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어른이잖아"

<글로리 데이>의 반반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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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마냥 뿌듯한 네 명의 고등학생이,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최정열 감독의 2016년 영화 <글로리 데이>의 경우 고작 1박 2일. 눈부신 어른이 되기를 꿈꾸었던 네 청춘의 일그러진 성인식이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고등학교 친구 용비, 상우, 지공, 두만은 입대하는 상우의 생일날 처음 일탈을 감행한다. 친구와 의리라면 제일인 용비, 헬리콥터 맘인 엄마에게 24시간 시달리는 재수생 지공, 야구감독인 아버지 덕분에 낙하산으로 대학 야구부에 들어가 눈칫밥 먹는 두만, 평생 뒷바라지에 고단한 할머니의 힘을 덜어 드리기 위해 대학 대신 군대를 택한 상우...... 형편과 처지는 달라도 각자 결핍과 흥을 공유하는 친구들이다.





서툰 운전에 찬송가 카세트가 돌아가는 용달을 비틀비틀 몰며 용케 도착한 바닷가. 그러나 영화의 시작과 엔딩에 그들이 자유에 환호하며 내달리는 해변의 수평선은 기울어져있다.





어른들 몰래 스스로 운전을 해서 포항 바닷가까지 도착한 것 만으로 그들은 한껏 고무되어 있다. 지나가는 여대생에게 추파도 던져보고, 눈치 보지 않고 맥주도 마셔본다. 시원한 바닷가에서 반반 치킨을 시킨 넷은 약속이나 한 듯 양념이 전혀 묻지 않은 한쪽 치킨을 앞다투어 집어 먹는다.


일단 양을 확보하기 위해 한 일찍 베어 물어 찜한 치킨 조각들을 접시에 쌓아 놓는 영락없는 사춘기 장난꾸러기 소년들은 마지막 접시에 남은 치킨 양념까지 싹싹 묻혀 먹고서야 옆자리 입 맞추는 커플이 눈에 들어온다.





흥에 오른 취기로 부둣가에 이른 그들은 우연히 남자의 폭력에 처한 여자를 구하려다 시비에 휘말린다. 영화 복선이 즐거움으로 시작했기에 서사의 진행은 그 즐거움의 단절로 향할 수밖에 없다.





"어른이면 어른 답게 굴어야지, 왜 여자를 때려요?"

주먹이 오고 가는 과정에서 사고로 추락사한 상대방 남자를 보며 갑자기 오열하는 여자를 카메라가 비출 때, 이미 관객은 폭력의 방향이 네 주인공을 향함을 직감한다. 순진한 정의감의 대가는 쓰다.





네 주인공들에게 들어선 일차적 감정은 억울함이다. 고마움까지는 바라지 않았어도 뭔가 잘못되었다. 오류는 이내 밝히면 될 것이고, 진실을 밝혀질 것이고, 어렵사리 온 이 즐거운 여행을 마치면 된다. 그렇지? 맞지? 그들은 불안한 눈빛을 나누며 경찰서로 간다.





그들의 순진한 논리에 어른들은 노회하게 세상의 언어로 응대한다. 어른들은 이미 어른으로 오래 살았다. 거짓과 비정의 언어에 응대하는 법을 아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늘 그렇고 그런 닳아빠진 어른들을 대하며 살아온 경찰은 아예 처음부터 네 청년의 결백 여부에 무심하다.


부모들 역시 진실에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내 아이가 문제없이 풀려날 것인가 앞 다투어 언성을 높인다. 어쩌다 착한 내 아이가 저런 나쁜 친구들의 꼬임에 빠졌단 말인가 다른 아이의 부모를 향해 분노한다. 아이들의 부모는 하나 둘 등장해서 힘의 서열에 따라 경찰을 지배한다. 권력을 가진 자의 주장은 사실이 되고 이내 진실이 된다.





결국 가장 힘이 없는 상우가 모든 잘못을 고스란히 뒤집어쓴다. 상우는 할머니에게는 둘도 없이 귀한 손자이지만, 세상의 논리로 보면 가장 만만한 먹이일 뿐이다. 경찰에 쫓기다 차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에서 헤매다 세상을 떠난 상우의 장례식장에서 할머니는, 긴 세월 그렇게 살아왔듯이 이번에도 한숨과 눈물 대신 말이 없다.







부모들이 네 친구를 갈라놓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은 비결은 어른들이 그들의 연대를 해체하는 데 사용한 감정이 불안이었던데 있다. 억울함, 분노에 이어 공포에 이른 아이들이, 그들에게 그토록 소중했던 친구인 상우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에 동의하고 나서도 아이들의 죄의식은 돌아오지 않는다. 용비만이 죄의식을 마비시켰던 불안에 상우의 환상을 보며 오열한다.





영화 내내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재배치는 여행을 떠나기 전의 그들과 떠난 후의 그들의 전후 대비를 선명하게 한다. 소년과 어른 사이에 머물러 있는 청춘이 그들이 가장 가고 싶지 않았던 방식으로 기념할 수 밖에 없는 <글로리 데이>.




한쪽의 치킨에 몰리던 네 청춘의 여린 손은 이제 자극적인 양념에 버무린 다른 반쪽의 치킨을 먼저 먹어야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영어 타이틀은 떠나면 돌아올 수 없는 편도여행(one way trip)인가. 청춘은 기대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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