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이 동양을 왜 이겼을까요?의 답을 적어봅니다.
흔히 사람들은 동,서양의 격차를 말할때,
르네상스나 산업혁명을 말한다.
그러나 제갈PM은 ,
더 근본적인 원인이 지리적 요인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격차는 수천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구체적으로 쓰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결론은 메모앱의 중요성과 이어진다.
글은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있다.
1. 총, 균, 쇠
2. 임용한 박사님의 전쟁사
3. 제갈PM의 핵심 가설
4. 왜 서양에서 과학이 먼저 발전했가
5. 결론적으로 메모앱의 부상은 필연이다.
1. 서양은 경쟁했고, 중국은 덜 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님은 중국은 유럽에 비해 통합된 상태가 길었다고 했다.
중국은 히말라야, 고비사막, 밀림, 대양으로 거의 사방이 막혀있다.
한 번 통일하면 내부에서 먼저 썩을 뿐 강적은 없다.
그러나 유럽은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더 내분이 심했다.
영국은 언제나 유럽내 힘의 균형추였다.
서양은 항상 경쟁했다.
2.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상을 부산에 새울 수 있을까?
정복의 시대는 제국으로 성장해야 된다.
그러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따라서 단점을 인정하고,
타인의 장점으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대영제국과 칭기즈칸의 몽골은 이것을 뼛속까지 알고 있었다.
대영제국은
독재자였던 크롬웰, 침략자의 동상을 자국에 새운다.
링컨의 동상도 있다.
칭기즈칸의 몽골 군대는 자국 군대의 단점을 철저하게 파악한다.
그리고 부족한 점을 어떻게든 타국의 사람과 기술로 채운다.
제국의 포용정신은 군대의 다양성으로 연결된다.
이에 맞춰 국가도 같이 커진다.
분업이 생기고,
경제시스템이 확실하게 돌아가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상업이 발달해야 한다.
3. 구체적으로 쓰기 시작하면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제갈 PM은 핵심 가설을 제안한다.
첫째, 역사 초기의 상업은 유럽이 더 발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흑해와 지중해가 있다.
육로 수송은 해양 수송보다 비용이 10,20배 정도 든다.
먼 거리를 갈수록 말과 사람의 식비가 어마어마하다.
중국은 이런 바다가 없다.
둘째, 상업이 발달해야 사람은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인류 최초의 기록물은 생산물 관리 기록이다.
특히 상업을 하면 할수록 구체적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다.
피 같은 돈이 걸렸는데 피같이 관리해야 한다.
셋째, 구체적으로 기록하면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글 쓰는 습관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결정적으로, 서양의 고전은 구체적이다.
숫자와 인물 설명, 전쟁기록 모두가 그렇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술적 포메이션 인지 다 나온다.
하다못해 그림까지 다 그려둔다.
중국, 한국 등의 동양 고전은 추상적이다.
특히, 정복시대 최대의 중대사 '전쟁'에 대한 묘사가 애매모호하다.
실용적 인사이트를 얻기 힘들다.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도 어떤 단계를 거쳐 작전이 시행되었는지 모른다.
4. 경쟁과 분석적 사고력은,
수학과 과학의 발달로 이어진다.
구체적 사고의 결과로 분석적 사고력이 발달했다.
또한 경쟁에서 이기기위해 수학과 과학이 발전했다.
이는 은행, 주식 같은 사회 시스템 그리고 항해술과 무기를 발전시켰다.
결국 산업혁명부터 압도적인 격차가 났다.
서양이 이긴 이유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서로 경쟁하며 제국이 되어갔다.
제국이 될려면 상업이 중요하다.
흑해와 지중해가 있었기에 상업이 발달했다.
상업을 하면 구체적으로 쓰고, 생각하게 된다.
분석적 사고력은 수학과 과학 발달의 밑바탕이 되었다.
5. 결론
소모적 경쟁 끝에 남는 건 결국 생각과 지식이다.
정복시대에
서양은 끊임없이 전쟁했고, 소모적 경쟁을 했다.
그래도 사고방식, 지식체계는 축적되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강대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승자가 되는 과정도 비슷하다 여긴다.
인생의 각종 시험과 사업에 실패해도 남는 건 노하우다.
이를 바탕으로 재도전한다.
특히 정보화/콘텐츠 시대에 이는 더 중요하다.
더 많은 지식이나 콘텐츠를 다루고, 생산해야 한다.
메모앱은 그냥 유용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메모앱은 역사의 흐름을 가속한다.
핵심원리: 서양은 상업, 바다, 기록이 발달하여
지식체계가 동양보다 더 우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