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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Feb 08. 2024

“취업이 너무 힘드네요..” 죽고 싶다..

시작부터 불리한 게임의 법칙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 디폴트 설정


'시작'.. 참으로 우아하고 희망찬 멋진 단어다.

그렇게 학교를 벗어나 '시작'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사회라는 곳을 향해 그 첫발을 내딛는다.

누군가는 꿈을 이루고자, 누군가는 돈을 벌고자, 누군가는 백수가 되지 않으려고.. 그들의 목적과 내면은 모두 제각각이겠지..

졸업이라는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차오르는 조바심에 뜬 눈을 지새우며 열심히 찾는다..


'좋. 은. 회. 사!'


“뭐가 좋은 회사지?”

유명한 회사? 높은 연봉? 잘 맞는 직무? 복지?

모르겠다. 취업 스터디도 해 보고, 특강도 듣는다.


"지원하려는 회사의 인재상과 비전을 보고, 거기 맞춰서 자소서를 작성하세요."

"여러 곳에 무작정 지원하기보다, 소신 지원으로 집중해서 확률을 높이는 것이 유리합니다."

스터디나 특강에서 자동암기 되도록 많이 듣는 얘기다. 그러나 저건 정답이 아니라 어디서나 통용되는 모범 해설일 뿐이다.


'전문가들의 이야기와 경험담이니까 맞겠지..'

처음에는 수많은 회사 중 어디를 지원할지 고민한다. '이 회사는 산업군이 나와 맞지 않아..', '여긴 야근이 많다던데..', '너무 멀잖아.', '연봉이 왜 이래..'

온갖 이유로, 고개를 들고 두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제 눈이 안경이라고 지원서를 쓰기보다는 거르는 것을 우선하게 된다.


그렇다. 기본적으로 사람에게는 자기 관대화 경향이라는 패시브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잼민이가 어느 순간 자신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회사와 나와의 게임에서 스스로 나홀로 '갑'이 되어 있던 것이다.


그러나 '제 눈이 안경'이던 것이 '내 코가 석자'로 변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귀하의 자질은 높게 평가하지만 이번에 저희와 인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귀하의 건승을 응원합니다.' 한번 두번 서서히 불합격 메시지를 받는다.

어쩜 저리 모든 회사의 멘트들이 짜고 친 듯 똑같은 것일까.. 자질을 높게 평가하는데 왜 안 붙여줘?

그냥 다 거짓말이다. 더 볼 필요없다는 뜻이 되겠다.


취업이 하고 싶다. 하늘을 보던 눈은 어느새 땅을 보고 있다.


처음 몇 번 불합격 메시지를 받을 때는 '감히 이 따위 회사가 날 떨어뜨려? 더러워서 안 간다! 캬악~ 퉷!' 인정할 수 없다는 의지를 가래와 함께 뱉어낸다.

‘아직 갈 곳은 많아!’ 이내 다른 회사를 지원한다.


그 다음 수차례 불합격 메시지를 받게 되고.. '하다보면 잘 되겠지..', '나와 잘 맞는 곳이 있을거야..' 스스로를 위로한다. 높은 하늘을 바라보던 고개를 살짝 내려,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또 다시 연이은 불합격 메시지를 받게 되면 '내가 이토록 볼 품 없었는지..', '세상이 날 원하지 않는 것인지..' 한숨을 뒤로하고 고개는 땅바닥을 응시하고 있다.

푸른 하늘과 대지의 지평선을 바라보던 시야는, 그렇게 어느 순간 땅바닥으로 푹 꺼져 버린 것이다.


여튼.. 서류 지원 결과 3연패, 5연패.. 점점 패전수가 늘어날 때마다, 누구는 어디 붙었대..하는 승전보가 전해지고, 명암이 엇갈리며 조급함은 커져만 간다.


딱 이런 공식이 성립하게 된다.

초맹의 취업시즌 불안지수 공식
(내 지원 합격수 - 불합격수) - (남의 합격소식수/2) + 남은 합격발표수/3) = 내 불안감 지수 (- 조급 지수, + 여유 지수)


그때부터 이름 좀 들어본 회사, 대략 얼추 나쁘지 않은 조건이면, 일단 어디라도 붙고 봐야겠다 싶어 지원서 복붙을 마구 시전하게 된다. 하다보면 이제는 어디를 언제 지원했는지도 잘 생각나지 않게 되고.. 심지어 지원을 하긴 했었나 싶기도 하다. 이때부터는 이미 '을'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쉬운 자는 회사가 아니라 나였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다.


운 좋게 몇 개 회사에 서류 합격 통보를 받는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뿐.. 또 다시 걱정이 앞선다. 이제까지는 예선전이었던 것이고, 직접 현피를 떠야 하는 ‘면접’이라는 본선 게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시 특강과 스터디, 서칭에 의존해서 게임 준비를 한다.


회사 면접장에 가면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저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렇다. 그들도 '을'이었던 것이다. 나와 같은..


면접 대기 중에는 심박수가 올라간다. 


면접이라는 게임은 면접관이라는 보스에게 내가 좋은 캐릭터라는 것을 최대한 어필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을'이기 때문에.. 그 전에 몰랐더라도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이미 잠재적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왜 뽑혀야 되는지, 이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우수한 캐릭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짧은 시간에 필사적으로 모든 스킬을 동원한다.


여기서는 면접관만 집중 공략해도 미션 클리어를 장담할 수 없다. 다른 지원자의 스펙이나 답변이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옆 사람 답변에 관심도 없으면서 '나는 남 얘기도 잘 듣는 사람이에요.' 이거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고개를 끄덕이는 리액션도 하게 되는 것이다.


옆 사람이 말을 잘 하면 불안하고, 답변을 잘 못하면 속으로 고소하고.. 어떻게든 얘를 제끼고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삐져나온 옷 매무새. 구두흙이 살짝 묻은 구두. 흰 먼지가 내려앉은 머리. 한개 똑 떨어진 단추. 번져있는 화장. 그 무엇도 서로 말해주지 않는다. 암묵적 룰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가 죽어줘야 내가 사니까.. 즉, 이 면접이란 것은 지원자들끼리 서로 죽여보라고 경쟁을 유도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옆에 지원자가 대답을 잘 하면 그 순간 기분이 나빠진다.


게임이랑 다를게 없지.. 유명한 길드는 소위 지원자가 많아 치열하다 보니 내 레벨과 아이템, 현질 수준 이런게 스펙이 되는 것이고, 길드에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지를 짧은 시간에 필사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것이며 길마의 간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물려받을 사업체가 있거나 놀아도 먹고 살만해 취업이 구독형 부캐인 사람은 급하거나 아쉬울 것 없는 반면, 생계형 본캐인 사람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걸고 덤비게 되어 있다.


물론 대부분은 후자다. 회사는 이들의 절박함과 불안감을 보고 즐기며 이를 '도전'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해 부른다. 학교라는 튜토리얼 맵에서 학점, 어학 같은 소위 스펙을 잘 쌓아놓지 못하게 되면, 사회라는 실전 맵에서 차가운 현실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이고 공정하게 심사한다고 해도 다 거짓말이다. 이미 수많은 서류 전형은 아웃소싱을 준다. 심지어 AI로 조건 입력해서 필터링 해 버린다. 그것이 회사의 효율화 방식이다. 공들여 쓴 입사지원서가 인사 담당자에게 제대로 읽히지도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기계에게 인간이 평가를 받고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껏 배워 온 동등한 쌍방 간 평등한 근로계약, 투명한 채용, 사회생활의 장미빛 미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게임은 현질로 스펙 따라잡기라도 가능하지만 취업은 그것도 힘들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펙으로 통하는 소위 '빽'이라는 치트키가 없다면 말이다.


합격 전화! 드디어 고생 끝 행복 시작된다.


아무리 문질러도 거품 하나 나지 않는 메마른 비누처럼, 영혼의 흐느낌조차 한없이 말라갈 때 즈음..


이 서바이벌 게임에서 간신히 살아남게 되면, 회사라는 길드와 입사라는 아이템, LV 1. 사원..이라는 레벨이 주어지게 된다. 이렇게 피를 말려버리고 처절히 짓밟아 멍자국 얼룩지게 만들어 놓고서야 입사를 시켜주기 때문에, 날 살려준 회사가 감지덕지 눈물겹게 감사하다. 그때부터 자동으로 '을'이 된 상태로 오피스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 '을'의 법칙은 여기서 간단하게 설명된다. 상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면 '을'이 되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은 회사가 친히 모시러 가고, 이를 영입이나 초빙이라 부르며 어렵게 모셔왔다 '갑'의 품격을 높여준다. 무명인 사람은 회사가 이리 오너라 하고, 이를 채용이라 부르며 잘 선별해서 골라 뽑겠다 '을'의 위치를 되새겨준다.


모든 시작의 출발점과 기울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단지 자진해서 ‘을’이 되어가는 과정이 똑같을 뿐..

새로운 시작이 아닌 불리한 시작..

이것이 시작하기도 전에 ‘노비’로 전락시켜 버리는 오피스 게임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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