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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Feb 05. 2024

팀워크 속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개인의 소멸과 집단 감시 효과


개인 성과는 조직의 성과


회사의 근본 속성은 집단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개인 성과보다는 조직의 성과.. 이를 위해서 협동, 협업.. 용어 좀 쓰는 데는 커뮤니케이션, 코웍, 콜라보, 코크리에이션 이런 있어 보이는 단어를 좋아한다.


언뜻 보면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이다. 회사를 혼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여럿이 모여 함께 일하며 각 팀들이 회사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회사는 팀워크를 강조한다. 팀워크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는 회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명랑 드라마 오피스

어느 명랑 드라마에 나오는 사무실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가만 보면 이상하게도 드라마에 나오는 사무실들은 책상에 그 흔한 파티션 하나 없다. 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이거 나만 이상한 거야?)


팀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활기차게 웃으며 말한다. "자아! 이번에 새로 출시된 우리 감귤 로션이 어떻게 해야 고객들 관심을 끌 수 있을까요?" 여기서 보통 다 눈을 피해야 되는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대리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며 대답한다. "아하! 팀장님~ 저 좋은 생각났어요! 고객들이 직접 써 볼 수 있게 체험 행사를 하는 거에요! SNS에 올리면 선물로 샘플도 주는 거 어때요?!"


이때 박과장이 맞장구를 친다. "그래! 이대리 굿 아이디어! 감귤 로션이라 향도 은은하고 좋으니까 체험 행사만 한 게 없을 거야! 팀장님! 행사는 제가 좀 해봤으니까 장소 섭외부터 어레인지 할께요!"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듣고만 있던 막내 김사원. 이 타이밍에 입을 삐죽이며 방송 분량을 확보한다. "피이! 다들 저만 쏙 빼기에요? 전 행사 샘플 물량 확인하고 발주 넣도록 할께요! 저도 빠질 수 없다구요!"


드라마 속 회사는 늘 화기애애하다.


팀장님은 매우 흐뭇해한다. "그래 정말 좋은 생각이야! 모두 서둘러 움직이자고! 난 사장님께 행사 바로 준비하겠다고 보고 할게!" 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가다가 뭔가 잊은 듯 다시 돌아와서는, 법카를 꺼내 흔들어제끼며 한 마디. "아 참! 그런 의미로 오늘 우리 팀 회식 어때?"


일동 모두 환호한다. "와앙! 전 소고기요!" "열심히 일해야 되니 미리 든든히 먹겠어요!" "전 점심 굻어야겠는걸요?" 뭐 이런 유치찬란한 대사 좀 친다. "하하하! 대신 먹고 나서 이번 행사 잘해야 돼!"


여기까지 보며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 "저런 게 어디 써!" “지금 장난 똥 때리나?” 이런 반응이라면 다행이다. 아직 정상인의 범주다. 여전히 드라마에 많이 묘사되는 오피스의 광경이지만.. 저건 어디까지나 드라마니깐.. 픽션이니깐..


물론 막장 드라마는 좀 다르다. 샘플에 독극물도 쓰윽 넣고.. 어떻게든 한 방에 나락 보내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일부러 나 범인인 거 알려주려고 눈을 무섭게 치켜뜨고는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기도 한다.


어쨌든 픽션과 현실을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픽션이 아름다울 때는 현실에 있음직한 일을 그려낼 때이다. 현실은 이런 핑크빛 오피스의 분위기와는 너무 다르다. 이건 '다.르.다'가 아니라 '틀.렸.다'이다.


방금 예로 든 드라마처럼 굴러간다면 정말 이것은 사자성어로.. 집단지성, 조직성과, 참된협동, 웃는일터, 아이좋아, 나두할래 이렇게 되겠으나..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면에 숨겨진 조직의 비밀 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집단을 위시한 개인의 부품화와 상호 견제

회사는 집단을 우선으로 한다. 개인의 능력이 묻혀버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조직을 강조하고 서로 뒤섞이게 만들어 상호 감시 효과를 유도하는 것이다. 누가 일하고 노는지 협업하다 보면 바로 확인 되기도 한다. 관리자는 진도를 체크하며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런 조직과 집단, 패키지 속성 때문에 일이 돌아가게 되고 개인의 나태함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개인은 철저히 파묻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회사가 집단이라도 개인이 혼자 할 일도 있다. 사람에 따라 혼자 하는 것에 능한 사람이 있다. 반면 같이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캐릭터마다 취향도 각자 다르다. 그런데 회사가 인정해 주는 성과는 보통 개인 혼자 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설사 개인이 했다 하더라도 인정이 잘 안 된다.


혼자 일하기보다는 같이 하도록 한다.


가령, 혼자 일해서 10억 버는 상품을 만들었다 치자. 이를 회사는 내가 아닌 팀에서 했다고 여긴다. 그렇게 계속 혼자 좋은 상품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그 회사의 속성을 알고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소위 말하는 밥그릇에 숟가락 얹기가 생기는 것이다.


아까 드라마의 예로 다시 돌아가, 아름다운 픽션을 막장 현실판으로 바꿔 성과를 한번 따져 보겠다.

행사에서 감귤 로션을 10억 어치 팔았다고 해 보자. 10억을 파는 동안 여러 일을 같이 했어도, 각자 그 일의 기여도.. 즉 지분이 모두 다를 것이다.


10억 중에 기여도 지분은 어떻게 될까?

아이디어 내고 행사 기획해서 추진한 이대리 40%

장소 섭외에 경험 살려 행사 조력한 박과장 30%

샘플 준비하고 계산서 처리한 막내 김사원 20%

회식의 사기증진 리더십을 보여준 팀장.. 한 10%?

대략 이 정도로 지분을 나눠보면 적당할까?

 

아니라구? 그렇게 생각 안 한다구? 맞다. 정답이다.

이대리에게 물어보면 자기가 아이디어 내지 않았으면 못했다고 할 것이다. 박과장에게 물어보면 자기 경험 없이는 못 했다 할 것이다. 그럼 김사원은 놀았나? 막내라서 노가다는 제일 많이 했을건데..


그렇다. 애초에 딱딱 나올 수 없는 구조의 함정이다. 저 팀장은 사장 보고 들어가서 과연 뭐라고 할까? 아마 자기가 지시해서 한 것처럼 말하거나, 양심 좀 있으면 뭉뚱그려서 저희 팀에서 했다고 할 것이다. 그럼 위에서는 그냥 저 팀에서 한 게 되는 것이다. 팀장이 잘 리드해서 했겠구나 하고 마는 것이다.

 

만약 이대리가 혼자서 아이디어 내고 행사까지 다 쳤다 하더라도, 팀장은 자기 팀에서 했다고 하겠지.. 팀장의 실적은 그렇게 나오는 법이니까.. 즉, 혼자 하나 같이 하나 팀이라는 집단이 한 일이 되는 것이다. 회사는 누가 했는지 그런거 별로 관심 없다.


저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저희 팀에서 다 한 일입니다.


그럼 숟가락 얹기는 어떻게 가능해지는 것일까? 아까 이대리가 작정하고 혼자 하려 해도... 옆 사람들이 숟가락 한번 얹어볼라 하면 어떻게든 가능하다.


예를 들어, 박과장이 "이거 작년 자료인데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서.." 하고 옆에서 훈수 몇 번 두면 같이 한 게 된다. 김사원이 샘플 포장만 도와줘도 같이 한 게 되는 것이다. 숟가락은 그렇게 스리슬쩍 얹혀지는 것이다. 그럼 진짜 혼자 죽어라 한 이대리는? 그냥 그 팀의 전형적인 배터리로 자리잡게 된다.


성과는 쉽고 편하게, 함께 맛있게 나눠먹는 특징으로 인해, 어느 팀이던 묻어가는 거지같은 빌런들과 고독한 소년소녀 가장 한 명씩은 꼭 있기 마련이다.


성과 나눠 가질 때는 "역시 우리 이대리!" 힘들어서 배터리 좀 방전되면 "이대리 요새 왜 그래?" 이런 식이다. 이것을 파레토의 법칙이라고 하던가.. 일하다 중간에 현타 와서 넋두리라도 하면, 앞에서는 잘 들어주는 동료들. 뒤에서는 '쟤 요새 이상하다..' '상태가 안 좋다..' 팀장에게 가서 쓱 찌른다.


요새 좀 이상하단 말이지.. 저거 버려야 하나?


원래 팀워크라는 것은 감시 효과를 지니고 있다. 관리자들은 그때부터 불편한 마음으로 예의주시 하게 된다. 충전시켜 쓸 수 있겠는지, 교체해야 하는지.. 수시로 체크한다. 그게 관리이고 그래서 관리자다. 즉 이쯤 되면 감시는 더 심해진다. 업무에 있어서도 자유도가 훨씬 떨어지게 된다. 주위에서는 잡말들이 계속 나온다. 챙겨준다는 빌미로 사사건건 간섭이 들어온다. 주도적으로 일을 해 나가기가 점점 힘들어지게 된다. 이 지점에서 쌓이는 피로와 멘탈의 탈출로 번아웃이 오는 경우도 많다.


안타깝게도 조직과 팀워크, 나보다는 우리를 강조하는 이 게임의 근본 속성이, 결국 캐릭터의 제 기능과 강점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속에는 바로 '나!'라는 캐릭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말 많이 들어봤지? "회사의 부속품!"

회사는 결코 나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쉽게 잘 굴러가는 부속품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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