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매력적이다. 혼자 밥을 먹는다든가, 혼자 영화를 본다든가, 혼자 미지의 여행지로 떠났다가 머물고 돌아오는 일에 익숙하다. 불편하지만 참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리 지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독립과 자유가 그들에게는 편한 신발이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이유는 그들의 희소성이다. 어디론가 떠나 있어, 돌아와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들만 아는 이야기여서 누구의 서사와도 비슷하지 않다. 비슷비슷한 여행 후기는 이미 행복에 들뜬 이들의 SNS에 충분히 넘쳐난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른 사람과 못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작정하고 나온 듯 재미있고 유쾌하다. 혼자 보낸 시간만큼 접어둔 교류의 본능일까. 좌중의 사람들은 그가 같은 모습을 자주 노출하지 않았기에 궁금해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듣고 왔는지, 그의 서사는 그동안 괄호 안에 비어있었다. 그래서 같은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던 다수에게 존재만으로도 신선하다.
조용히, 부지런히 여행하는 바람의 아들딸들과의 대화는 즐겁다. 간혹 그들과 운 좋게 함께 여행하게 될 때, 얼마나 촘촘하게 시간을 분절하여 사용하는지 감탄한다. 그들의 사고는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이다. 많이 보고 듣고 읽었기에 화살표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카페에서 주문한 작은 조각 케이크에서도 중국 환관의 편지에서 새로 나온 독일 도자기 티 세트의 마블 디자인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들이 운전하는 차는 갑자기 항구 도시, 그것도 환상의 전망대 대신 정박 중인 화물선 앞에 멈춘다. 태생 자체가 생존이었던 도시의 출생지로 피상적인 관광객이었던 나를 데려다 놓는다. 이 생경한 경험에서 나는 겸손해지며, 이 사람과 계속 여행하고 싶다는 갈망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잡기 어렵다. 다시 혼자 떠나거나 이리저리 이동하기 때문에.
살아가며 형성한 인간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이유는 우리의 시간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우연한 만남이기 때문이리라. 우연 이후 관계는 일시적이거나 지속적이다. 노력이라기보다 편안함과 끌리는 자성에 가깝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은 서로 닮고, 더욱 유사한 경험의 연대를 이어간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진정한 친구를 원한다. 친구도 개인의 성정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계속 자주 만나 먹고 마시며 지속해서 사람이 필요하고, 어떤 이는 서로 성장을 지켜보면서 건조하지만 긴 유대를 유지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단기간 디오니소스처럼 나타나 쾌락에 가까운 환락의 즐거움을 나누고 이내 사라진다.
끈끈한 지속성, 은근한 연대, 자극적인 단발성 사이에서 자신이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알고 나서야 편안히 시간과 노력과 마음의 자리를 비울 수 있다. 그래서 정리되고 적어지는 친구의 숫자는 점점 불필요한 무게의 외투에서 벗어나는 중인 기꺼이 본연의 나로 가는 또 다른 여정이다.
산을 넘으면 산이요, 강을 넘으면 강이고 친구와의 악수만 한 것은 없다. 그래서 각자 부지런히 바쁘게 달리다 충동적으로 어디론가 함께 떠날 수 있을 때, 바닷가의 반질반질한 조개껍데기나 소라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온다. 그 사람과의 짧은 산책이 도시의 귓가에 길고도 안온한 바닷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