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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현 Feb 28. 2023

무용을 본다.

생에 첫 무용을 본다.

한국무용과 사물이 함께한 공연이다.

난 춤과 사물을 모른다. 모르고 감흥에 기대어 적는다.


첫 태평무는 왕, 왕비가 중심에 놓인다.

사물이 무용에 복종한다.

다산, 풍년을 기원하는

왕의 동작은 몸통에서 태어나 옷깃에 머물다

날개짓으로 퍼져나간다.

팔에 달린 긴 옷깃은 동작의 관성을 만든다.

관성은 시간이다. 멈춤과 연속에 관한 자연 언어다.

몸통은 현재 리듬을

옷깃은 지나온 리듬에 머물러있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무용이 4비트 타악에 실려

극장을 채우고 소멸한다.

무용이 주인공인 무대에서

또다른 주인공인 사물을 본다.

본디 우리 음악은 수평적이다. 주종이 없다.

사물은 춤에, 춤은 사물에 기대어 흐른다.


동래학춤의 주인은 사물이다.

대금 멜로디로 시작된다.

대금은 나무를 깎고 구멍을 뚫어 탄생한다.

인간은 숨을 불어 멜로디를 만들지만

나무 형상에 부딧힌 울림에 복종해야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섹소폰과 다르다.

연주자는 악기와 대적 할수없고

악기는 연주자 없인 무용하다.

음은 그 절충점 어디선가 태어난다.

대금은 하늘로 향한다. 수천년전 과거를 불러온다.

그것은 우륵이 바라본 하늘

남한산성에 갇힌 선조가 바라본 하늘이다.

소멸한 시간이들이 곡조에 태어나 공간에 풀린다.

숨과 멜로디가 뒤섞인 공간에

동래읍성 연못에 학이 모여든다.


오고무는

개별적이고 전체적이다.

무용수는 전화부스 닮은 공간 5개에 달린 북을 때린다. 공간은 밀폐되 타인을 볼수없다.

개인 무용수는 사물이 던지는

리듬에 기대어 동작을

동작에 기대어 리듬을 더듬는다.

무용수 18명이니 총 90개 북을 동시에 때린다.

4비트로 시작해 8비트로 바뀌는 사물 타이밍에

90개 북이 일제히 올라탄다.

난 잠깐 무용수 마음을 헤아린다.

반복된 트레이닝도

큰 무대, 밀폐된 공간에서 만드는 리듬의 외로움

섞여야하는 리듬을 당면하는 순간의 기막힘이 찰나처럼 스친다.

리듬이 북에서 흐느적거리다 박에서 일어선다.

박에서 각성된 리듬이 북에서 풀어진다.

북은 인간이 만든 최초 악기다.

선사때 동물 사냥은 생존과 죽음이 섞여있다.

먹고 먹히는 공포에서 북소리로

인간의 공포를 지웠다.

삶속에 들러붙은 고약한  감정을 밀어낸다.

90개 북소리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삶에 달라붙은 아픔과 굴곡을 밀어내

울리고있다.

공연 마지막 눈물이 나왔다.

무용수 동작에 시간이 보인다.

느린 사물 타악에 무용수 춤선이 적나라하다.

빠른 비트 BTS와 대조적이다.

인간은 늘 감춘다. 아담은 깨문 사과를 감췄고

당신은 SNS에 감추고 드러낸다.

느린 춤선은 감출수없고

감출수없는 춤선은 음악에 섞여 휘발된다.

처음 무용을보며 가슴에 담으려 애썼다.

슬프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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