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야! 군대 갔다 왔어? 짬도 안 되는 게 어딜!
회사가 군대도 아니고. 아냐. 군대 맞아!
오피서들은 암묵적으로 생각한다. 회사는 억압적이지 않다는 것. 합리적이라는 것. 군대 같지 않다는 것. 그렇기에 군대를 갔다 온 남자나 갔다 오지 않은 여자들, 모두 뒤섞여 오피스 게임을 즐기는 것 일터.. 아. 즐기는 것까지는 아니었나?
티타임 시간이다. 커피를 마시며 업무톡과 스몰톡이 함께 뒤섞인다.
"팀장님. 마케팅 예산도 없는데 이걸 다 어떻게 하래는 거예요?"
"까라면 까야지 뭐 어떡해? 군대 안 갔다 왔어?"
"장과장. 공수부대 나왔댔지? 이 건은 너가 애들 데리고 잘 추진해 봐."
"네? 공수부대 나온 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에요?"
"야! 왜 상관이 없어? 악으로 깡으로! 몰라?"
"아이. 팀장님. 여기가 회사지 군대도 아니고.."
"이대리 지금 모라 그랬어? 뭐? 여기 회사라고? 이것들이 다 빠져 가지구. 요새 회사 참 많이 좋아졌다? 이래서 군대처럼 돌려야 되는 거야! 내가 여자애들 데리고 일 안 하고 싶은 게 이래서야. 미필들은 깡이 없어!"
뭐? 저게 할 소린가? 순간 다들 기도 안 막힌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팀장인데.. 까라면 까야지.. 그치?
부사장 지시 건이라는 말에 더욱 예민해져 있는 김팀장. 팀원들의 진행상황을 30분 간격으로 챙긴다.
"이대리야. 저번 그거 어떻게 돼가?"
"네? 저번 그거가.. 어떤.."
"아이씨! 내가 물어볼게 광고 포스터 건 밖에 더 있어? 물어보면 바로바로 답 나와야지. 뭘 자꾸 뜸 들이고 속삭여? 너 지금 나랑 연애하냐?"
"아.. 네. 그게.. 포스터 시안이 아직.."
"포스터 손으로 그려서 오냐? 왜 아직이야?"
"저는 빨리 하려고 원래 하던 업체에 맡기려고 했는데요. 구대리가 공개입찰 붙인다고 해서.."
구대리보다 서열이 앞서는 이대리. 때마침 구대리가 월권을 행사한다고 불평을 쏟아낸다. 듣고 있던 김팀장. 실무진들 간의 불협화음을 조절하는 게 또한 리더의 역할. 그래. 팀장의 쓸모는 이럴 때 작용하는 법. 리더십 특강을 해주마!
"꾸러기랑 이대리 둘 다 이리 와 봐. 야 이대리. 연차로는 너가 선배일지 몰라도, 구대리는 나이도 너보다 많고 응? 여기 마케팅 짬이 몇 년인데.. 응? 이대리 너가 짬밥을 존중해 줘야지. 회사 짬 거저먹는 거 아니다. 구대리랑 잘 상의해서 하라구."
"네에??"
벙찌는 이대리를 뒤로 하고, 김팀장은 구대리와 밖으로 나간다. 구대리의 샤바샤바가 꽃을 피운다.
"팀장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그냥 해병대 돌격 정신으로다가 포스터 바로 딱 뽑아내겠습니다!"
"키햐! 그래! 이거지! 내가 이래서 미필 싫어하는 거야. 여자애들 말야. 어리바리 까고 땡깡이나 부리고.."
뭐? 나이? 짬밥? 내가 더 선임인데? 어리바리? 땡깡?
어리둥절한 이대리. 심판의 편파판정에 의문의 1패를 당한다. 징하게 밀려오는 현타를 차마 부여잡지 못하고, 결국 화장실 한켠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마침내 광고 건 보고 기한이 다가왔다. 쥐어짜서 어렵게 제작한 광고 포스터를 선 보인다.
"다 모였나요? 열외자 없죠? 그럼 시작해 주세요."
제니 부사장의 신호가 떨어지자, 김팀장이 제작한 광고 포스터를 꺼내 보이며 꿀 듬뿍 발라 설명한다.
"어려운 여건이었으나, 저희 팀원들 모두 애사심으로 똘똘 뭉쳐 끈끈한 전우애를 발휘해 가며 간신히 데드라인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하하하"
고전무가 김팀장 지원 사격에 나선다.
"광고가 아주 세련되게 잘 나온 것 같습니다. 김팀장이 고생 많았군 그래? 허허."
"아닙니다. 모두 부사장님과 전무님의 지휘 아래 필사적으로 고지를 향해 진격한 결과입니다."
이때, 날카로운 눈빛을 취하던 현자. 갑자기 송곳 같은 기습 질문을 던진다.
"광고 포스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게 빠진 것 같습니다. 김팀장님. 마케팅 전개할 채널 플랜이 안 보이는데, 그건 어디 있습니까?"
"아.. 채널 전략은 지금 저희 마케팅팀에서 준비하려고 하는데.. 상황이 좀 여의치가 않아서.."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초 오늘 모인 자리는 모든 계획을 종합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일정은 단순한 포스터 데드라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김팀장은 고전무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내고. 고전무는 임원 전용 스킬 은빛 실드를 펼친다.
"이 봐. 현실장. 거 너무 팍팍하게 구는 거 아닌가? 어떻게 비즈니스가 다 딱딱 맞아떨어지고, 전쟁터가 작전대로 척척 되나? 얘기 먼저 들어보자구."
"일정이나 여건이 무리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또 이런 식이면 플랜 없는 마케팅만 실행하겠다는 얘기로.."
"잠시만요! 기조실장님. 미안해요. 잠깐 끊을게요. 고전무님 말씀도 일리 있어요."
제니가 현자의 말을 도중에 끊어버린다. 현자는 순간 당황하지만 표 내지 않고 이내 진정한다. 잠시의 소란이 멈추고 적막함을 되찾는다.
"마케팅팀장님. 그럼 이제 광고 포스터만 있고 채널
전략이 없는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볼까요?"
고전무는 김팀장에게 눈짓을 주고, 김팀장은 잠시 좌우를 둘러본다. 이어 한숨을 내뱉고는 말을 시작한다. 한숨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솔직히 말해서, 일정이나 여건은 크게 무리 없습니다. 문제는 마케팅팀 맨파워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여직원들이 많아서인지 진도가 잘 안 나가요. 마인드셋도 별로고.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군인정신으로 하면 안 되는 것도 되고 하거든요. 남직원들은 다들 군필자니까 어려워도 밀어붙이는데, 여자들은 미필이고 해서 그런 게 없어요. 결국 회사도 군대랑 같거든요."
팀장들의 진정성 고유기 허심탄회를 시전한 김팀장.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제니. 고전무와 현자는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별로라서 군대 갔다 온 남자 팀원들이 보강되어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래요? 그런가요?"
제니의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었을까? 본심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온 김팀장.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자가 부사장 제니라는 걸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든다.
"아아.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여자라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이건 개인차도 좀 있겠구요. 부사장님 같은 분들로 채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그만.. 아 참. 부사장님은 첫 직장이 여기였습니까?"
"음.. 제 첫 직장은 완전 군대였죠. 까라면 까고,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무언가 생각할 틈 없이 굴러만 다녔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는 배운 게 참 많았습니다."
"아! 역시! 그거죠. 어쩐지 다 이유가 있었군요. 부사장님은 군대 같은 분위기에서 하드하게 단련해 오셔서인지, 직원들이 다들 철녀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아부가 먹힌 것이었을까? 하소연이 받아들여진 것이었을까? 이후 남은 시간 동안 미팅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마케팅팀은 포스터를 인계하기로 했다. 전략 전개는 기조실에서 가져가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인계된 것은 포스터만이 아니었다. 이대리도 함께였다. 내친김에 김팀장은 이대리 트레이드를 논의했다. 평소 그녀의 재능을 잘 알고 있던 현자가 먼저 기조실로 데려가기를 자청했다.
"남자들에게 군대란 참 특별한 의미가 있나 봐요. 그래서 군대 얘기는 평생 안 빠진다죠?"
"부사장님은 공감 안되실 수도 있겠지만, 군대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 갈아서 최고 효과를 내는 게 군대에요. 전무님 안 그래요? 하하하."
"야. 너 땐 할 만 했지. 라떼엔 말 안들으면 그냥 바로 빠따질하고 그랬다구. 김팀장. 충성을 다 해라. 허허."
현자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니는 생각에 잠긴 채 그저 말없이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군대와 회사는 똑같다? 어쩌면 그럴지도..
고전무와 김팀장이 서서 대화 중이다. 때마침 지나가던 HR 선과장을 붙잡는다.
"선과장. 오늘 부사장님 출근 안 하셨나? 안 보이네?"
"네. 전무님. 아마 이따 들어오실 거예요. 뭐 어디 훈련? 교육? 뭐 갔다 온다고 했었어요."
"아씨.. 뭔 소리야! 교육? 훈련? 예비군이야 뭐야! 말 같은 소릴 해야지. 똑바로 확인 안 해?!"
"오늘 저 찾으시는 분들이 많으신가 보네요?"
이 목소리는..? 제니다. 고전무와 김팀장이 돌아본다. 주변이 술렁인다. 뭐지?
가만. 복장이. 코스프레는 아닐 거고. 저건 군복인데.. 근데.. 저걸.. 왜.. 제니가..?
뭐야? 설마 예비군 훈련 갔다 온 거야? 그럼 제니가 군필이었다는..? 그래. 얼핏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 근데 이게 말이 돼?
생각하는 찰나. 제니가 코 앞까지 다가와 있다.
"왜요? 저한테 실망들 하셨어요? 미필 아니어서?"
"아. 부사장님. 이게 어떻게.."
"저기요들. 상관 봤으면 경례부터 해야죠. 군대를 좋아하고 계급과 짬을 존중한다는 귀관들은, 경례도 안 하고 멀뚱멀뚱 서 있습니까?"
얼떨결에 김팀장이 경례를 박아버린다.
"추.. 충성!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하하"
고전무는 당황을 입에 한 움큼 물고 있다.
"아. 아. 여군 장교셨군요. 회장님도 말씀이 없으셨는데.. 허허."
그대로 김팀장의 경례를 받아버린 제니는 이들을 좌우로 쳐다본다. 뭘 당연한 걸 놀라냐는 귀찮음이다.
"제가 저번에 얘기 안 했던가요? 첫 직장 군대였다고. 군을 추억하고 아끼는 귀관들의 마음 잘 알았습니다. 본 지휘관은 앞으로 그 뜻을 잘 헤아리겠습니다. 실망 시키지들 마세요. 그럼 전 환복하러 이만."
제니는 씨익 웃으며 그들을 지나쳤다. 지켜본 오피서들 모두 함박웃음이 터졌다. 고전무와 김팀장만 빼고.
그리고 많은 사내 뉴스와 가십거리를 제공해 줬다.
"대박. 제니 군필이래! 소름. 괜히 철녀 아니었음."
"가슴팍에 마크 봤어? 그거 공수훈련 뗘야 받는 거야."
"군수사업 추진 때문에 일부러 갔다는 얘기도 있음."
"만약 제니가 대표되면 이제 회사 군대 되는 거임?"
"김팀 이제 어쩌냐. 회사군필론 개 외쳐댔는데..ㅋㅋ"
"아들내미는 뒤로 면제받았단 얘기 있음. 저 집은 누나가 군대도 대신 가주냐?"
회사와 군대는 똑같을까? 똑같은 면이 많다.
쌍욕을 먼저 박느냐 그럴싸한 명분이 먼저 나가냐일 뿐 결국 똑같다. 손지검이 먼저 나가냐, 머리가 먼저 굴러가느냐일 뿐 결국 똑같다. 고지를 점령하느냐 돈을 벌어오느냐일 뿐 결국 똑같다.
군복 입고 일하냐 사복 입고 일하냐일 뿐 하는 건 똑같다. 휴가와 자유에 목을 매냐 여가와 자본에 목을 매냐일 뿐 억압된 현실은 똑같다.
전우와 사우 그들은 모두 서로를 믿고 지켜주는가? 글쎄다. 여전히 의문이다. 보이는 것만 다를 뿐 그 성격은 별반 다를 바 없다.
회사와 군대는 정말 똑같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회사도 까라면 그냥 까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을까?
같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회사는 무언가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그날의 반향은 누군가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과연 그 둘은 같을까?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일까?
회사가 군대같이 느껴질 때 읽기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