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범 감독의 2010년 영화 ‘아저씨’. 우중충한 전당포 주인 태식에게 옆집 소녀 소미는 같은 그림자였다가 죽을힘을 다해 늪에서 기어 나오는 같은 빛이다. 엔딩 전까지 철저히 서로의 빛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몰래 덮는 존재임을 관객들만 안다.
나이트클럽 댄서인 엄마가 문득 딸을 궁금해하는 드문 시간을 제외하고 소미는 늘 혼자 노는 아이다. 자신의 세상에 없는 알록달록한 색깔을 친구들 손톱에 발라주며 그렇게 유채색의 순간을 붙잡고 사는 초등학생 소미는 무뚝뚝하지만 귀찮은 듯 가끔 자기에게 반응해주는 태식과 같이 있는 시간이 좋다.
‘감옥이 어울릴 것 같은’ 이상한 아저씨와 노는 것을 엄마가 질색하지만, 소미는 엄마보다 태식과의 시간이 즐겁다. 태식이 외출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신곡을 잔뜩 다운 받은 보물 1호 Mp3를 저당 잡혀 푼돈을 빌린다. 이것 말고는 전당포 아저씨에게 말을 건넬 방법이 없다.
무거운 비밀을 지고 사는 태식도 소미와의 시간이 싫지 않다. 흰 국화를 사들고 들어오는 길에 슈퍼에서 산 소시지를 소미 시야 주변에 올려 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서로 닮은 존재임을 알지 못한 채, 이렇게 옆집 아저씨와 옆집 소녀는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며 흥정과 계약 관계를 유지한다. 계약관계를 유지하는 한, 함께 있는 시간에는 명분이 있다.
태식과 세상 사이의 막이었던 전당포의 철창은 ‘나도 소시지 좋아하는데’ 반색하는 소미에게 천천히 열리고, 둘은 처음 식탁에 마주 앉는다. 어둠의 전당포 이면에 그런 따스한 밥상이 있으리라고는. 그러나 처음 그 밥상에 앉은 소미는 늘 거기서 밥을 먹어왔던 아이처럼 앙증맞은 수저질로 달게 먹는다. 태식의 허기는 음식 대신 이 시간을 먹고 마신다. 소녀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는 태식의 구부정한 등이나, 창가를 향한 시선은 나중에 소녀에게 고백했던 것처럼 ‘너무 아는 척하고 싶으면 모른 척하고 싶어서’다.
소녀의 엄마가 딸을 찾으러 오자, 태식이 밥그릇을 감추어 소미가 왔던 흔적을 애써 감추는 순간 두 사람은 어설프지만 공모자가 된다. 이 공모의 기억은 며칠 후 소미가 경찰관에게 태식을 아빠라고 가리키는 순간으로 연결된다. 밥상을 차려 주고, 엄마에게 혼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단 하나뿐인 사람이 ‘옆집 아저씨’ 일 때, 소녀는 집요하고 애처롭게 제 마음을 연결한다. 태식이 경찰에 잡힌 소미를 모른 체했을 때, ‘아저씨를 미워하면 세상에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며 소미는 자기를 뿌리치는 ‘아저씨’와 연결된 매듭을 잘라내지 않는다.
결핍된 것을 찾아 나서는 인간의 본능은 때로 찾아 나선 결핍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소시지 부침. 질 좋은 순살코기 소시지 안쪽에 방치된 싸구려 소시지는 소풍날 새벽 부엌에서 흘러나오던 김밥이나 계란말이와 곁들인 도시락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여자와 곧 태어날 아기를 삶의 절정에서 빼앗긴 태식에게, 소시지 부침은 낯설다. 태어났더라면 이쯤 자라 밥상 건너편에서 종알대고 있을 아이와 나누어 먹었을 소시지 부침은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이다.
철저히 외곽에서 살며 누런 벽지의 쪽방에서 마약의 순간에만 행복에 전율하는 엄마의 삶에 귀를 틀어막고 살아가는 소미에게도, 소시지 부침은 낯설다. 밥상 건너편에서 학교 이야기며 꿈 이야기를 물어줄 엄마도 아빠도 가지지 못한 소미에게 소시지 부침은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이다. 결핍은 사라지지 않고 당당히 제 자리를 요구한다. 그래서 없으나 늘 있다. 결핍을 잠시 잊게 해 줄 존재를 위해 굽고 먹는 소시지 부침의 어색한 충만감은 그래서 더욱 슬픈 퍼포먼스로 기억에 남는다.
소미는 처음에는 태식의 그림자를 덮는 빛이었으나, 소녀의 엄마가 마약을 빼돌려 참혹하게 살해되고 소미 역시 납치되면서 태식에게 묵직한 장애가 된다. 그러나 소미를 구해내는 과정에서 태식은 오랜 상처와 마주하고, 묵은 딱지를 떼어내고 그 안의 고름의 늪에서 필사적으로 기어 나온다. 함께 파르스름한 어둠과 악취의 세계의 긴 터널에서 빛으로 나서는 것이다.
이제 혼자 살아가야 할 소녀에게 ‘아저씨’는 경찰을 잠시 기다리게 한 채 문방구에 가서 책가방을 사준다. 소미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책가방이다. 이제 다른 아이의 책가방을 훔쳤다고 누명 쓸 일도 없을 것이다. ‘‘한번 안아보자". 안을 대상도 안았던 기억도 없는 아빠와 딸은 그렇게 머뭇거리며 처음 안아본다. 어색한 몸짓으로 서로 누군가가 되어보고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