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소멸하는 동반자

<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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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알아주는 존재가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 만으로도 무엇을 원하는지, 오늘 기분은 어떤지 읽어내는 존재가 있다. 힘들고 고단한 시기에 만나면 서로 평화로운 안식처가 된다. 팔순의 할아버지가 삼십 년 넘게 기른 소와 진한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 2009년도 이충렬 감독의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최 할아버지는 걷기도 힘들다. 소리도 거의 듣지 못한다. 할머니의 타박은 날이 갈수록 더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느리고 고단한 삶을 견디는 활력은 한결같이 곁을 지키는 30년 지기 단짝인 소에게서 온다. 농가에서 건장한 소는 반드시 필요한 노동력이지만 정작 마흔이 넘은 소는 쓸모가 없다. 종일 잔소리를 늘어놓는 할머니에게는 이 늙은 소가 골칫거리다.


할아버지의 소를 향한 사랑은 지극하다. 할머니가 시샘을 할 정도로 잠시도 소와 떨어지지 않는다. 소는 할아버지의 자가용이 되었다가 농사나 땔감 마련의 도우미였다가 할아버지의 쉼터가 된다. 귀가 잘 안 들리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늘 타박을 받는 할아버지는 소가 조금만 움직여도 딸랑이는 워낭 소리는 귀신 같이 듣는다. 할머니가 소를 팔자고 할 때나 논에 농약을 쓰자고 할 때 순한 성정의 최 할아버지는 단호히 거절한다. 혹시라도 소가 먹을까 싶어 독한 제초제를 뿌릴 수 없다.


할아버지의 짐을 나누어지고 느릿느릿 황혼 녘의 길을 걷는 소의 뒷모습... 최 할아버지가 ‘말 못 하는 짐승이래도 소가 사람보다 낫다’고 한 까닭을 짐작하게 한다. 수의사에게서 '소가 올해를 넘길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도 설마 설마 하던 최 할아버지는 결국 소가 일어나지 못하는 순간 그 순한 입에서 외마디 욕을 내뱉는다. ‘좋은 데 가라’는 할아버지의 짧은 한마디에 소는 천천히 눈을 감고 긴 시간 변치 않고 제 마음을 알아준 동반자와의 여정을 마감한다. 할아버지는 나중에야 소가 죽기 전 그 어느 겨울보다도 많은 땔감을 옮겨놓고 갔음을 알게 된다.


비록 축생으로 태어나 인간의 도구로 살다 가지만 느리고 충직하게 인간과 교감한 소와, 그 마음을 애틋하게 읽어낼 수 있었던 할아버지의 하루하루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공감과 연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효율이 우선시 되는 세상의 시각에서 보면, 쓸모없고 버려진 두 생명이 나란히 소멸해 가는 과정은 행복 대신 묵직한 짐을 나누어지는 쪽을 택한 착한 동반자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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