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이제라도 말하고 싶었어"

by note by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네바 메스커레이드를 찾아보세요. 코 주위 회색빛 털이 가장무도회 가면을 쓴 것 같이 생겼어요.“

핸드폰 사진 속 고양이가 예쁘다고 하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랫집 이웃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 명예인 듯 들렸다.

"00동 동물병원에 네바 매스커레이드의 브리더가 있어요."

그길로 바로 그곳에 갔다. 누군가와 한집에 사는 결정으로는 지극히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두 고양이 중 더 마음에 드는 아이로 하세요. 남매예요.”

브리더 선생님이 고양이 두 마리를 데려왔다. 둘 다 가만히 바구니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선생님 책상에 올려진 것이 두려워서였을까. 낯선 이가 들어서면 으레 하나씩 사라지던 다른 고양이처럼 저들도 그렇게 떠나게 될 것을 알아서였을까. 책상 밑에도 숨고, 훌쩍 뛰어 건너편 책장 책더미 위쪽으로도 숨었다.

그 와중에도 둘의 성격이 보였다. 수컷은 ‘너 따위가 무슨 짓을 하든, 그러던지 말든지’ 하는 호기가 있었다. 캣쇼 월드 챔피언이라는 아버지의 호랑이 무늬를 그대로 이어받아 작지만 위엄 있는 아기 호랑이를 닮았다, 눈빛에 공격성도 보였다. 반면 여동생은 눈에 보기에도 애처롭게 바들바들 떨면서 겁먹은 눈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 책상의 따뜻한 컴퓨터 뒤로 숨어 몰래 나를 바라보는 눈은 비췻빛이었다. ‘내 뜻대로 안 되어도 어쩌겠어.’ 체념한 눈빛이었다. 더 다부지고 더 씩씩한 야성의 사내 고양이 대신 나는 이 여리고 불안한 아이를 안았다.


집으로 오는 길, 적색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옆 좌석 위의 가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흰 털 사이로 다시 깊고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나에게 마음을 붙여 보려는 듯, 슬픔과 호기심이 함께 묻어났다. 아무리 한 달이면 화장실까지 알아서 하는 영민한 동물이라고 두 달 만에 어미를 떠나고, 이어 오빠와 있던 동물병원을 떠나는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을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번개 같은 속도로 거실로 달려 들어가 소파 밑으로 들어가서는 그다음 날까지 나오지 않았다. 마트에 가서 일단 필요한 것들을 샀다. 화장실, 모래, 스크래처, 밥그릇, 사료, 이동용 가방, 몇 개의 장난감, 스트레스 받으면 씹어 먹어야 한다는 작은 화분도 샀다. 집에 오는 길에 책방에서 산 <고양이 기르기>라는 책을 읽었다.


아기 고양이가 이틀이 되도록 소파에서 나오지 않아, 사료와 물그릇을 소파 안쪽으로 넣어 주었다. 쥐 장난감이나 깃털 같은 것을 음흉하게 흔들어도 보았지만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난감을 던져두면 이내 소파 밑으로 장난감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에 웃음이 났다. 나중에 소파 밑에 들어가서 고양이의 앵글로 보니, 의외로 이 자리는 감시와 관찰에 적절한 안전한 자리였다. 뒤가 막혔고, 거실이 한눈에 보이며, 무엇보다 어두웠다. 이틀 동안 화장실도 안 가고, 밥도 물도 안 먹으며 어두운 소파 밑에서 홀로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경계가 허기보다 강한 야생의 본능인가 짐작할 뿐이다.


처음 고양이가 내게 스스로 다가온 것은 둘째 날 밤이다. 얼굴 가까이 기척이 느껴져 눈을 뜨자 흰 고양이 얼굴이 코를 바짝 들이대고 있었다. 킁킁.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일단 눈을 다시 감았다. 그대로 있어야 이 아이도 그대로 있어 줄 것 같아서. 잠시 후 실눈을 뜨자 이 아이가 눈을 한번 깜빡했다. 나도 눈을 한번 깜빡. 아이도 다시 깜빡. 나도 따라서 다시 깜빡. 이것이 고양이 키스라는 것을, 나중에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고 알았다. 고양이가 인간과 눈을 맞추고 눈을 천천히 깜빡깜빡하는 그것은 당신을 경계하지 않는다는 마음 표시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난데없이 한밤중에 고양이 키스를 당한 그 날부터, 단 하루도 고양이는 내 머리맡을 떠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졸려도 내가 깨어있는 한, 밀려드는 잠을 참으며 곁을 지키고, 욕실 문밖에서 식빵 굽기를 하며 기다리고, 늘 반경 1m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누워있으면 서랍장 위에 올라가서라도 내 눈을 보고서야 잠들었다. 잠을 자다가도 내가 뒤척이면 이내 눈을 뜨는데 나중에는 저도 귀찮은지 눈만 돌렸다.


이 아이의 특징은 특이한 수동성이었다. 가끔 장난으로 허공으로 던져 얼러주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른 고양이는 몸부림을 치며 불안해한다는데 내가 던지는 대로 가만히 내 눈만 지긋이 보고 있었다. 받아 줄 것이라 믿는 눈빛이었다. 때로 이 믿음이 부담스러웠다. 누군가가 한없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은 부담이었다가, 서서히 우리의 시간이 쌓이며 함께 있는 일이 일상이었다가, 서서히 기대고 싶은 안온함이 되었다.


이사를 하면서 고양이를 다른 집으로 보냈다. 떠나 보낸 후, 다들 오래 허전함의 늪에서 지냈다. 우리 고양이를 유독 예뻐했던 친구가 아이를 데리러 왔다. 마지막으로 생일날에나 주었던 고급 참치통조림에 생선포를 듬뿍 올려 마지막 밥을 먹였다. 가방에 좋아하던 요구르트 비스킷도 넣었다. 특식이었던 음식들로 배가 부르면 나를 용서해주기를 바라며…. 늘 동물 병원에 예방 접종을 하러 다닐 때 사용하던 가방에 아이를 넣었다. 병원에 가는 줄 알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때와 달리 순순히 가방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나로부터 등을 돌리고 반대쪽으로 시선을 두고 몸을 웅크렸다.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쓰다듬으면 으레 들리던 그르렁그르렁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떠나 보낸다는 것을 아는 것만 같았다.


친구의 차와 떠나고 난 몇 시간 지난 후, 친구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내가 괜찮은지 전화를 했다. 나는 고양이가 괜찮은지 묻지 않았다. 더 길게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는 나에게 카톡으로 고양이의 사진과 소식을 전해주었다. 식구가 많은 농장 생활에 이내 적응을 한 듯 보였다. 아침이면 친구가 자동차에 태우고 동네 과학관으로 드라이브도 다녀오고, 가까운 바다도 간다고 했다. 우리 집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밖에 나가지 않았던 고양이에게는 신세계일 그것으로 생각했다. 어서 이곳을 빨리 잊기를 원했고, 먼저 잊는 쪽이 고양이이기를 바랬다.


친구가 전화 끝에 처음 몇 주간은 고양이가 늘 문 앞에 앉아 문이 열릴 때마다 돌아보았다고 했을 때, 나는 그것이 7년을 넘게 지낸 우리에 대한 기억일 그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내 적응하고 참치통조림 정도 있으면 행복할 짐승이라 생각했다. 소식은 점점 뜸해졌고, 고양이의 기억도 뜸해졌다. 나는 다른 일에 몰두해 봄, 여름을 보냈다. 친구도 촬영에 들어가면서 연락이 뜸해졌다. 몇년 후 다시 만난 친구는 이민을 가게 되어 고양이를 다른 집에 보냈다고 했다. 어디로 갔는지 물을 수 없었다.

얼마 전 고양이의 흰 털이 붙어 있는 코트를 꺼내 입었다. 일부러 세탁을 하지 않았다. 즐거울 때면 목에서 내던 그르렁그르렁 소리도 귓가에 들려왔다. 먹이를 받을 때보다, 눈을 맞출 때, 눈을 맞추고 말을 걸 때, 품에 안고 말을 할 때, 품에 안고 가만 눈만 맞출 때 행복해하던 따뜻하고, 부드럽고, 동그란 털 뭉치... 사람으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외로워도 말 한마디 못하던 바보가 세상을 떠나는 날, 나는 비로소 그 어떤 사람을 위해서도 흘려보지 못한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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