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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트폴리오 Jan 28. 2016

[인터뷰] 경쟁과 생존의 전략, 일러스트레이터 주용


빈틈 없이 빼곡한 등장인물과 눈에 띄는 색감, 저 멀리 느껴지는 에너지까지. 일러스트레이터 주용의 그림에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긴장감과 특유의 개성이 도사리고 있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 달려가고 뛰어놀며 정신없는 빼곡한 그림이 어느 외국작가의 만화같기도, 어릴 적의 숨은그림찾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몇 편의 작품을 늘어놓고 보니 일련의 단어가 떠오른다. 그래, 이건 경쟁과 생존이다!


누구나 그렇듯 피해갈 수 없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주용입니다(웃음) 


우연찮게 네이버에 ‘주용’을 검색했더니 그 의미가 ‘술을 사 먹는데 드는 비용(酒用)’이라더라. 왠지 그동안 봐온 주용과 어울리는데?


저도 제 이름에 그런 뜻이 있는 줄 몰랐는데 이야기를 듣고 검색해보니 깜짝 놀랐어요. 활동할 때 본명을 사용하다 보니 뭔가 소개하는 문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네요, 하하.




작품에 주로 강렬한 색감과 빽빽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언뜻 ‘숨은 그림 찾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밀도 높은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월리를 찾아라> 같다는 소리도 많이 듣죠.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게 된 건 <스페이스 하드록 머신>때부터인 것 같아요. 사실, 낙서를 할 때 딱히 의도가 있지는 않잖아요. 같은 맥락이에요. 계기랄게 없어요. 그냥 이렇게 작업하는 게 좋아요. 또, 평소 습관이 디테일하게 그리는 편이라 작업을 하다보면 계속 새로운 것들이 생각 나거든요. 그때그때 떠오르는 요소들을 다 넣다보니 자연스레 ‘빽빽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스페이스 하드록 머신>


사용하는 색감도 참 강렬하다.


그게 좋아요. 제가 그림그릴 때 많이 쓰는 장치가 아주 큰 로봇 같은 거대한 그림 하나 그리고 그 옆에 조그만 요소를 그리는 방식이거든요. 그것들이 충돌하는 지점에 묘한 재미가 있어요. 충돌한다는 건 그만큼 ‘디테일한 면’이 많다는 얘기인데, 거기에 강한 색감의 채색을 하고 나면 충돌지점이 더 많아져서 재미있어요. 


세밀한 작업을 하다 멘탈이 붕괴되진 않는지, 작업할 때 눈은 안 아픈지 항상 궁금하더라.


하하. 사실 밀도 높은 작업을 한다고해서 멘탈이 붕괴되거나 눈이 아프지는 않아요. 그보다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어서 시작을 못하겠다는 점이 어려워요. 일단 시작하고 나면 며칠 밤을 새야할지 계산이 되니까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시동거는 게 힘든거죠. 


그럼, 한 작품을 작업할 때 얼마나 걸리나.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완전히 몰입한 상태로 평균 열흘에서 이주일 정도 걸려요. 이렇게 말해도 막상 시작하면 작품에 완전 몰두해서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은데, 선뜻 시작하기는 싫다고 해야할까? 하하.


<치즈행성에서 살아남기> 

<덥스텝 침공>

<일촉즉발 헬조선>


<최초의 반동분자>, <치즈행성에서 살아남기>, <덥스텝 침공>을 비롯해서 최신작 <일촉즉발 헬조선>까지, ‘경쟁’이나 ‘생존’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것 같다.


의도적으로 연출한 건 아닌데 질문을 듣고서야 그런 작업 성향을 가졌다는 걸 알았어요. 때문에 ‘경쟁’이나 ‘생존’을 키워드로 작업했다기 보다 작업 특성 때문에 이런 감상이 나온 것 같아요. 저는 ‘쎈 그림’을 좋아해요. 그리고 쎈 그림을 연출할 수 있는 검증된 구도가 있죠. 예를들면, <최초의 반동분자>처럼 그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한 점으로 집중된다든가, <헬조선>의 ‘헬조선’이란 단어의 담론처럼 사람들이 큰 글자 아래 눌려 폭발하고 있다든지요.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작업을 하다보면 계속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걸 채워 넣다보니 빽빽해서 경쟁하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요새들어 부쩍 ‘헬조선’이나 ‘수저론’ 이야기가 많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불편한 담론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의도로 작업하게 됐나.


워낙 헬조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보니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헬조선’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어감이 우리의 생활과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보다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안 좋은 기사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작업도 짜증나고 도저히 긍정적으로 그릴 수가 없었어요. 어줍짢게 위로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현상만 나타나고자 했죠. 처음에는 모두 힘드니까 위로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저랑 별로 안 어울리는 작업같아요. 하하. 



                       혁명의 역사라던가 반골의 탄생에 대해서 다소 비약을 섞어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나는 결국 하나의 정자를 상상하게 된다.


                                                  "번식하라! 모두가 저 난자를 향해 경주 시~작!!"


                                   이라는 일생 일대의 지령을 받은 수억마리의 정자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옆의 놈을 찌르거나 밟아대며 자궁 속을 헤엄칠 때, 
                                    반골 기질 풍부한 요 녀석은 몇cm쯤 전진하다가 문득 생각했을 것이다.


                                                              “나 이거 안할래. 거부하겠어.”


                                                                            ...(중략)...


                 물론 나와 당신 또한 오직 한 놈 만이 살아남는 죽음의 레이싱에서의 석연찮은 승리자일 것이며, 
                               그것이 아마도 우리 세상이 요 모양 요 꼬라지인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저 최초의 반동분자이자 고결한 순교자, 
                          혹은 미시세계의 정자 영웅에게 묵념을 하며 짧은 추도사라도 지어주도록 하자.


                                                                          "번식하라... "


                                                           "오직 네가 하고 싶을 때만!!!"


                                                                           전문보기



일러스트도 일러스트지만 <최초의 반동분자(The first Rebel)>처럼 그림과 함께 첨부된 주석이 더 흥미를 끌 때가 있다. 그림과 주석을 함께 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


뭐, 거대한 서사가 있는 스토리는 아니에요. <최초의 반동분자>같은 경우도 ‘태초에 역행하는 정자가 있었다’는 컨셉으로 다소 ‘선동적인 느낌’이 들게 풀었을 뿐이죠. 누군가는 그림 한 장으로 작가가 말하고싶은 걸 다 담아내야한다고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실제로 전시 때는 캡션을 따로 뽑아 벽에 붙여두었어요. 어떤 목적이 있다기 보다 그저 글로써 작품의 느낌을 더하고 싶은 것뿐이죠. 



그나저나 평소의 작업을 보면 ‘악어’나 ‘상자’를 되게 좋아하나보다.


그리기 쉽거든요. (직접 상자를 그리며) 눈을 이렇게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그리면 완성! 



카 랩핑 일러스트레이션



지난 해, 윤디자인 연구소와 진행했던 카 랩핑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이 궁금하다. 어떻게 의뢰되었나. 세종대왕이 차량 루프에 위치한 구도가 인상적이던데. 


인터뷰를 제안받았을 때 가장 언급하고 싶었던 작업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그만큼 아쉬움이 남는 작업이었어요. 작업은 윤디자인 연구소 의뢰로 진행됐어요. 원래 래터링으로만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일러스트레이터가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맡게 되었죠. 

어떤 점이 아쉬웠나.


처음 의뢰받았을 당시에는 전시 당일에 차량 뒤쪽을 살짝 들어 관람객이 (세종대왕이 위치한)루프를 볼 수 있도록 전시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에 맞게 작업을 했는데, 아쉽게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없었죠.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어쩔 수 없었지만 작품의 포인트가 되는 부분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네요. 


의도했던 바와 다르게 흘러갔나보다.


그렇죠. 그런데 워낙 큰 프로젝트여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 전시당일 세종문화회관 앞, 주용 작품 모든 출처: http://notefolio.net/juyong 


굉장히 시간을 많이 투자한 작업이었다. 직접 방문했었는데 전(全)연령층이 좋아하더라.


맞아요. 배치상으로도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들이와주셔서 놀랐어요. 그래서 아쉬운 점도 있었고 좋은 점도 있던 작업이에요. 


집현전을 거대한 공장으로 재해석한 게 흥미롭다. 원래 컨셉은 어땠나.


처음에 의뢰 측에서 <스페이스 하드록 머신> 느낌의 디테일을 원했어요. 그리고 한글의 조형적인 특성을 매커니컬하게 해석해달라는 요구가 따랐죠. 그런데 혹시 한글 창제에 대한 두가지 설 들어보셨나요? 하나는 ‘세종이라는 천재 왕이 혼자서 한글을 만들었다’고, 다른 하나는 ‘세종대왕과 집현전 내 소수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설이에요. 대부분 세종대왕 혼자서 만들었다는 설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다같이 만들었다’는 쪽이 더 마음에 다가왔어요. 한명의 천재가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좋은 시스템을 갖춘 기관에서 여러 사람이 협력해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 기분 좋지 않나요? 그러다보니 ‘공장’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분화된 작업에는 그것을 아우르는 지도자가 필요하죠. 


현대로 치자면 세종대왕이 디렉터의 개념인가보다.


맞아요, 감독(웃음). 집현전의 학자들이 공장의 일원이고 세종은 그들을 감독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어요.




브런치에 쓴 글도 재미있더라. 특히 <국밥집 홍상수>를 읽고 한참 웃었는데 글에서 나타나는 재치와 그림에서 느껴지는 재치가 일치하더라. 지켜보건대 글의 소재는 일상에서 얻는 것 같고, ‘찰지는 표현’은 어쩜 그리 잘하나.


아, 그건 실제로 겪은 일이에요. 과제를 했었나, 무튼 밤을 새고 순대국밥이 먹고 싶어서 국밥집에 갔다가 남녀의 이야기를 우연찮게 들었어요. 처음엔 둘이 남매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니더라고요. 그 둘의 대화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그 대화 내용에 어울리는 일러스트와 글을 썼죠. ‘찰지는 표현’은 에디터님도 글을 써보셨으니 알거예요. ‘요거 되게 재미있다’싶은 썰을 풀 때는 유독 문장이 잘 붙지 않아요? 


맞다. 그런 글을 쓸 때면 한편으론 ‘나만 재미있는 건 아닐까’싶어 겁나기도 한다. 그런데 글쓰기 외에도 밴드 활동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 이 이야기 굉장히 중요해요. 맞아요. 밴드 '멋진방구석'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데, 저희 밴드가 작년 8월 30일 공연 이후로 합주를 한 번도 못했어요. 드럼치는 친구가 바빠졌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 전에도 항상 누군가가 바빴어요. 


하하. 사실 한살 두살 먹을수록 서로 시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몇 명으로 구성된 그룹인가.


다섯명이요. 정말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친한 형이 ‘멋진 방구석은 멤버를 뽑을 때 무슨 기준으로 뽑냐’는데 ‘형,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야. 누가 나랑 시간이 맞는가가 제일 중요해’라고 답해준 적이 있어요. 마침 인터뷰를 하는데 잘됐네요. 지면을 빌려 구인 홍보를 해도 될까요? 


좋다.


네! 밴드 <멋진방구석>에서 드러머를 구하고 있습니다. 많이 많이 지원해주세요!


https://soundcloud.com/jususs/elec3?in=jususs/sets/v516pvamok6j


본업이 일러스트레이터이니 그림은 물론이고 글쓰기와 밴드 활동까지, 주용은 그야말로 예술에 조예가 깊은 아티스트다.

예술에 조예가 깊다기보다 잡학다식하게 여러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공감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음악, 미술, 글쓰기가 모두 하나의 툴로 작업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예를 들면, 저는 어플을 사용해 음악을 만드는데 그 툴로 작업을 하다보면 영상 편집 과정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나아가 ‘편집’의 관점에서 보면 ‘글쓰기’도 똑같고요.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분야가 어찌됐든 저는 편집의 감각으로 작업해요. 문장을 배치하고 음표를 빼고 이거랑 저거랑 부딪히면 이런 느낌이 나는구나,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림 작업 역시 어떤 요소를 어느 장소에 적절히 배치하는 것, 즉 ‘편집’의 개념으로 생각해요. 


이야기를 듣고보니 굉장히 다재다능하다.


모든 분야를 전문적으로 깊게파고들 순 없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잖아요, 그런것 뿐이에요. 그리고 잘난척하거나 아는척하기에는 잡다하게 많이 아는 게 좋지 않나요? 전 그렇던데!


- 멋진방구석의 드러머를 찾는 일러스트레이터 주용


그나저나 사람들이 변태라던데 진짜인가. 


네? 그게 무슨 소리죠? 그저 재미있으라고 맞춰주는 것뿐이에요. 하하! 저 되게 건실해요. 노트폴리오같이 젊은 기업의 대표처럼 ‘건실한 사업가’의 느낌인데…. 아무튼 저는 전혀 변태가 아니고요, 변태라는 단어는 <파브르 곤충기>에서나 접해봤습니다.


하하, 알겠다. 그럼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

 

사실 이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들을 잘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계획하고 있는 목표가 궁금하다.

 

이건 정해놓은 게 있어요. 단기목표이자 장기목표인데 지금 연작 열 두장을 계획 중이거든요. 연작에 들어가기 전에는 오브젝트 위주의 소품 작업을 할거고, 결과적으로 ‘연작완성’이 목표예요. 그 다음에는 단편 만화를 해볼 생각이에요. 앨범도 낼 계획이고…. 어찌됐든 현재는 <멋진방구석>의 드러머를 찾는 일, 이게 가장 중요해요. 


오늘 인터뷰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주용이 추천하는 도서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추천합니다. 


주용
http://notefolio.net/juyong
https://www.facebook.com/donjuyong


글쓴이 : 노트폴리오 매거진 필진 김해인

원문보기 : 노트폴리오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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