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공기가 말라 바람이 가볍다.
기류에 체중을 올린 갈매기가 높이 난다.
수평선 아득한 시점에 날아와 고도를 쉽게 찾는다. 넘어간 해의 요동으로 석양이 들끓어 황령산 산맥에 충돌한다. 사멸한 빛에 어둠이 번져간다.
바다 바람이 눈을 찌르고 온몸을 침투한다.
냉기는 체온을 강탈하고 감정마저 얼린다.
교수 연구실에서 이틀간 백 페이지 가까운 연구계획서를 적었다.
고정된 예산의 숫자는 장비와 교과과정에 녹아 구체화된다. 내 눈은 차기년도 사업을 포괄한다. 보고서에 예상 성과는 다시 숫자로 명징된다.
그것은 이루지 못한 미래다.
돈은 결국 불확실한 미래를 얼마나 확실하게 문장에 싣느냐에 따라 투자된다. 이 보고서를 넘기고 승인되면 정장 차림으로 발표한다.
닿을 수 없는 목표를 닿을 수 있다고 표현한 보고서 곳곳이 날 조소한다.
보고서는 일방의 글이 일방에게 전달된다
부러질 듯 딱딱한 문장 나열이 편했다.
감정의 개에게 콱물린 내 자아가 초라했다.
글을 쓰며 말수가 줄었다.
말이 말과 충돌해 아수라장이 되어왔고
글이 글과 충돌해 방향을 잃고 실린 감정마저 헝클어졌다. 춥다. 쓰기를 멈추고 읽기를 시작했다.
읽고 쓰지 않으면 미처버릴것같다.
헌책방서 산 책 세 권을 읽었다. 집히는 데로 골랐다.
쓰기가 멈춰 읽었고 읽기가 멈춰 썼다.
저녁나절 술을 먹었다.
옆방 교수님과 먹는 소주가 빈속에 목구멍부터 잡아 뜯으며 창자로 내려갔다. 난폭한 알콜에 감정이 난무했다. 우린 말없이 마셨고 각자의 잔은 각자가 채웠다. 세병을 마시고 거리에 나왔다.
영하의 날씨에 거리는 얼었고 다리는 뻣뻣했다. 춥다.
흔들리며 걸어가고 흔들리지 않으려 했다.
나의 감정이 누군가에겐 짐 인가 싶다.
바람이 분다. 저녁이 깊다.
머리를 더 짧게 잘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