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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현 Jan 09. 2023

무한리필 삼겹살과 대학생

무한리필 삼겹살을 먹는다.

1인분 삼백그램 삼천원이다.

고기질을 포기하고 양으로 손님을 잡는다.

옆테이블엔 대학생 연인이 앉았다.

고데기를 머리에 붙인 여자와

옛된 남자는 고기를 굽고 자기야를 부른다.

기숙사에서 방금 나온듯하다.

방학기간동안 계절학기 수강중인가보다.

오스트리아산 냉상겹이 삼천원이다.

오스트리아와 삼천원에 생각이 머문다.

고향서 사육당한 돼지는 고향에서

죽어 얼려 그 먼길을 실려왔다.

새삼 자본주의 바탕인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이다.

애덤스미스의 부는 저장이 아닌 소비다.

소비할수록 시장은 커지고 커지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교환할수록 국가간 부는 더욱 증진된다는 멜서스와 닿아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돼지 농부는 자국에선 버리는 삼겹살을 돈주고 팔았고 배에 실어나르는 선주는

화물료를 지급 받았으며 고깃집 주인은 삼천원 고기에 사천원 소주 한병을 끼워팔았다.

고물가에 언감생심 무한리필 삼겹살을 양껏먹는

우리는 질보단 양을 선택함으로 최종 소비 싸이클을 완성시켰다.

냉동에 냉동을 거듭해 돌덩이에 가깝다.

질긴 육질이 불판에 지져가며 펴진다.

돌덩이로 변한 돼지의 그 것을 우린 씹고 삼킨다.

대학생 커플은 고기만 먹는다.

난 소주와 먹는다.

고기를 상추에 싸서 마늘을 쌈장에

발라 넣는다. 삼겹살은 취향에 따라 야채를 추가해서 턱이 빠져라 먹는종합 패키지 같은 음식이다. 삼겹살은 모든 맛이 있지만 특별한 맛이 없다.

쌈에 포함되기전 재료의 맛은 개별적이지만

쌓여 목구멍에 넘기는 맛은 개별을 상실한 맛의 공통됨이다.

혀에 닿는 쌈장의 달고 짠 감각과 씹어지는 돼지고기의 바짝 구운 부분의 바삭함이 우릴 이끈다.

맛이란 순간이고 목을 넘기면 아득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뼈속에 인으로 박혀 식욕을 땡기고 밀어낸다.

기름에 바짝 절어 물릴 떄 들어가는 소주가 입안을 조인다. 목구멍을 집어뜯고 위와 창자에서 따뜻해진 소주의 수고로 젓가락이 다시 고기로 간다.

모두가 같은 고기를 먹지만 맛은 개별적이다.

혼자먹는 나의 맛은 단지 맛일 뿐이다.

같이 먹는 대학생 커플의 맛은 시간도 사랑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보인다.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에 배울수록 갑갑하고 배운다해도 불안한 그들이 안쓰럽다.

얕은 지식으로 학생의 허기를 채워줄수 없는

나의 비루함이 씹는 고깃속에 섞여있다.

먹고 마실수록 더욱 허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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