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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현 Dec 30. 2021

어쩌면 살릴 수 있었던 죽음

아래글은 오늘자(12월30일) 한겨레신문에 쓴 글입니다.


점심시간, 급히 차량사고 감식 요청이 왔다. 부랴부랴 도착한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충격에 찌그러져 불탄 차체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사고 충돌의 크기가 가늠되었다. 그 야만적인 힘에 할머니도 아이도 생명을 잃었다. 사고는 돌진하는 자동차로부터 시작됐다. 운전자는 80대 고령이었고 자동차 급발진을 주장했다. 사고의 과실 여부를 떠나 어린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마음이 무거웠다. 더불어 책임 소재를 따지기에 앞서 이를 예방 할 순 없었는지 생각해본다.

우리는 이와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매년 증가하는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사고율과 사망률 통계자료가 이를 증명한다. 최근 5년간 경찰청 교통사고 건수를 보면 64살 이하 운전자가 낸 사고는 6% 감소했으나 65살 이상 고령 운전자의 사고는 오히려 44% 증가했다. 사망률과 직결되는 치사율 역시 고령층에서 70% 정도로 현저히 높다. 특히 80대 운전자의 사망, 중상 비율이 가장 높았다.

고령인구가 매년 증가하고 있음을 고려한다고 해도 사고 발생 건수의 증가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 문제이다. 미국 전문 조사기관 랜드코퍼레이션 자료를 보면 차량 사고 시 사망률이 65살 이상 운전자가 일반인에 비해 약 6배 높다. 이는 고령자의 낮은 인지 능력에서 비롯된다. 다수의 연구 결과에서 운전 필수 능력인 인지신경이 60대는 30대보다 80% 정도 낮다. 사물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워 멈춰야 할 때 제대로 멈추지 못한다. 또한 브레이크 대신 액셀 페달을 잘못 밟아도 대형사고나 사망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고령자가 보행자일 때 역시 마찬가지다. 인지능력이 낮아 위험 상황에서 빠른 대처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고령의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 교통사고의 취약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할 경우 대중교통 요금 지원 등의 여러 자구안을 내놓았지만 지난해 기준 반납 참여율은 2%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한 2025년부터 65살 이상을 대상으로 시험을 통해 면허를 규제할 예정이지만 65살이라는 연령 기준을 놓고 논란이 크다.

무엇보다 급증하는 노령화 속도에 발맞춰 실질적인 정책 손질에 대한 담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우선 고령자 중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낙후된 지방의 교통시설을 확보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자진 면허 반납 시 고령자 대상의 공공근로 사업이나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서 우선권을 주는 방법도 고려해야한다. 고령 운전자한테는 운전면허가 생계를 위한 수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시행하고 있는 치매 인지검사의 횟수를 늘리고 정밀도를 더욱 향상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집 근처 공공기관에서도 쉽게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관련 분야의 연구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논의가 어르신들의 큰 희생을 전제로 하기에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마지막으로 경찰청 자료 중 65살 이상의 운전면허 소지 비율이 매년 상승하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이 무거웠다. 이 중 생계를 위해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는 노년의 현실과 하늘나라로 떠난 이제 막 엄마를 알아보며 방긋 웃어주는 아이의 미소가 겹치며 먹먹한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7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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