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와의 인터뷰] 오하늬(디자이너 하니오)
“‘해보고 싶은데, 너무 늦었나?’ 하는 마음으로 도전해본건데,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정도로 재밌게,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일할 때도 컴퓨터 앞에, 쉴 때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만큼 이 작업을 좋아해요.”
취미는 취미로 남아있을 때 아름답다는 말, 창작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말 TOP 5안에 들 거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현재 걷고 있는 창작의 길이 너무 고달프고, 외롭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안 하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잘하고 싶고 즐거운 게 창작의 아이러니 아닐까? 배우고 싶은 건 배워보고, 해보고 싶은 건 꼭 해보고, 그 과정을 즐거움으로 물들이는 힘을 가진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오하늬의 풀(Pool)로 다이빙해보자.
하늬 작가님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그래픽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오하늬, HANEEO(하니오)입니다. 저는 주로 사물에 캐릭터를 부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콘센트를 보며 얼굴을 상상하는 것처럼요. 이렇게 만들어낸 존재들을 상상 속에만 두는 건 아쉽잖아요. 형태를 만들어 볼 수 있게, 기억할 수 있게 남기는 일이 자연스럽게 저의 취미이자 직업이 된 것 같아요.
3D작업을 주로하고 계시는데, 무대미술을 전공하신 이력이 특이해요.
무대미술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교 때 한창 <복수는 나의 것>이란 영화에 빠져있었어요. 영화의 내용을 떠나 영화 속 공간과 색감을 그림으로 인식했던 것 같아요.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영화미술을 배우고 싶어 무대미술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물이라면 어떤 책을 읽을까?’, ‘어떤 음악을 들을까?’ 대본 속 인물을 이해하고, 상상하고 표현한다는 것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무대와 영화미술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이 분야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해보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무대를 만들다가 가끔은 조명이나 소품도 만들고, 어느 날은 그림을 그리고, 공연 홍보물도 만들고 제 능력이 닿는 데까지, 어쩌면 닿지 않는 데까지 다 해내고 싶었어요.
짐작건대 분명 무대미술도 잘하셨을 것 같아요.
비슷하다면 비슷하지만, 보다 디지털화된 직종으로 옮기게 된 이유가 있나요?
바쁘게 살다가 어느 순간, 나만의 것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도 연극도 협업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온전히 관철하기란 어려웠어요. 내가 연출하고 내가 미술을 하는, 협업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만드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 지점에서 영화연출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선택한 이유는 협업 없이도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는 조건에 부합했고,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컴퓨터만 있으면 큰 제작비가 없어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그렇게 제가 원하는 방향의 교육과정을 찾다가 모션그래픽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캐릭터를 만들고, 캐릭터가 있을 만한 공간을 상상하고 현실의 제약 없이 상상하는 공간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3D는 굉장히 흥미로워요. 빈 화면에서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요. 특히나 현실에서 구현할 수 없는 연출을 할 때 장점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해요. 실제처럼 만들 거면 촬영을 하면 되니까요.
이전의 경력이 지금의 커리어에 도움이 된 점이 있는지,
그리고 지금의 커리어에선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무대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표현하고자 하는 공간감을 잡을 때 확실히 유리한 것 같아요. 일반적인 방의 스케일, 층고의 높이 등을 비틀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또 무대디자인, 영화미술 공부를 할 때 시각적으로 강렬한 개성이 있는 창작물을 좋아했어요. 그 인사이트들이 늘 이미지를 고를 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영상을 만들 땐, 보는 사람이 영상을 이해하도록 연출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창작자만이 의미를 알고, 보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보기에 멋지다고 한들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늘 보는 사람 입장에서 다시 보려고 노력해요. 두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한 장면이라도 기억에 깊이 남는 영상이 되는 것,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다시 찾아볼 만한 인상적인 영상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덧붙여 최근에는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도 신경을 쓰고 있어요. 캐릭터를 만들 때는 질리지 않도록, 대놓고 귀엽지 않도록 신경 쓰는 편이에요. 개인적으로 대놓고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보다 은근하고 정감 가는 느낌의 캐릭터를 좋아해서 그런가봐요.
지금은 스튜디오 Swim에 속해있는 아티스트시죠. 전공을 떠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새로운 둥지를 트는 시도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저는 하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영상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무대도 하고, 영화도 하고, 작가로서의 작업 활동도 해나가고 싶었고… 영상 학원 동기였던 최창희 감독도 영상을 배우기 전 음악을 했기 때문에 영상과 음악을 둘 다 하고 싶어 했어요. 욕심이 많은 두 사람이 모였죠. 그래서 따지자면 아티스트 두 사람이 모인, 아티스트 그룹 Swim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스윔이라는 이름은 넓은 물 위를 자유롭게, 각자의 방식으로 수영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지었어요. Swim에 속한 멤버들을 Swimmers라는 애칭으로 부르고요. 작업하는 모습을 누군가는 빠른 자유형, 누구는 느긋한 배영을 하는 모습으로 대치해서 생각했던 거예요.
스튜디오 스윔의 웹사이트를 보면 두 분의 실험정신이 돋보여요.
Pool, Swimming 등의 카테고리가 눈에 띄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스윔으로 행해지는 작업은 조금 더 대중적이고,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지향하고 있어요. Pool은 사이트의 카테고리 중 하나인데 각 디자이너의 개인작업을 올려요. 재미있는 작업, 공부해보고 싶었던 작업을 업로드합니다. 한가지가 더 있는데, Swimming이라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이건 클라이언트 없이 스윔의 멤버들이 각자 하고 싶은 작업을 기획하고 함께해내는 프로젝트입니다. 일로서의 영상만 만들다 보면 지칠 때가 있거든요. 놀이로서의 영상 만들기를 놓고 싶지 않아서 만들게 된 개념이에요.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아도 우선순위를 정해야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부딪치며 배웠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 중 가장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많이 쏟게 되었습니다. 그게 모션 그래픽이었고, 그래서 지금은 자연스럽게 스튜디오로서 스윔이 되었어요. 나머지 것들에 대한 욕심은 버렸을까요? 아니요. 버리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단지 우선순위가 생겼다는 것만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소수의 인원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스윔의 작업과 제 작업이 비슷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어요. 주로 디자인을 리드하는 사람이 저, 아니면 최창희 감독인데, 서로의 스타일이 비슷하고, 서로 상의해서 작업하기 때문에 더욱 스윔 작업과 개인 작업에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해요. 앞으로 스윔을 이루는 구성원이 다양해지면, 스윔의 색은 조금 더 다양해질거라고 생각해요. 누가 리드하냐에 따라서 프로젝트의 스타일이 달라지고, 프로젝트마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스윔의 메인 디자이너로서 밀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스튜디오 스윔의 리더이자 창립 멤버로서, 지향하는 가치가 있나요?
스윔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다듬어 나가는 것이요! 스윔이라서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끔 저희가 해온 작업을 꼼꼼히 보시고 성향에 맞는 일들을 맡겨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일을 할 땐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 하는 생동감 있는 과정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밤을 새워도 즐거워요. 연극에서 배우・극장・관객이 필수 요소이듯, 영상디자인 프로젝트에도 작업하는 사람, 작업을 맡긴 사람, 감상하는 사람.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필수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모두 만족하고 행복한 것이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아주 큰 욕심일 수도 있지만요.
스튜디오 스윔의 SNS와 웹사이트, 스튜디오 스윔의 아티스트들 또한 개인 SNS가 있어요. 여러 매체를 관리하기가 쉽지 않은데, 노트폴리오도 사용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작년부터 작업을 알리는 일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어요. 이전엔 열심히 하면 언젠간 다들 알아주겠지하는 마음으로 꿋꿋하게 작업만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특히나 영상매체는 노출 시기를 지나면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 마련이에요.
우리가 잘, 열심히 만든 것들을 찾아봐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여러 플랫폼에 작업을 업로드하기 위해 리서치를 열심히 했고, 몇 개의 활발한 플랫폼을 정해 업로드를 시작했어요. 그 중 노트폴리오는 한국에서 가장 활발한 포트폴리오 사이트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새로운 작업이 있으면 꾸준히 업로드하는 플랫폼이 되었어요.
플랫폼마다 유저의 연령대나 관점에 따라 반응이 다른데요, 개인적으로 노트폴리오는 학생분들, 꾸준히 활동하는 개인 작업자, 일을 맡기려는 클라이언트 유저가 적절히 혼합되어 있다고 느꼈고, 그런 점이 노트폴리오를 꾸준히 이용하게 되는 이유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트폴리오 픽에 오른 작업 덕분에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늘기도 하고, 작업을 맡기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연락을 주시기도 하는 등 꽤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어요. 확실히 전보다 많은 분이 스윔이라는 스튜디오를, 하니오라는 작업자를 알게 되신 것 같습니다.
스윔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시너지를 내며 좋은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스윔이 나아갔으면 하는 미래에요. 지나 보니 일을 잘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어렵고 소중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업 일정 때문에 미뤄둔 개인 작업을 하는 것이요. 일로서의 작업도 너무 즐겁지만, 만들고 싶었던 걸 만드는 것만큼 즐거운 놀이는 없는 것 같아요. 지치지 않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그로 인해 계획에 없던 즐거운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 제가 꿈꾸는 미래예요.
앞으로 더 다채로워질 스튜디오 스윔과 하늬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들이 기대돼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20대의 저는 하고 싶은 일은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경험주의자였어요. 남들이 ‘그거 힘들대 하지 마’ 하는 말은 잘 안 믿었고, ‘나는 좋아할지도 모르잖아?’ 하다 보니 제가 해보고 싶던 직업은 대체로 경험해봤어요. 그중 하나가 영상이었어요. ‘해보고 싶은데, 너무 늦었나?’ 하는 마음으로 도전해본 건데,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정도로 재밌게,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일할 때도 컴퓨터 앞에, 쉴 때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만큼 이 작업을 좋아해요. 이 마음이 작업에 담기기를 바랍니다. 개인 작업이든, 스윔의 작업이든 늘 관심 있게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디자이너 하니오
노트폴리오 | notefolio.net/haneeo
인스타그램 | instagram.com/haneeworks
Studio Swim | swimseoul.kr
노트폴리오 [창작자와의 인터뷰]
창작자와의 인터뷰는 노트폴리오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작자를 선정하여 창작자의 작업과 작업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