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면 덜 추울거야"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스파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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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스파게티는 특별한 날 먹던 음식이었다. 입학식, 졸업식에나 먹을 수 있었던 짜장면 시대를 지나 이 붉은 이탈리아 국수도 새콤달콤한 소스를 입가에 한껏 묻혀가며 특별한 보상의 음식이었다. 미트볼 같은 동그란 고기가 그것도 덩어리로 올려져 있는 날이면 얼마나 잘게 나누어 먹었던가.


이제 스파게티 대신 더욱 홍알홍알한 이름의 각종 파스타가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한 그릇 수북했던 붉은 것을 대체하기에 파스타는 너무도 세련되고 매끈하다. 요리는 밥상을 대체하지 못한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밥상에는 영화 내내 먹을 것이 거의 없다. 건강도 주머니도 여의치 않은 독거노인 다니엘도, 싱글맘 케이티와 두 아이들도 배불리 먹은 기억이 없다. 그들이 처음 만난 곳도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찾아가 냉대만 받고 돌아선 관공서 대기실이다.





숙련된 목수인 다니엘은 평범하고 성실한 시민이다. 옆집 청년이 내다 놓은 쓰레기를 제때 버리라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중국에서 짝퉁 운동화를 몰래 들여와 암시장에서 판매하는 그에게 세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기 주소를 사용할 수 있게 눈감아 주는 정 많은 동네 아저씨다. 죽도록 노동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어 그런다는데, 자기도 그리 생각하니 반대할 명분이 없다.





다니엘은 심장 질환을 겪고 있다. 뛰어난 목수로 묵묵히 일했으나, 이제는 언제 찾아올지 모를 심장 마비 때문에 의사에게서 일을 쉬어야 한다는 권고를 받았다. 일을 멈추는 것은 그에게 몸의 통증만큼의 고통이다. 할 일이 없으면 그나마 일터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일도 사라진다. 홀로 있으면 떠난 아내의 빈자리도 커 보인다. 아이도 없다. 컴퓨터를 모르니 세상 돌아가는 일도 알 수 없다. 수중에 돈도 없다.


가난과 병과 매일 싸우는 삶이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도움이나 동정을 구하지 않는다. 남아있는 힘으로 살고, 그나마 자기보다 힘든 사람들을 조용히 도울 뿐이다. 실업급여 신청소에서 케이티를 도와 부당한 대우를 항의한 것이나, 주머니 푼돈을 털어 전기를 신청할 돈을 싱글맘 식탁에 두고 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나마 빡빡했던 삶인데, 실업급여를 위한 의사의 소견서가 행정적으로 잘못 처리되어 이리 저리 공무원 손을 오가는 동안 다니엘의 삶은 불편하고 고달프게 변한다. 평생 소박하고 검소한 삶이었지만, 견딜 수 있는 최저 생계도 위협받을 정도가 되었다. 종일 관공서에 전화를 하고, 찾아가는 일의 반복은 그렇다 쳐도, 이해할 수 없이 복잡하고 어이 없는 행정 공무원들의 일 처리에 더욱 지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고압적이고 당당하다.


다니엘의 실업급여 신청을 기각한 담당자는 물론이고 복잡한 상고 절차는 더욱 어이가 없다. 당장 식료품비가 없는 사람에게 구직 노력을 하라고 이력서 특강 수강 의무를 들먹이는 부조리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끝까지 애써 인내하며 소통하고 기다린다. 다니엘의 감정선의 진폭을 담담히 그린 영화 전 과정에서 다니엘은 품격 있고 의연하다.





케이티는 다니엘을 처음 만난 날, 두 아이들과 처음 낯선 도시로 이사를 왔다. ADHD를 겪는 아들이 끊임없이 내는 소음 때문에 집 주인에게 쫓겨나 노숙자 숙소에서 2년을 살았다. 케이티와 아이들은 이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정부 보조금 신청만 되면, 허름하지만 집세를 낼 수 있고, 아이들은 과거를 알지 못하는 새 친구들을 만나며, 케이티는 다시 방송통신대학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행정 공무원들의 차갑고 무성의한 업무 처리로 케이티의 기대는 물거품이 된다. 새 도시에서 이곳 보조금 신청소를 찾아 오느라 길을 헤매 시간 약속에 늦은 것이 공무원들에게 건너편 가족의 절실한 생계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는 갖은 수모를 견디면서 이들의 사정이 보기 딱했던 다니엘은 ‘그 몇 분 늦은 것이 무엇이 그리 대수요?’ 이 한마디 했다는 이유로 케이티와 나란히 관공서에서 쫓겨나고, 그들은 그렇게 ‘아는 사람’이 된다. 도움을 주는 것도, 청하는 것도 어색한 성정을 공유하는 노인과 싱글맘은 조심스럽게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의 경계에서 짧은 가족의 행복을 나눈다.





다니엘 아저씨가 새집 변기와 두꺼비집을 고쳐주러 오는 날은 아이들에게는 촛불과 버려진 화분으로 방을 따뜻하게 덥히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숙련된 목수가 만든 나무 모빌은 새 학교, 새 친구와 적응할 일로 마음 졸이는 소녀에게 창가의 빛을 선사한다. 늘 부산스럽다는 비난 속에 살아가는 어린 소년에게 다니엘 아저씨와의 시간은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평화를 선사한다.





딸이 밑창이 벌어진 운동화 때문에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것을 알고 매춘을 하게 된 케이티는 자존심을 버리고 번 돈으로 딸의 운동화를 사고 밥상을 차린다. 스파게티의 성찬은 붉고 달콤하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 늘 사과를 먹는다던 케이티가 나중에 극빈자 지원시설에서 복숭아 통조림을 퍼먹다 오열하는 장면에서야 그녀가 얼마나 허기졌는지, 허기가 얼마나 그녀의 자존심을 짓밟았는지, 그 자각이 얼마나 한 사람을 절망케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다니엘 조차 케이티의 매춘을 막지 못하고 돌덩이 같이 딱딱한 스파게티를 목으로 넘긴다.





그들의 밥상은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이 무심한 세상의 파도에 잠기기 전 마지막 성찬이다. 의연한 사람이 애써 숨겨왔던 묵은 눈물이 붉은 스파게티 위로 툭 떨어진다. 잔인하다. 담담해서 견디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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