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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Jan 17. 2024

반복되는 무기력한 일상의 시그널

프롤로그

매일 아침. 졸린 눈을 억지로 떠 가며.. 머릿속은 아무 생각 없는데, 몸이 먼저 나간다는 게 이럴 때 하는 얘기일까..


어느 순간 오토메이션 되어버린 나는 자동인지 반사적인지, 익숙한 발걸음으로 총총총! 익숙한 지하철 똑같은 플랫폼 번호에서 쑥쑥쑥! 몸뚱이를 낑겨 밀어 넣고는.. 얼마나 갔을까.. 똑같은 풍경을 지나 똑같은 시간이 되면 도착하는 그곳.. (돌아보면 어떻게 왔는지 생각 안 날 때도 많지.)

아주 익숙하게 맞이 하는 오토매틱 모닝 워킹


이름하여 "회사"!! '모일 회',  '일 사'

일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일하러 오는 모임? 그냥 '일터' 이거잖아. 근데 '회사'하니까, 뭐랄까.. 꽤 있어 보이긴 한다. 그치? 뭐 대충 그렇다.. 그러하다.. 그렇다고 하자..


이곳 사람들의 하루 일과를 떠올려보자..

떠올려보자.. 이 게임의 당신 캐릭터는 무엇인가?


출근해서.. 매번 똑같은 무미건조한 톤에 아무 영혼없는 아침인사 "안녕하세요!"를 대충 허공에다 내뱉고 나서는, 그래 난 여유 있는 K 직장인. 우아하게 아메리카노 하나 내려서 자리에 앉아, 오늘은 무엇을 해야 되는지 끄적여보다 어제 쌓인 메일을 대강 쓰윽 훑고 있다.


그러고 있노라면 무슨 팀회의다 주간회의다 불려 들어간다. "아하.. A가 B이고, B가 C이면, A는 C구나!" 이런 시덥잖은 얘기 좀 듣고, 눈은 껌뻑껌뻑 고개는 끄덕끄덕. 대뜸 내게 의견이 어떤지 물어본다. 그냥 앞에 나온 얘기들 종합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충 얘기한다. 원래 별 생각 없었으니까..


이따금 좋지 않은 회의 분위기. 실적이 안 좋거나 하면 사장님의 특별지시(?) 같은 게 날아오기도 하고, 회사가 어렵다.. 실적이 저조 하대드라.. 이런 얘기가 나온다. 그럼 '귀 쫑끗+눈 힘빡' 해줘야 된다. 이때 정신줄 놓으면 다 뒤집어쓰니까..


가령 우리 팀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이슈가 생겼다면, 팀장님 왈 "이거 누가 하는 게 좋을까?" 이때부터다! 다들 서로 지는 지금 중요한 거 하고 있어서 제일 바쁘고, 꼭 그 일은 오늘까지 해야 된다는 그럴싸한 모범답안들을 꺼낸다. '결국 결론은 다 자긴 안 된다는 거지!'


이때 걸려오는 전화! 누군가는 타이밍 오지게도 갑자기 급하게 뛰쳐 나간다. (알고보면 광고 전화다.)

다들 내가 뒤집어쓰긴 싫고 누군가는 해야겠으니, 남은 사람들은 이 난관을 헤쳐보고자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몇몇은 무언의 눈빛을 쓰윽 교환하고는.. 일 떠밀고 싶은 한 명 콕 찝어 갑자기 띄워준다. 가장 잘할 수 있을 것 같네, 최고의 전문가네 이러면서. 보고 있으면 디게 웃긴다.


여튼 적당히 듣다 나오는 거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항상 거기서 또 내가 해야 되는 일거리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 오늘도 한 건 낚였구나..' 그래서 또 일을 받고 노트에 추가하게 된다.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때부터 이 요망한 업무 퀘스트들을 어떻게 해치울까 고민이 시작된다.


잠시 멍 때리고 있다가.. 그래! 아침에 보던 메일!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 메일 끝인사는 '흠.. 뭐지?' 다 빠른 회신 부탁한대. 그리고 감사하대. 아직 뭐 해준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어떤 사람은 한술 더 떠서 '미리 감사합니다!' 이렇게 써 놓기도 하는데, 그럼 또 순진하게 그거부터 회신하고 있다. 굳이 감사 인사 받으려고 회신하는 것은 절대 아닐 터. 회신을 빨리 주면 감사하겠다는 조건문인 것인지, 감사는 그냥 원래 깔고 들어가는 디폴트 같은 것인지. 언어의 어려움! 메일 작가의 의도! 에서 시작하여, 세종대왕! 훈민정음! 아래한글! 이런 4자 성어가 머리를 스쳐 지나갈 때는, 시간도 어느새 30분 스쳐 지나간다. "앗 시간 가네.. 빨리 해야겠다!" 하고 있으면..


메신저는 항상 그때 날아온다. 어제 메일 보낸 거 다 확인하셨냐며.. 정확히는 어제 퇴근 직전에 보낸 거지. '얘는 뭐가 이리 급한 건지..' 생각해 보면 맨날 급하다고 했던 것 같다. 쨌든 다 회신해 주고, 다시 오늘의 업무 퀘스트로 돌아와서는 '자아 함 해볼까?' 마음을 굳게 먹으면!


'어라? 밥시간이다..' 딱히 시간은 안 봐도 된다. 그냥 이쯤 된 거 같은데 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슬슬 일어나면 그게 밥시간이다. 삼삼오오 몰려서 오늘은 모 먹을까? 어디 갈까? 하면서 무리들 틈에 어디론가 낑겨가게 되고..


점심 먹을 때는 일 얘기하면 안 되는 게 또 국룰이다. 그럼 무슨 얘길 하느냐? 그냥 주말에 뭐 했냐부터 시작해서 집에 밥 숟가락은 몇 개냐는 꼰대들. SNS 보니까 어제 어디 갔던데 거기 어때?..에 이르기까지. 별 쓰잘데기 없는 신변잡기를 하는데.. 듣다 보면 헷갈린다. 궁금해서 묻는 건지 그게 왜 궁금한지, 만만한 애 하나 호구 잡아 즈덜끼리 웃고 싶은 건지.. 그렇게 먹는 밥은 맛있게 포만감을 느낀다기보다는, 한 끼 꾸역꾸역 밀어넣고 때웠다는 느낌이 더 정확하다.


일거리 좀 그만 가져오라구!!


어느덧.. 나른한 오후.. 하루의 본 게임은 오후부터 시작된다. 슬슬 급하거나 퀘스트 난이도 쉬운 업무부터 공략한다. 그러다 보면 또 누가 말을 건다. 왜 항상 비장하게 뭐 좀 시작해 보려고 하거나, 초집중 상태일 때만 말을 거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말 거는 사람들은 보통 크게 두 부류다. "바쁘시죠?" 나 좀 도와줘, 업무 요청, 잡다한 질문, 똑같은 거 또 묻는.. 일을 말로 하는 앵무류 "안 바쁘면?" 바람 쐬러 가자, 쉬었다 하자, 티타임이나 하자.. 는 휴게류 보통 전자는 안 친한 사람, 후자는 친한 사람. 그러고 한 타임 보내고 나면 '아.. 3시 넘었다..'


이제 시간이 없다. 본격적으로 밀린 업무 퀘스트 깨기에 집중한다. 이때부터는 손이 더 빨라진다. 이 스탯이면 사실 아침이면 끝났을 것을.. 포텐셜은 왜 항상 이때 터지는 것인지.. 이건 뭐라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정말 이 상태로 하루종일 하면 일주일 치도 다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이 포텐셜이란 건 지속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제한이 있는 한정 버프인 셈이지. 암튼 그렇게 무적버프 시간을 다 써서 깰 수 있는 퀘스트를 다 깨고 나면.. 퇴근 30분 전이다. 이 사이에 일 주거나 업무 요청하면, 마음속 나뿐넘 리스트에 올라가는 건 한 순간이다.


오늘 하루는 그냥 이렇게 끝나..별 거 없어


음.. 퇴근 무렵 오늘 일을 얼마나 했나 정리해 본다. 보통은 거의 다 했거나 못한 게 조금 남아있는 정도.

도중에 어디선가 일폭탄이라도 맞거나, 중간보스를 만나 탈탈 털렸다면, 다시 업무는 상당히 쌓여 있겠고.. 그럼 버프도 다 썼겠다.. 현타는 오겠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나머진 내일 할 일로 넘기며, 눈치 봐가면서 슬슬 퇴근을 감행한다. 퇴근 인사는 들릴 듯 말 듯 작고 나지막하게 하는 게 국룰. 인사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나 간다고 분명 말했다!' 정도의 뉘앙스다. 왜냐고? 크게 하면 눈치도 보이고, 가다가 잡히는 수가 있다나 뭐래나.. 몰라 나두!


그렇게 퇴근을 하면 '오늘도 무사히!' 속으로 나지막히 외치며, 녹초가 된 몸뚱이를 아침과는 반대 방향으로 다시 고대로 가면 된다.


다음 날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람쥐 챗바퀴 돌 듯 똑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제를 복사해서 오늘로 붙여넣기 해도, 아무런 티도 안 날 것 같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더 헬일수도...


그럼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자. 출근 준비부터 퇴근까지 하루에 못해도 반나절은 쓰게 된다. 집에 와서도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쳤다. 여기에 내일 반복될 일상의 부담감에 푹 쉬게 된다. 하루 반나절을 회사에 썼지만 그 뒤의 여파를 생각하면 실은 반나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셈이다.


그래서일까.."무슨 일 하세요?" "노비예요.." 이런 말 이제 흔해져 버렸다. 공공부문이면 공노비, 사기업이면 사노비라 하지..


왜 이렇게 되어가는 걸까?

어릴 땐 그저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어보니 왜 또 그게 안되는 걸까? 왜 나 자신으로 살기가 이렇게도 어려운 걸까? 아직 회사 다닌지가 얼마 안돼서 그런 걸까? 1년 뒤엔.. 좀 낫겠지.. 3년 후면.. 괜찮아질 거야.. 5년 후엔.. 분명히 좋아질 거야.. 아님 10년 후? 그땐 정말 많이 나아지고 달라지겠지?? 그래 참고 버티자.. 하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 어쩌면 다음 기회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다 속고 있으니까..


하루의 일상이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저 일상 속에는 드러나지 않는 게임의 기본 원리와 숨겨진 장치들이 내제되어 있다. 단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울 뿐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게임 속에서 이를 정상적인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원래 하루는 이런 것인가보다..하게 된다. 주변에도 다들 그러니까 그런가보다..하게 된다.


게임의 설정에 따라 맵에서 자동사냥을 도는 그 일상.. 안타깝지만 이게 리얼리티 현실판 게임이다.


다만, 그러한 현실을 마주한 채 '괜찮아 모두 잘 될거야!' 애써 부정해가며, '수고했어 오늘도!' 애써 익숙해지며, 우리는 그렇게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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