지 않아야함을 알고 있다.
선생님이 자상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곧 중학생이 될 텐데 아직 받아쓰기를 하다 막힌 아이를 대할 때, 다툼을 일으킨 아이들을 중재할 때, 물리적 폭력 못지 않게 친구에게 건넨 말의 폭력성을 모르는 아이를 대할 때, 선생님은 조용히 이야기한다. 나무란다기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문 앞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떠나고 난 적막한 교실. 거북이 두 마리가 느리게 기어가는 소리가 유일한 소음인 어두운 교실에서 선생님은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 학교 숙제를 하는 동안 겪는 일상은 우리 모습과 비슷해서 웃음이 난다. 공부를 좀 더 잘하기를 바라는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그래도 아이가 기특하다. 2 곱하기 6을 설명하기 위해 ‘두 명이 여섯 번씩 뺨을 때리면 몇 번이냐’고 다그치는 삼촌까지 등장하고 나면, 결국 아이 숙제를 앞에 두고 어른들끼리 싸움이 시작되기도 하고. 우리네 모습과 다르지 않아 빙그레 웃음 짓게 한다.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요리도 한다. 난이도와 나이에 맞춰 일을 나누어 크레페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고학년이 동생들을 썰매에 태우고 눈 덮인 벌판에서 한바탕 뛰놀고 오기도 한다. 아이들은 오베르뉴 산간 마을 사계절의 축복 속에서 그 자연의 선물을 만끽하며 성장한다.
같은 교실에서 각자 다른 공부를 하고 있는 열한명의 어린이들은 그렇게 각자 그 누구와도 다른 유일한 존재가 된다.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고 고학년들은 저학년 어린이들의 가치관의 기준이 된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막내였던 유치원 아이들도 보고 배운 대로 의젓하게 선배 역할을 해내는 비결이다. 알파벳과 구구단뿐 아니라 어울려 지내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가 성정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다. 곧 이 곳을 떠나게 된다는 선생님의 은퇴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막연한 불안감을 직감하는 고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선생님이 그들이 이제 들어갈 중학교를 보여주며 격려한다. 선배들의 중학교 탐방에 따라나선 어린 학생들은 마냥 즐겁고, 그 곁에서 선생님은 말 없는 고학년 학생들을 늘 그랬듯 절제된 사랑으로 응원할 뿐이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고 늘 생업에 바쁜 부모를 도와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어른스러운 아이들의 남 모를 고민과 방황을 선생님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다독인다. 늘 네 곁에 있겠다는 선생님의 절제된 저음의 약속을 믿고 아이들은 성장하고 미지의 길을 떠난다.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이 더이상 이 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 채, 즐거운 방학 인사를 남기고 떠난다. 방학식 날 평소보다 오래 문 앞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만이, 이 마지막 수업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