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와의 인터뷰] 이석구(구루부)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네.’
인생은 ‘어쩌다 보니’의 연속인 것 같다. 어쩌다 보니 가정을 꾸리게 되고, 자녀가 생기고,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고, 생각지도 못한 직종의 직업을 갖게 되기도 하고…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당신의 인생을 단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그림들을 선택해 그 책을 채울 것인가? 그리고 그 책엔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오늘 들려줄 인터뷰는, 어쩌다 보니 그림책 작가가 된 이석구의 이야기. 당신 스스로에게는 어떤 수식어를 붙일지 고민해보며, 그의 그림책을 함께 넘겨보자.
안녕하세요 이석구 작가님! 오랜만입니다.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를 그리고 그림책을 쓰는 이석구입니다. 그림 그리고 싶어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구루부라는 필명으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시작해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가 본명 “이석구”로 첫 그림책 <두근두근>을 출간했습니다. 최근에는 그림책 창작에 좀 더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림책은 동화책이라는 단어보다는 조금 생소한 것 같아요. 일러스트레이터나 동화책작가가 아닌, 그림책작가가 된 계기가 있나요?
동화책 작가보다는 그림책 작가라고 불러 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어쨌든,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기보다, ‘하다 보니, 어쩌다 보니 그림책 작가가 되어 있더라’에 가깝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왜냐는 질문에는 어쩌다 보니라는 답을 자주 하곤 합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했던 것들이 지금을 만들어 간달까요. 그림책 작가가 된 것도 마찬가지예요. 전환점이 된 계기는 확실하지 않은데, 어쩌다 보니 그림책을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 것도 디자인 잡지에 실린 그림책 일러스트 작가님 인터뷰였고, 퇴사 이후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다녔던 학원의 졸업 전시 결과물이 그림책이었고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를 하는데, 편집자분께서 함께 그림책 스터디를 하자고 제안을 주시기도 하셨고요. 그 당시 그림책 관련된 일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꾸준히 해나간 걸 보면 그림책 작업이 잘 맞았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원래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었는데, 책을 창작하기 시작한 이후로 오히려 책과 멀어진 것 같아요.
하하. 원래 좋아하던 것은 본업과 가까워질 수록 취미라는 원에서 멀어지잖아요. 작가님의 일러스트를 보고있노라면 그림을 정말 잘 그리시는 것 같은데요, 그림책 작업은 일러스트레이터 작업과 또 어떻게 다른가요?
잘 그린다고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스스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일단 연속된 이미지들을 어우러지게 연출해야 한다는 점과 텍스트와 내용과 조화롭게 배치되어야한다는 점들이 있습니다. 화집의 경우는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들이 나열된 것이라면, 그림책의 경우에는 전개나 흐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좀 다릅니다. 페이지마다 잘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이야기가 잘 표현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역할과 배치, 구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고요.
어쩌다 보니, 라고 하셨지만 사실 어쩌다 보니 책을 출간하는 경우는 드물 것 같아요. 그것도 이야기와 그림이라는 두 가지 콘텐츠가 들어간 경우는 더더욱이요. 첫번째 책 <두근두근>은 어떻게 출간하게 되었나요?
그림책을 만들어보겠다며 초반에 만들었던 이야기들은 문제점들을 잘 해결하지 못해 중간에 손을 놓거나 끝을 맺더라도 완성도가 높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공모전도 내보고 투고도 해봤는데, 결말을 맺지 못했어요. 꾸준히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던 중 그림책 창작 스터디를 함께 하던 편집기획자님께서 출판사와 연결을 해주셨습니다.
작가님의 책을 읽고 독자에게 어떤 영향이 끼쳤으면 좋겠다, 어떤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하시나요?
읽고 느끼는 건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책을 읽고 뭔가 바라기보다는 그냥 읽고 재밌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만든 내용들은 권유나 당위가 아닌 제가 바라는 이상 같은 느낌입니다. 이랬으면 좋겠다하는 것들이요. 예를 들면 사람들이 서로서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라는 이상 같은 거죠. 세속적인 바람으로는 사람들이 제 책을 많이 읽어줬으면 합니다. 그러면 작업을 계속 해나가는데 많은 힘이 될 것 같습니다.
6년 전 인터뷰에서 작가라고 불리는 것이 어색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생각은 여전하신가요?
인터뷰 요청이 자주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저런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인터뷰를 받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양한 생각들을 깊게 하는 편이 아니라서 이렇게 질문을 받고 나서야 고민하고 정리해 보곤 합니다.
저는 작업을 해나갈 뿐이지만 가끔 작가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일러스트와 그림책 등 본인의 창작물을 만들고 싶어 하는 분들을 만났을 호칭을 어찌 불러야 할지 고민할 때도 그렇고요. 출판 쪽에서는 책이 출간되는 시점부터 작가라고 불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출간된 책이 없는 경우에는 작가 지망생이라고 하는데, 넓게 생각할 때는 개인이 창작을 하고 싶어서 무엇인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작가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본업이 따로 있고 말고, 수익을 낼 수 있고 말고, 전시를 올렸고 말고를 떠나서요. 꾸준히 창작하고 스스로 작가라고 자부한다면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세간의 인정과는 별개로요.
언젠가 ‘내 것’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에 대한 고민도 여전하신지 궁금해요.
대중을 상대하는 작업을 하면 대부분 느끼는 고민일 것 같습니다. 내 콘텐츠를 접하는 대상이 있는데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명확한 생각과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은데, 시장성을 생각해 이야기는 명확하게 만들어야 할 때는 이게 맞나 싶죠. 저 또한 책 작업의 경우 초안에는 확실한 주제 의식과 결말이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진짜 ‘내것’이 뭘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내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내가 했으면 내 것 아닌가? 하고 쉽게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내 것에 대한 욕심은 인간 본연의 욕구 아닐까요? 다양한 시도가 결국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오히려 저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분들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그렇군요. 저는 노트폴리오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분들을 위해 이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이 인터뷰는 저와 이석구 작가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석구님이 작가라고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저는 여전히 작가로 불리는 것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넓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냥 좀 편하게 생각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넘어가볼까요? 노트폴리오에서는 2017년부터 강의를 진행하고 계시는데요. 무려 26기 이상 진행한 이력이 있고 270명이 넘는 학생이 수강했다고요.
해당 내용의 수업이 수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오랜 기간 진행했네요. 노트폴리오 측에서 수업과 인터뷰로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처음 제안을 주셨을 때 수업은 자신이 없어서 조금 고민해보겠다고 하고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말씀드렸는데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많은 분이 신청하고 수업을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알려드린 것이 도움이 될지 걱정을 많이 하곤 해요.
스스로 방법과 방향을 찾아 나가는 것이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래도 수업 자체가 혼자 진행하는 것이 아닌 함께 교류하는 측면이 강조하다 보니, 저를 포함 서로가 서로에게 다양한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의 시작점에 설 수 있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많은 수강생분들을 봤지만, 최근까지도 SNS로 교류를 이어가며 활동을 꾸준히 보고 있는 분들이 주로 기억나네요.
실제로 이전 작가님 수업에는 짧고 강렬한 단 한 문장의 후기도 있습니다.
“출발점을 찾았다.”
올해 진행하게 된 <발상과 표현> 워크숍은 내용이 많이 리뉴얼되었다고 들었어요. 아트저널링을 통해 저마다의 발상을 표현하는 법에 대해 가르치신다고요. 아트저널링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직장을 다닐 때 뭔가 아쉬움을 느끼면서부터 가볍게 노트를 들고 다니곤 했는데, 본격적으로 열심히 쓰기 시작한 건 프리랜서가 되고 2~3년 차쯤 되었을 무렵입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좋아하는 작가분들이 대부분이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열심히 채워나가는 것을 보고 저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스케치북에 많은 것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석구 작가의 드로잉노트와 작업재료
글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남겼던 것들이 훗날 결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됐다고 볼 수 있죠. 대부분의 일러스트는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들을 러프하게 해놓은 스케치에서 발전시켜 그렸고, 창작했던 그림책들의 아이디어들 또한 스케치북에 남겨놨던 소재들을 다듬어서 만들어냈습니다. 연습 삼아 그리기 시작한 딸과의 일상은 모아서 그림 에세이 책으로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로 어떤 것들이 작가님의 노트에 영감으로 기록되나요?
마주치는 모든 시각적 자극들이 아닐까요? 길을 걷다 본 풍경을 보고 저런 구도는 재밌겠는데, 주변 사물들을 보며 저건 그림 소재로 쓰면 좋겠다, 움직이는 사람을 보며 저 동작은 그리면 멋지겠다 등등 말이죠. 그래도 생활 모습이나 활동을 보면, 색다른 체험이나 경험 보다도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서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또한 제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들도 많이 남겨놓습니다. 지금까지 만든 책들을 보면 나 또는 주변의 일상에서 시작되어 만들었는데, 시작점은 늘 남겨놓은 짧은 단상에서부터였죠. 그렇다고 평소 엄청 재밌는 상상을 하는 건 아니에요. 어릴 때는 재밌는 공상도 많이 했는데, 어른이 되니 좀 덜 재밌는 생각만 떠오르네요.
재미있는 상상을 할 겨를이 없는 게 아닐까요? 가장 재미있는 친구(딸)와 함께 살고 계시니까요.
그림책을 집필하는 사람으로서, 연령별 아이의 대화나 생각 수준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아기바람>같은 경우는 아이가 선풍기를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디어를 떠올렸으니까요. 실제로 아이가 작품에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네요.
언젠가 5권의 책을 내면 작가라고 불리기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2021년, “함께 오늘을 그린다는 것”을 출간하며 총 5권의 책을 써내셨어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축하 감사합니다. 5권쯤 되면 좀 더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깨닫지 않을까 싶었는데 여전히 방황하고 있네요. 책의 작업 방향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직접 부딪쳐 보고 깨닫는 편인데, 작업은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축하 감사합니다. 5권쯤 되면 좀 더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깨닫지 않을까 싶었는데 여전히 방황하고 있네요. 책의 작업 방향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직접 부딪쳐 보고 깨닫는 편인데, 작업은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명확한 의미와 목표를 가지고 하면 좋을 텐데, 고민해봐도 모르겠고 정리도 되지 않아 생각을 잘 안 하게 됐달까요.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작업이나 하자라는 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냥, 꾸준히 계속 해나갈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조금 우스갯소리 같은 사심으로 얘기하면 대작가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근데, 대작가의 기준은 또 뭘까 싶네요. (웃음)
작가님께서 소망하는 ‘대작가’가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지금으로서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그저 현재에 충실하려고요. 일단 계약한 책들이 있습니다만, 올해 출간이 목표였는데 작업 속도가 느려 내년으로 미뤄지겠네요. 창작의 길을 꿈꾸고 시작하는 분들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냥 말없이 동료 작가로서 응원하고 싶습니다. 시간 내어 인터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이석구
노트폴리오 | https://notefolio.net/gooroovoo
인스타그램 |instagram.com/gooroovoo_illust/
공식홈페이지 | gooroovoo.com/
노트폴리오 [창작자와의 인터뷰]
창작자와의 인터뷰는 노트폴리오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작자를 선정하여 창작자의 작업과 작업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