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양파 수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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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를 보면 설렌다. 올해도 가을 알랭뒤까스 양파 수프를 만들 생각에 더 그렇다. 흩어지는 단풍에 창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때다. 햇 양파는 잘 볶아지지 않아서 늦가을에 볶아야 하기 때문에 한 해 양파 글레이즈를 꼭 미리 만들어 둔다.


우선 소고기 양지머리를 끓여 한번 물을 버리고, 다시 끓여 식힌다. 육수가 식으면 수면에 하얗게 기름이 끼는데 차갑게 둔 채 건져야 기름을 깔끔하게 모두 건질 수 있다. 육수를 얼음 틀에 넣어 얼려 두면 하나씩 똑똑 꺼내 쓰기 편하다.


양지는 꺼내 사각으로 깍둑 썬다. 모양이 일정하면 수프에 넣었을 때 치즈에 감겨 비슷하게 한 입씩 떠먹기 편하다. 양파, 치즈, 노글 거리는 빵이 모두 부드러워 유일하게 씹는 식감의 즐거움이다.


올리브 오일 바른 팬에 양파를 잘라 볶는다. 요리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글레이즈라고 부른다. 희고 투명한 양파가 서서히 색이 변해 노랗게, 갈색, 나중에는 벽돌색에 가까워질 때까지 낮은 불에 볶는다. 미운 사람 괴롭히듯 오래 들들 볶는데, 중간중간 양파가 타지 않게 계속 곁에서 나무 주걱으로 섞어 주는 게 중요하다.


양파 색이 짙은 갈색이 되었다 싶으면 그때 버터, 소금, 후추를 넣어준다. 미리 버터를 넣으면 갈색 글레이즈가 되기도 전에 타버리니까. 해마다 올해 글레이즈가 그 전해의 글레이스 보다 예쁘게 완성되었다 싶으면 왠지 뿌듯하다. 이렇게 볶아 둔 양파는 얇게 펴서 지퍼 백에 넣어 냉동해두고 또각또각 한 조각씩 떼어 쓴다.


작은 오븐용 뚝배기에 네모난 양지고기, 기름기 없는 쇠고기 육수, 양파 글레이즈 두어 쪽, 집에 있는 식빵 가장자리 자른 것이나 바게트 한두 쪽 넣어준다. 열로 빵 겉면이 바삭하게 구워진다. 사각으로 잘라 넣어 크루통(crouton) 으로 먹어도 좋다. 위에 통통한 모차렐라를 올려 토스터나 오븐에 덥혀낸다. 치킨 스톡 반개 넣어 주면 적당히 간이 맞는다.


죽죽 늘어나는 치즈를 양지와 빵에 스카프처럼 감아 뜨거운 수프 국물과 먹는다. 매운맛만 빠진 김치찌개 맛도 나고 스푼 끝에 남은 치즈를 쪽쪽 빨아먹는 재미도 있다.


글레이즈 한 양파는 두고두고 가을, 겨울을 지나 이듬해 봄까지 먹는다. 양파 수프도 자주 먹지만, 카레라이스나 덮밥 소스 만들 때 같이 넣으면 향이 좋다. 이맘때가 되면 남은 양파 글레이즈를 보며 아껴 먹는다. 똑똑 잘라내는 한 조각 크기가 작아지는 이유다. 그래서 늦가을에는 으레 갈색 양파 넉넉히 볶느라 서있다.


입에 들어온 순간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는 쉽다. 씹을수록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오래 걸린다. 시간뿐 아니라 세월이 걸린다. 할머니의 음식이 그렇고, 노포의 음식이 그렇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위로의 음식(comfort food)라고 하고, 어떤 책은 뭉근한 불에 오래 두어야 하는 음식을 영혼의 수프라고도 했었다. 일 년 치 먹을 양파를 볶으면서, 그 반복되는 뒤적임을 한 시간 남짓 하면서 든 생각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양파 수프를 먹으면 몸이 따습다. 마음 같지 않은 일상도 수프로 달랜다. 세 계절을 지나 봄날까지의 위로다. 일 년 한철 기다리며 여름을 보내고서야 햇 맛이 겨루지 못하는 진득한 맛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긴 답답한 구간을 지날 때, 계절의 추이처럼 내 시간도 언젠가 달큰한 햇살로 갈 것이라 믿는다.


따뜻한 양파 수프는 건너편 빈자리를 떠올린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도 내가 만들어 드린 양파 수프를 마지막으로 참 달게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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