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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Feb 01. 2024

"짤리면 안 되는데.." 지금 회사는 위기!

위기론으로 자극하는 공포심


밥그릇 협박이 제일 잘 먹히는 법


위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세계 경제 위기, 수출 불황, 내수 불경기, 매출 감소, 시장 침체, 금융 위기, 소비 심리 위축.. 다양하다. 무엇이 회사의 위기일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수 많은 회사들이 앞다투어 오늘도 위기론 카드를 꺼내고 있다는 것이다!


웃긴 건 보통 연말 연초에 꼭 이런 얘기가 나온다. 업계 동향, 시장 상황, 불안한 무역, 치솟는 금융 이자, 떨어지는 주식.. 이런 것들을 가져다 붙이고는, 경영 환경 악화, 쉽지 않은 올해 전망, 감소하는 매출, 급등하는 원자재 가격.. 이렇게 연결 짓는다.


하고 싶은 얘기의 결론은 항상 같다.

"회사가 위기입니다!" "모두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합니다!" "이 상태로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 힘을 합쳐 위기를 기회로!


보통 사장님부터 임원진들의 일장 연설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거기서 약속이나 한 듯.. "회사가 어려워지면 우리도 감원이나 구조조정을 해야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대사는 빠지지 않는다. 해석기를 돌려보면 "회사 실적 안 좋으면 너네 밥그릇 뺏을 거니까, 가서 돈 벌어와!" 그냥 이 얘기다.


이 위기를 모두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면, 회사가 더욱 튼튼해지고 장밋빛은 시뻘게져 비 온 뒤에 땅이 굳고.. 선동과 감성팔이를 적당히 섞어 휘저은 다음, 다 같이 극복하자 파이팅 한번 한다.


일단 회사 분위기는 급속도로 안 좋아진다. 곧 원가 절감, 긴축 예산, 성과급 하향, 연봉 동결 같은 일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실무에서는 거래처 지급 대금도 깎아봐라 오만난리를 쳐대기 시작한다. 계약 건들은 일일히 비용 타당성을 자료까지 만들어 상소문을 올려야 할 판이다. 아주 하는 것마다 즙을 쭉쭉 짜댄다.


그래. 회사가 어려우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근데 이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지금 나 때문에 회사가 어려운 거야?'


소위 대표부터 임원이란 사람들. 일명 경.영.진! 오피스 게임 세계관 최강자들이다. 위기인지 기회인지 그거 미리 잘 대처하고 살려보라고 좋은 대접해 주면서 그 자리에 앉혀 놓은 건데.. 왜 밥그릇 협박은 아래서 받아야 되고, 즙도 아래서 짜야 되는 것일까??


위기론 뒤에는 뭐라도 해야겠으니 모두 분주해진다.


단가 낮춰라, 예산 줄여라, 창의적 발상으로 돈 벌어봐라.. 뭐라도 막 짜내는 시늉들을 한다. 이건 뭐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국룰이다. 


위기네 뭐네 호들갑 떨기 전에, 그 윗분들이 위기 탈출할 그림을 그려와서 지도가 이러하니 네비 찍고 이 길로 가자!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그치?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들이 답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스란히 아래로 전가시켜 버린다.


가령, 홍수가 날 것 같으면 윗물에서 미리 댐 좀 쌓아주고 적당히 방류해야 되는데, 일단 죄다 아래로 흘려보내고 관망부터 한다. 아랫 동네는 때아닌 홍수로 대참사를 겪고 아비규환이 된다.


한편 아랫 동네. 가진 아이템은 없다. 디버프에 걸려 있다. 그러나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사활을 걸고 살기 위해 몸빵으로 부딪친다. 이 미친 난이도의 험난한 퀘스트를 간신히 이겨낸다. HP는 빨간색 딸피..


위기 상황의 불안함은 사람을 비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관망하던 윗물에서는 이를 보고 생각한다. '아.. 돈 많이 들여 댐 하나 건설해야 되나 했는데.. 어라? 이게 또 어째 저째 극복이 되네?'


당초 생각했던 댐 건설은 굳이 하지 않고 넘어간다. 왜냐고? 지켜보며 이미 학습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해도 충분히 클리어 할 수 있구나!'


회사 비용도 세이브하고 탁월한 리더십으로 위기를 극복한 모범 임원 대접을 받는다. 과감한 전략, 예측의 적중, 타고난 승부사 모든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이 정도면 나중에 퇴임 후 리더십 강연도 가능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한번 겪어보니 의외로 실적도 좀 나고 생각보다 괜찮더라..는 결과를 얻은 그들. 과정 따위는 상관없다. 그때부터 위기란 위기는 다 꺼낸다. 지금 생각하는 그거 맞다. '양. 치. 기. 스킬!'


처음에는 진짜 위기의식으로 회사 문 닫고 다 길거리로 내몰릴까 봐 합심하여 대동단결했다면, 그 다음부턴 즙짜기용이 되는 것이다.


매출은 분명 괜찮은데, 뭔가 마음에 안 든다. 지출, 예산, 복지를 줄이고 싶은데 마땅한 핑계거리가 없다.. 그럼 위기론! 수출 환차손이 예상되고, 뉴스 보도자료, 경제 연구소 자료, 자기들 입맛에 맞는 통계 숫자들만 쏙 찾아 꺼내들고 또다시 외친다. 위기론! 어려운 여건 속이지만 저번처럼 잘 뚫고 헤쳐 나가자고 한다. 열심히 즙 짜보라는 얘기다.


자. 그 바람대로 재수 좋게 잘 헤쳐 나갔다고 하자. 이제 수출 경기는 좋은데, 내수가 침체 전망이란다. 내수 실적이 살짝 줄어든 그래프를 보여준다. 이대로 가면 위기라고 한다. 내수가 튼튼해야 수출이 막혀도 자금이 순환되며 내수는 곧 브랜딩이다.. 그러니 결론은 열심히 내수 영업 쥐어짜라고 한다.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위에서 그러니까 맞겠지..' 또다시 열심히 뛰어다닌다.


평소보다 열심히 뛰어다니고 전화도 열심히 돌린다.


그렇게 즙을 쥐어짜고 나서, 다 빤 수건 한번 더 쭉쭉 짜내 마지막 물기 한 방울 똑똑 떨어질 때 즈음.. 이번에는 전반적 경기는 나쁘지 않은데 회사가 속한 업종이 어렵댄다. 조선업이 어렵다. IT 거품이 빠진다. 감염병으로 하늘문이 막혔다.. 이런 것이다.


또 위기다. 비상경영을 선포한다. 이상한 보여주기용 TF 같은 거 만들어, 제주감귤 믹서에 갈아 넣듯이 또 한바탕 갈아 넣는 것이다.


얼마나 이렇게 보냈을까나? 이제는 대략 실적도 괜찮고 유지도 잘 된다. 잠시 찾아온 평화롭고 오디너리 한 날들을 위기 후 보상이라 여기고 있을 때!! 위기론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지금 안주해서는 안 된다. 위기에 미리 대비하라!'

'회사의 체질을 바꾸고 성장 동력을 찾아야 된다.'

'장기적인 먹거리 개척하자! 기왕이면 극기복례!'


이제는 예비 위기론까지.. 이게 도대체 몇 번째냐.. 이제 더 갈아 넣을 게 없어서 껍질까지 갈아 넣는다. 뭐라도 계속 쥐어 짜다보면 몇 방울이라도 나오니깐..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급여 동결을 하기도 한다.


호황기도 오지 않냐구? 실적이 좋으면 충분히 보상되지 않냐구? 물론 호황기도 온다. 그럼 이제 동종업계 경쟁사와 비교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올해 실적이 50%가 올라도..

"옆에 초맹사는 80% 올랐다! 이건 잘한 게 아니다!" "언제 불황이 올지 모른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이때 더 바짝 벌어둬야 된다!"며 새마을 정신을 강조한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쥐어짜고 너덜너덜해지게 될 때쯤, 보너스나 격려금 좀 챙겨주고 생색은 오지게 내는 것이다. 게임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계속 지켜보다가 다 죽어갈 때 돼서야 비로소 주사 한 대 놔주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마약 성분 듬뿍 들어간 진통제 임시 처방과 다를 게 없는 셈이다.


위기론 뒤에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위기는 그냥 갖다 붙이면 다 위기다. 경영진의 즙 짜내기용 카드란 소리다.


단기 성과로 인정받아야 자리를 보전하고 영전하는 오피스 세계관 최강자들이 유능해 보이는 방법. 무능함을 감추고 실적표에 숫자를 찍어내는 방법. 그것을 가장 빨리 달성할 수 있는 그럴싸한 방법. 그 마법의 치트키가 바로 '위. 기. 론'인 것이다!


한번 관찰해 보자. 위기가 아닐 때는 아마 없을 것이다. 위기론이 나올 때는, 저것을 이용해 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일까만 생각해 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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