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위기의 오너 후계자. 혼란 속에 틈을 비집는 자들
위기에서 드러나는 내 편과 배신자들
때로 회사의 외부 상황은 내부 분열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권력의 한자리를 차지하고자 비집고 드는 이들이 생겨난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국의 사절단이 한 차례 폭풍을 쏟아부엇다. 스테이츠와의 미팅 소식을 전해 들은 현자는 골똘히 생각한다.
'침착하자. 200억? 300억?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발등에 불은 떨어졌다. 근본적으로 악성재고를 강매처분하는 이유가 뭘까? 왜 악성재고로 남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 재고를 이렇게나 급하게 떨어내는 이유는 뭘까?'
현자는 회의 중 여러 대책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고작 나오는 의견들은 뻔했다. 200억 정도 디스카운트 강매를 받을 것이냐와, 원하는 300억 다 받아주고 저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것이냐가 중점이었다. 그리고 우리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뭘 더 해달라고 할 것인가? 저들이 과연 들어줄까? 정도가 다였다.
역시 상대가 어메리칸 제국이라 쉽지 않구나.. 생각하던 찰나, 초대리가 한 마디 한다.
"쟤들. 저거 재고 못 빼면 다 디지게 생겼으니까, 땡깡 부려서 강매 치는 거잖아요. 그 얘기인 즉! 꼭 빼야 한다는 거죠. 그건 지들이 다 골로 가게 생겼단 소리니깐. 성능은 뭐 미제니까 확실하다 이러고 약 파는 거네."
"응? 초대리님.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그걸 생각해 봐야 알아요? 그냥 보이잖아요. 사람은 죽을거 같으면 다 본성 드러나거든요. 며칠 기다리면서 답 달라고 하더니, 것두 얼마 못기다리고 바다 건너 여까지 왔음 말 다한 거죠. 이건 한국이든 미국이든 대국이든 그냥 사람 본능이에요. 국룰이 아니라 월드룰 이라고요!"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또 초대리 별 영양가 없는 소리 한다는 표정으로 다들 피식 웃을 뿐이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현자는 뭔가 생각에 잠긴다.
'아! 그렇구나! 재고를 서둘러 빼야만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그래서 저렇게 무리를 하는 거였구나!'
그렇다면.. 지금 아쉬운 건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다?
그래.. 어쩌면..
"아주 중요한 시그널이군요. 답을 찾은 거 같습니다. 고마워요! 마저 마무리들 하세요. 전 바빠서 먼저!"
현자가 서둘러 급히 나간다. 남은 사람들은 술렁인다.
"뭐야? 현실장님 뭐임? 갑자기 왜 저럼? 초대리가 또 끝장 낸 거야?"
"흠. 몰라요 저도. 왜 저러는지.."
이틀 후, 자재강매 협상이 다시 재개되었다. 스테이츠 이사가 폭격을 시작한다.
"우리의 조건은 처음과 같습니다. 자재 재고 구매 300억입니다. 대신 저희는 미국 자동차 시장이 선전하고 있는 만큼, 초맹자동차의 우선지위와 조건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만약 어려우시다면 최소 250억이라도 구매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전무가 반색한다. 나왔다. 250억! 그 와중에서도 그는 자기가 어제 술 좀 먹여 50억이나 세이브했다는 깨알 성과어필을 하기 바쁘다. 지금 피 뽑으면 알콜만 나올 거라며.. 제니는 말없이 고전무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다.
고전무의 압도적인 영업력으로 50억을 깎아서일까? 제니는 편안해 보인다. 현자는 제니에게 눈짓으로 사인을 보낸다. 이제 제니가 딜을 하려는 모양이다.
"저희 (주)초맹은 스테이츠 사의 든든한 파트너입니다. 이번 상황을 양사 간 화합과 신뢰의 계기로 만들고 싶습니다. 다른 거래선에도 나눠서 자재 매입을 권하고 있다죠? 그럴 것 없이 재고 전량을 저희에게 주세요. 3,000억에 저희가 모두 매입하겠습니다."
뭐? 순간 모두 놀란다. 심지어 고전무도, 강매 당사자인 스테이츠도..
"리얼리? 전부 매입하시겠다구요? 총 4,000억 규모인데, 다 하시면 특별히 3,000억에 맞춰 드리겠습니다. 근데 저희야 좋지만, 전량 매입하시는 이유가.."
뭘 이 정도로 놀라냐는 듯, 제니는 웃으며 답한다.
"든든한 파트너로서 서로 어려울 때 돕겠다는 (주)초맹의 선한 의지이자 징표입니다."
뭐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때 고전무가 다급히 끼어든다.
"부사장님! 안 됩니다! 회장님 아시면 난리 납니다.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에요. 쌩돈 3,000억을 그냥 주겠다니요? 회사가 두 쪽 날 수도 있습니다. 3천 억이면 매출 얼마를 해야 버는 돈인지 아십니까? 저거 들여와서 치우는데만 폐기물 처리비 수십 억은 더 들어요. 그냥 250억 먹고 떨어지라고 하는 게 낫습니다!"
제니는 난리 치는 고전무에게 환한 표정으로 나지막히 답한다.
"고전무님? 여기 스테이츠 분들 앞에서 경솔하게 이러시면 안 되죠. 언제는 유대를 돈독히 해야 한다면서요? 그래서 전무님 의견에 따르는 건데요? 결정은 제가 하고 책임도 제가 집니다. 스테이츠와 유대를 돈독히 하는데, 그 가치가 1,000억은 족히 넘는다고 봅니다."
"아니.. 부사장님. 제 말 뜻은 그게 아니잖습니까?"
"됐고요! 스테이츠 측에서는 대신 저희 요구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배터리 매입은 단가 보장을 해줄 것. 둘째. 초맹폰과 초맹자동차의 오더를 연내부터 10% 확대해 줄 것. 어때요? 저희가 통 크게 재고 부담 다 떠 안아 드리는데, 거기 비해 이 정도 요구면 꽤 가볍다고 보입니다만?"
제국의 사절단이 드디어 잇몸을 드러낸다. 발음에 악센트가 강해진다.
"물론이죠. 당연히 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로서 우리의 유대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저희 CEO께서도 매우 기뻐하시고 (주)초맹과의 모든 협력을 적극 강화하실 겁니다."
양사 간의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 위풍당당과 무례를 일삼았던 스테이츠 협상단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줄곧 제니를 추켜세우며 머리를 조아리기 바빴다.
회의가 끝나고 고전무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기저기 난리를 쳐댄다. 마치 알아달라는 듯..
"뭐? 배터리 단가 보장? 수출 오더 10% 확대해 봐야.. 그거 꼴랑 1~2천억 수준인데, 나머지 손실 2,000억을 어디서 메꾸자는 거야? 제니가 생각이 없어. 이럴까 봐 내가 선수 쳐서 250억 주고 끝내자고 한 건데!"
카더라 통신을 타고 발 없는 말은 천리길을 사방팔방 빠르게 달렸다.
소문을 접한 노조가 본사로 몰려 들었다.
"스테이츠와 모든 거래를 당장 철회하라! 거래를 철회하고 그 돈으로 노조에 보너스를 지급하라!"
"무능한 악마 제니! 회사를 미국에 바치고 있다! 마녀 제니를 끌어내려라! 우리의 일자리를 지키자!"
제니는 회사를 내다 버린 무능한 악마로 낙인찍혀가고 있었다. 제니를 보좌한 현자 역시 난감한 상황이 계속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희대의 간신으로 내몰렸다.
급기야 이사회가 촉각을 곤두 세운다. 제니의 후계 자질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사퇴론이 나오고 있었다. 고전무는 먼 산 너머 불구경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충신 고전무의 판단이 옳았다며, 회사의 대세 고전무가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회장도 제니의 기습 딜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이야! 전무님. 대단하십니다. 제니도 이번 건은 버티기 힘들겠죠?"
"100억 대와 1000억 대는 완전 다르지. 메꾸기 쉬운 돈이 아니야. 경험 없는 오너 후계자들이 보통 저렇게들 꼬꾸라지곤 한다네. 그리고 후계는 바뀌지. 허허허."
"역시! 전무님은 이렇게 될 줄 알고 250억에서 끝내려고 하신 거군요. 역시 빛나는 애사심과 혜안이십니다."
"그럼. 그럼. 정치인 과장. 자네가 뭘 좀 아는군. 경험과 관록이 이래서 중요한 거 아니겠나? 자동차, 배터리 좀 확대해 봐야, 지금 세계가 긴축인데 택도 없지. 제니가 계산을 잘못한 거야. 더 퍼주면 스테이츠가 뭐 우리한테 잘해줄 지 아나 보지? 현자라고 상대가 미국의 초일류 (주)스테이츠인데 지가 어쩌겠나? 우물 안 개구리 따위들이.. 이제 자네 역할이 크겠어. 크후후후"
잽싸게 상황을 파악한 정치인 과장. 노조와 직원들을 선동하며, 사내에 스피커들을 총 동원해 찌라시를 마구 뿌려댔다.
'고전무는 끝까지 회사를 위해 온몸을 불살랐다.'
'제니가 회사를 (주)스테이츠에 갖다 바치려 한다.'
'이완용이 나라팔아 먹던 장면을 회사에서 보고 있다.'
사내에 음모론이 들끓었다. 현자는 이미 (주)스테이츠에 이사 자리를 보장받았다는 설까지 나돌았다.
보통 권력은 어떤 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며 뒤바뀌게 된다. 그 이유는 그걸 이용하는 자들이 뒤에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갈등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외부의 압력에 서로 힘을 합치고 뭉쳐도 모자를 터인데 왜 분열이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누군가 교묘히 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다.
인간의 본성은 변함없는 법이다.
P.S. 회사생활의 음모를 미리 파헤쳐보기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