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최고의 유니콘은 일잘러가 아니야!

오피스 게임의 진정한 끝판 대장. 대인배!

by 초맹


다 끌어안아 버리면 두려울 게 없다!


"이제 걸림돌을 치워버릴 시간이다!"

고전무.. 이 회사에서 30년 넘게 뿌리내려온 대표적인 고인물. 그는 이제껏 오너를 지근거리에서 받들어 모셔 왔다.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탄탄함을 자랑한다. 고전무의 입지는 대단하다. 사장 후보이기도 하고, 다른 임원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 오랜 영업통으로 하청업체 장악은 이미 그의 손바닥 안이다.


역시 고전무 밖에 없다니까! 허허허


또한 제니 부사장에게 늘 반기를 드는 자다. 제니가 대표에 올라가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되는 자다. 고전무에게 당해 공장으로 좌천의 나락에 빠진 적이 있던 현자는 줄곧 늘 고민이었다. 마침 좋은 거리가 생겼다.


실적에 눈이 먼 고전무. 우리가 남이냐며 하청업체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들린다. 지금은 양질의 거래선들만 남기고 과감히 다운사이징 할 때다.


그럼 이 프로젝트에 고전무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하청업체들의 원성을 사고, 이미 오랜 유착관계로 인해 뒷돈이 오갈 것이 분명하다. 그걸 잡아내면 고전무는 끝이다. 만약 고전무가 이를 잘해 내서 원가절감과 품질향상을 이뤄낸다면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공적은 우리 쪽에서 가로채버리면 된다. 그리고 이를 추진한 고전무의 거래선 장악력은 급격히 약화될 것이다. 프로젝트를 제대로 못한다면? 고전무에게 책임을 고스란히 지우면 된다.


현자는 결단한다. 이제 갈았던 칼을 빼들고 고전무 사냥에 나설 때다.


고전무는 이번 프로젝트에 실패할 겁니다.


제니도 분명 좋아할 것이다. 현자는 제니 부사장에게 프로젝트 계획을 보고한다.

"좀 이상한데요?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거죠?"

"거래선 다운사이징은 우리 중점 과제입니다. 거래선도 정비하고, 고전무가 하청업체들 구조를 제일 잘 아니까 적임자 아니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맞습니다. 겸사겸사 고전무까지 잡겠다는 계산입니다. 언젠가 한번 꺾어놔야 하는 자입니다."


제니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 현자를 지긋이 바라본다.

"현실장님? 제 눈 보세요. 똑바로요. 음.. 왜 독기 가득한 것처럼 보일까요?"

"독기는요. 일은 그저 냉철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고전무님은 늘 저희와 대척점에 서 있죠. 그렇지만 고전무는 이 바닥 누구나 알아주는 영업통. 우리의 중요 전력이에요. 저도 저분이 늘 버거워요. 현실장님이 저를 위해 나서겠다는 것도 알겠구요. 그런데요. 앞으로는 저런 사람들은 계속 생겨나지 않을까요? 그때마다 이렇게 쳐 버리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고전무가 실력이 있더라도 그 실력을 우리에게 겨눈다면 실이 더 많을 겁니다."


"이 프로젝트 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단, 기조실에서 직접 추진해 주세요."

제니의 반응이 현자는 매우 뜻 밖이다.

이를 어쩐다? 마땅한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봐 기조실. 잘 좀 하지.. 서비스 결제 오류가 왜 이리 많나?


"부사장님은 뭐라고 하세요?"

"으음.. 추진하라고는 하시는데.. 문제는.. 저희 쪽에서 직접 담당하라고 하는군요."

기획조정실 단독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자니 이마저도 쉽지 않다. 수많은 하청업체들 중 능력치를 파악하는 것부터도 쉽지 않다.


고전무가 이를 알고 쫓아와서는 노발대발이다.

"현실장! 지금 제정신인가? 하청업체 건드려서 뭐 어쩌겠다는 거야?"

"생산성 향상의 일환입니다. 우량한 하청들만 데려가야죠."

"오래 충성한 업체들 마구잡이로 건들면 원청이 깡패 소리 듣는 거야! 누가 우리말 듣겠나?"

"하청업체들 불러 모아다가 우리가 남이냐고 충성 서약받는 거, 그게 더 깡패인 거 같은데요?"

"뭐야!? 그래!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 보게!!"


고전무 측에서 비협조로 일갈한다. 이미 소문을 들은 하청업체들도 고전무 줄에 서서 비협조로 나온다.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난항을 겪는다. 한술 더 떠 하청들은 경고성 태업들을 하는지 생산량이 낮아지기 시작한다.


'역시 쉽지 않군. 고전무. 예상은 했다만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지? 제니 부사장님이 처음부터 내 말을 들었더라면.. 부사장님도 고전무가 겁이 났던 걸까? 아님 내가 제니라는 사람의 그릇을 잘 못 본 걸까?'


현자의 머리는 복잡하다. 현자는 계속해서 여러 방법들을 모색하고 고전무를 잡을 전략을 구상한다.

'뭐든 상관없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여기서 결판을 봐야 한다. 고전무. 끝이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악연도 끝내버리자. 끝이다..'


하청업체 생존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이 무렵 고전무의 부친상 소식이다. 아무리 적이어도 체면치레는 해야겠으니 얼굴은 비춰야겠지?


상갓집을 가니 이미 제니가 와 있다. 고전무와 둘이 마주 앉아 얘기 중이다.

"회장님이 표현을 안 해도 이따금 부사장님 자랑을 하시곤 합니다. 전 평생 과일장사 하며 고생한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어요. 제가 여기 입사했을 때, 승진했을 때 그리고 임원이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제일 좋아하셨어요. 동네방네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더 열심히 회사를 다녔어요. 그게 제 유일한 동기였습니다. 대표에 올라가는걸 못 보여주고 이렇게 떠나보내네요. 더는 아무런 의욕이 나지 않는군요. 이제 저도 물러날 때가 된 거 같습니다. 허허.."


고전무도 사람인데 다 사연이 있겠지. 고전무의 의기소침한 모습이 새삼 새롭게 보인다. 근데.. 스스로 물러난다고? 잘 됐다. 절호의 기회야. 어쩌면 쉽게 풀리겠어.


현자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전무의 이야기를 들은 제니가 말한다.

"아마도 아버님의 마지막 기억 또한 당신의 자랑스러운 아들 고전무님이셨을 겁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 주세요. 하늘에서도 계속 지켜보실 테니까요. 아픔도 자랑도 저는 모두 함께 해 나가겠습니다. 전무님도 그래주실 거죠?"


어리둥절해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고전무의 두 손을 제니는 말없이 꼭 잡아주었다. 그날 시간은 거기서 멈춰 있었다.


자아 자. 이 사람들 참. 날 봐서라도 힘을 합치자고!


며칠 후, 고전무가 찾아왔다. 현자에게 난항 중인 프로젝트의 해법을 얘기해 준다. 기획조정실의 프로젝트에 관련 부서 직원들이 협조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역시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비슷한 하청들끼리 서로 통합도 추진한다. 지원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장려금도 지급하며 하청들을 달랬다.


고전무는 점차 프로젝트의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했다. 안 좋던 상황이 모두 뒤집혀 버렸다. 부실하청들이 정리되었다. 애매한 하청들이 구조조정을 거치며 우량해졌다. 우량한 하청들은 충성도가 올라갔다.


단가는 낮아지고 생산성과 품질이 향상된다. 프로젝트는 원하던 방향대로 충분한 결과를 이끌어 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등공신은 바로 고전무였다.


하청들과 상생하는 바람직한 시추에이션. 언플도 한번 하고.


프로젝트를 마치고 고전무는 제니에게 한 마디 한다.

"이것으로 지난번 빚은 모두 갚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라고 생각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럼요! 고전무님 아니었으면 어쩌나 했네요. 앞으로는 이러지 마시고 더욱 잘 도와주시면 됩니다!"

"흠.. 외부 미팅이 있어 이만 일 보러 가보겠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진지한 대화를 할 때가 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초대리와 현자. 초대리가 묻는다.

"저거 지금 고전무님이랑 부사장님 같은 편 먹은 거죠? 제니 부사장님 저렇게 안 봤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부사장님을 잘못 본 것 같아."

"그쵸? 결국 급하니까 힘 있는 고전무랑 손을 잡네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뒤통수 얼얼하네요."

"저건 둘이 손 잡은 게 아니라, 부사장님이 이긴 거야. 고전무마저도 품어버리는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딱 봐도 우리가 얼레벌레하고 버퍼링에 로딩 중 무쟈게 걸리니깐, 고전무한테 가서 사바사바 한 거 같구먼.."

"아니. 제니는 그냥 천성이 대인배야. 부사장님 자질은 진작 알아봤지만 유니콘에 이르고 있는지는 몰랐군. 우리가 더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아."


때마침 지나가던 제니. 현자와 마주친다.

"현실장님. 이번에 괜히 고생 많이 하셨죠? 처음부터 실장님 말대로 했으면 고전무님이 잘했을 텐데.. 제가 고집부려서 기조실이 초반에 너무 고생만 했네요."

"아닙니다. 제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근데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저런 자를 계속 놔둬도.."

"결이 다르다고 품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똑같을 거예요. 그리고 만약 위험해지면, 지금처럼 현실장님이 저 지켜주실 거잖아요? 안 그래요?"

"안 지켜드려도 될 거 같은데요? 저나 지켜주시죠."

"뭐예요? 또 삐딱선 탈 거예요? 저한테 삐졌어요?"


제니와 현자. 저들은 또 한바탕 티격태격이다. 숨막히게 조용한거 보단 시끌시끌한게 더 낫다. 그래야 사람 사는 곳 같잖아. 비록 고전무 사냥은 실패했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된 것은 맞는 것 같다.


"고전무 그냥 날려버리자구!" 아! 시끄러워요!


찌르려고 하면 차라리 품어버린다?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


그렇다. 대인배다.

대인배가 되면 적이 무섭지 않다.

적을 패는 대신 다 끌어안아버린다.


오피스 유니콘 대인배.

피아의 구분이 없다. 머리는 차가울지언정 마음은 따뜻하다. 대인배에게 마음의 바다는 더욱 넓어진다. 그래서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P.S. 나는 초맹. 한없이 넓은 마음의 '바다'를 가지고 있어. 그래서 아무리 돌을 던져도 다 '바다'줄 수 있지. 이따금 마음의 바다를 간척사업으로 메꾸는 게 문제일 뿐. 그러니까.. 나 간척사업할 때만 걸리지 마라!!


회사에서 대인배가 되고 싶을 때 읽어야 하는 책


화요일 연재
이전 17화회사의 위기를 되치기 하는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