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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현 Feb 13. 2023

천화동인 그리고 봄

봄이 절로 왔고 비가 온다.

남부에서 발원한 저기압이

구름을 밀어내 비가 북상중이다.

비를 보고 기차를 탔다.

고속으로 치고 올라가는 기차의 진동 리듬은

시트에 밀착된 척추를 가볍게 두드린다.

얼어 굳은 대지가 녹아 철길은 푹신하고

달리는 기차의 마찰력은 헐거워진다.

산하가 비에 젖어 무겁지만

꽃마다 서둘러 빗물을 먹는다.

삼투의 힘으로 빨아 당겨

줄기가 단단해지고 잎은 팽팽해진다.

봄의 비린내는 곳곳에서 터지고

빗물에 녹아 증발해 코에 닿는다.

아메리카노를 먹는다.

젖은 봄의 열기로 공간은 부풀어 오르고

그 사이 갇힌 나의 시간은 느슨해진다.

틀어놓은 재즈 피아노 소리가

귓속 벽에 튕겨 공간으로 뻗는다.

강의로 밥을 먹는 나는

한 학기 떠들거리를 찾으러 전공책을 본다.

숫자와 문자가 배열된 틈으로 봄의 기운이 몰려와 종이에 갇힌 문자가 들뜬다.

문장의 조합이 무너지고 뇌의 사고도 더디다.

기분은 가볍고 산만하다.


책 속에 진리는 없다. 과거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삶이고 지금이며 삼키는 밥 속에

내리찍는 곡괭이질에 있다.

부디 수강생들 이 못난 교수가 하는 말 들에 진리를 찾지 않길 바랄 뿐이다.


차창밖은 죽음과 생명의 교환이 한창이다.

땅 위로 풀과 얼어 죽은 곤충의 즙이 녹아내리고

막 유충을 깬 생명은 땅바닥을 훑으며 먹는다.

가벼운 바람에 갓 핀 꽃의 비린내가 옅다. 성숙하지 못한 생명이 짜내는 기운이 청량하다.  

곁엔 유모차 아기의 치아도 새순처럼 귀엽다.


땅은 이토록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감싸 안아 절로 작동하며 곤충과 바람에게도 곁을 준다.

본디 땅의 주인은 땅인데 인간이 그 위를 금 긋고 쌓아 올려 살고 먹고 빼앗는다.

그러한 땅을 부동산이라 이름 지어 서글프다.

낯설고 탐욕스러운 이 단어가 힘겹다.  

땀 흘려 일하고 먹는 밥의 신성함과 눕고 깨며 인생을 정리하는 공간의 엄숙함을 부동산이 비웃는다.

정치는 땅과 뒤섞여 썩어왔다.

민중의 외침을 막아선 명박산성

올림머리 대통령의 평창땅,

아방궁 사저와 영농 대통령으로 묘사되는 땅은

더 이상 땅이 아니다.

대장동은 그 결정판이다.

그곳에 오랜시간 살아온

원주민에게 돌아가야할 돈은

이름마저 특이한 천하동인이 가져갔다.

돈받은 이들은 돈받은 일이 없다하고

자식을 통해 준 50억은 죄가 없다고

법이 말하고있다.

이 과정에 성남도시개발공사 공무원은 자살했다.

그는 죽음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그의 죽음은 땅에 수용되고

땅은 그의 죽음을 포옹한다.

죽음과 돈 그리고 땅은 닿아있다.

인간의 삶은 허망하다.

봄이 선명할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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