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나 반가웠습니다. 여전히 나는 두리번거리며 걷는 사람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시기에 이렇게 답하는 것이 제일 정확할 듯해서요.
그건, 어릴 때부터 산책에 길들어 있어서예요. 아버지는 늘 바쁘셨지만, 가족들과 저녁나절 걷는 것을 좋아하셨고, 몸이 약하셨던 어머니도 산책하러 꼭 같이 가셨습니다. 그 산책길에서 무슨 일로 그렇게 웃었는지 희미합니다.
어릴 때처럼 자주는 아니었어도 내 시간 안에 산책은 늘 있었습니다. 새로 이사하면 늘 주변에 나무들이 많은지 먼저 보았어요. 이렇게 돌아서 걸으면 되겠다, 미리 점쳐두고 가다가 샛길이나 뜻밖의 오솔길을 찾을 때면 행복했지요. 삼십 분 걸음 안에 냇물과 공원이 많은 동네 살 때는 자전거를 즐겨 타지 않았던 듯해요.
내게 산책은 두리번두리번하는 발라되르(balladeur)의 시간, 들여다보고, 어슬렁거리는 소박한 집중의 시간입니다. 역방향으로 흘러 지나가는 풍경은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성을 갖습니다.
하루하루 익어가거나 시들어가는 자연의 시간, 어제보다 오늘 행복 여부와 무관하게 하루 더 죽음에 가까이 가는 사람의 시간, 우주의 질서에 맞춰 경계를 넘는 계절은 발걸음마다 변해 있는 것과 변할 것을 받아들이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거나, 조금 전 곁에 있던 사람을 잃어본 사람은 영원을 믿지 않게 됩니다. 모든 것을 나눈듯하였다가 이내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은 극적인 단절은 그가 남기고 간 작은 물건, 손글씨, 깔끔하게 정리해 둔 전선, 갈라진 비누 같은 풍경이 끊임없이 소환하는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렇게 변하고 떠나는 풍경에 익숙해지면 언젠가 삶의 일부가 될 극적인 단절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누구나 지구를 떠나니, 누구나 언젠가는 떠나 보내는 일상을 살아야 합니다.
아이스크림을 물고 바라보던 어린 날의 빗방울처럼 가볍게, 때로는 땅에 떨어져야 소리를 내는 성년의 빗방울답게 위중하게 걷고 싶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길의 풍경을 선명하게 담아 두기 위해, 오늘도 잠시 걷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