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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현 Sep 05. 2022

힌남노와 설렁탕

태풍 힌남노는 대양에서 발원해

고온의 바다물에 끓어 오른

수증기를 몸체에 둘러 체급을 키웠다.

세상은 곧 직면할 변고에

사방에서 비명을 지른다.

다가오는 공포가 지나온 공포를 딛고

도처에 뭉처 굴러다닌다.

인간의 방패는 넓은 3M스카치 테이프다.

아파트 베란다, 상점 통유리에 좍좍 길게 찢어

붙인다.

지금 이순간 할수있는 행동을

아니 이것밖에 할수없는 인간의 행동이 슬프다.

죽음의 임박 동물과 인간은

공포로 직감한다.

평소보다 예민해지고 움츠러든다.


난 목감기가 걸렸다.

월요일 6시간 이론강의를 끝내고

연구실에 쓰러졌다.

저녁 밥으로 설렁탕앞에 앉았다.

창자가 뜨거운 국물에 풀린다.

당면한 하루가 길었다.

강의 사이에 글을 썼다.

단어는 창이고 글은 전투다.

난 아득한 그 어디쯤의 전장을 헤매다

국밥에 너덜한 하루를 기댄다.

끓어 넘치는 뚝배기 열기가 살벌하다.

지친 숟가락이 느리고 삼키는 순간도 노동이다.

글을 썼으나 글이 되지못했다.

뚫지 못한 문장의 벽이 아득하다.

일하다 먹으러온 나는 먹으며 일한다.

난 먹는자의 굽어진 뒷모습을 보며 먹고

내 뒷모습은 뒤에와 먹는자의 예약된 시선이다.

내 앞에 먼저와 먹는자의 움츠리는 등이

흔들리며 밥이 넘어간다.

사는건 늘 흔들림에 연속이니.  

그나 나나 그렇게 먹고 살아간다.

2022년의 가을.

태풍과 일상이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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