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끼리 그런 거 없다"

<친구>의 곱창

by note by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낯설다. 어린 시절 희뿌연 소독차를 따라 달리며 노점 도둑질을 공모해 본 사이라면, 바닷가에서 검정 튜브 하나에 열십자로 매달려 시답지 않은 내기로 시간을 보내 본 사이라면, 나를 지키기 위해 자멸한 친구에 대한 기억과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 영화는 세 번 보았다. 처음엔 재미로 , 두 번째는 일 때문에 팩트 확인 차, 마지막은 이들과 같은 세대인 부산 사람의 설명을 듣고 정말 그런가 또 확인차.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초반에 옆구리에 가방을 끼고, 동네 여학교 축제를 기웃거려본 이 영화의 또래의 사람들에게는, 영화 골목의 질주나, 영화관 화장실 난동 사건이나, 교사의 신들린 폭력은 젊은 날의 한 페이지인 동시에,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결핍의 기억일 것이다.







딱히 빛나는 것이 없기에, 영화의 네 친구의 정체성은 소속감과 폼 잡기에 있다. 준석 역의 유오성이 법정에서 극형을 무릅쓰고, 자신의 모든 잘못을 인정하자, 면회를 온 상택이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나무랄 때, 준석은 서슴지 않고, “쪽 팔리면 안 되지 않냐” 며 일축한다. 그의 ‘쪽’이란 목숨과도 같은 것으로, 그 속에 무슨 사연이 있든, 제 입으로는 죽어도 내뱉지 않는 부산 사내의 폼이고 자존심인 것이다.







영화 ‘친구’의 내레이터가 가장 희미한 개성의 인물, ‘상택’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밋밋한 모범생 캐릭터 상택은 가장 이 그룹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이면서도, 매 순간 각 친구의 접점에 얹혀 있는 깍두기 같은 존재다.


준석이 마약에 절어 바들바들 떨면서 죽은 어머니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러 나가자고 할 때, 그의 발가벗은 몸에 파카를 덮어 씌워 부축하는 친구는 상택이다. 한 번도 약체를 보이지 않던 준석이 무안해하며 개인택시 하나를 뽑아 달라고 부탁하는 대상도 상택이다. 그는 연극에서 컨피던트의 역할을 하며, 폼에 살고 폼에 죽는 무뚝뚝한 사내들의 속내를 전달하는 화자다.







이 영화에는 한 번도 주인공 넷이 무엇인가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장면이 없다. 한 녀석의 엄마가 일본으로 장사를 다니며 구해온 묻지 마 비디오테이프를 침을 꼴깍대며 보는 장면만큼도 감독 곽경택은 음식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식탁을 할애한 것은 준석과 상택의 재회 장면이다. 세월이 흘러, 택시를 타고 가는 상택 앞을 번개같이 앞뒤로 가로막아 서는 검은 세단과 깍두기 사나이들 사이에서 준석은 그와 재회한다. 택시 유리를 치며 호탕하게 웃는 준석은 마약도 끊고 멀끔하게 잘 나가는 듯 ‘폼’이 난다.







지난날과 달리, 잘 나가는 준석과 허름한 대학생 상택이 술잔을 비우는 곳은 친구의 유일한 음식 장면인 곱창집이다. 조폭의 우두머리가 된 준석이 세상살이를 훈계하며 이미 술이 벌겋게 오른 상택과 소주를 나눌 때, 두 친구 모두 그간 살아온 세세한 이야기는 없다. 이미 취한 상택이 조폭이나 건달이랑 뭐가 다르냐고 하자, 상택은 그런 상택을 노려보는 부하들에게 차 트렁크에 들어가 근신을 하라고 대갈을 한다. 그렇게 그들 사이는 멀고도 멀지 않다. 지난 과거는 각인되어 있다. 서로 보이고 싶은 모습은 보고 있는 모습과 어긋난다.


그러나 우정은 곱창의 지방처럼 안에 돌돌 말려 숨을 죽이고 있다가, 불판에 볶이고 뒤집히며 서서히 밖으로 밀려 흐른다. 이해되거나 이해되지 않거나 뭉쳐있던 시간과 기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지글지글 있는 대로 안의 것을 밀어내고 게워내는 곱창의 기름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두 친구의 인생관을 섞는 비빔장 같다.


준석이 상택을 업고 가다가 길바닥에 넘어지고, 이내 일어나 세단을 타고 사라지는 장면에서 두 친구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지만, 지나온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서로의 상처와 아물지 않은 딱지를 보고난 이후다.






곱창을 요리해본 사람이라면 도무지 냄새를 빼는 일이 여간 골치가 아님을 안다. 물에 담가 핏물을 충분히 뺀다. 깨끗이 빠지면 마늘이나 생강으로 냄새를 없애는데, 조미용 술이나 후춧가루, 산초 등 향신료를 넣는다. 곱창 표면의 굳은 허연 기름은 밀가루와 왕소금을 넣고 바락바락 주무르고 그도 여러 번 씻어 주어야 한다.


튜브처럼 생긴 데다 질기다. 하지만, 철분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싸다. 허약한 사람이나 환자가 보신으로 먹는다. 술과 먹으면 알코올 분해까지 한다. 위벽도 보호하고, 소화도 잘 된다는 속설까지 믿으며, 오랜만에 취할 밤이면 허름한 곱창집에 들어서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 쌓인 말은 많아도 정작 뱉을 말이 없는 친구 앞에서, 질겅질겅 씹기에 이만한 음식도 없다. 무 자르듯이 베어 물고 싶으나 입안에서 씹고 또 씹어야 하는 곱창.


희미하게 남은 피비린내와 함께, 결핍으로 내달린 청춘이 실은 바람 앞의 반딧불 유희였음을 씁쓸히 삼키는 누군가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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