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왜 굳이 장애인을 뽑는 거지?

Part 3. 신체의 불편함보다 마음의 절망이 장애를 만드는 것

by 초맹


꿈을 꾸지 못한다면 그게 장애야!


전편 : 터닝포인트. 언제 올지 모르는 한 순간의 모먼트


계속되는 방위사업. 얼마 남지 않은 밀리터리 전시회.

가장 어려운 건 기술이었다. 일선 군부대들의 니즈는 대부분 비슷했다. 장비 운용의 편의성을 원했다. 결국 하드웨어의 기계적 우수성보다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중요해진다. 줄곧 10년 가까이 이 분야에서 고전해 왔더랬다.


이 무렵 희소식이 들린다. 연구소에서 초맹 AI 기술을 군 장비에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는 승전보였다. 본사로 보고 자료가 올라왔다. 그 결과물들은 어떤 것일까? 한번 볼까?


메이초 인텔리전스 소총. 사용자의 습관을 인식한다. 아군이 아니면 쏠 수 없도록 잠긴다. 적군의 행동 패턴을 인식해 예측 자동 발사도 가능하다.


초르니티 다연장 로켓. 연막을 먼저 쳐 적에게 혼동을 주고 로켓을 숨긴다. 오토 브라켓 기능으로 집중 1,000발 정밀 타격. 범위를 넓혀 광범위한 연사도 된다.


초매호크 전차. 초맹제철의 첨단 경량 합금으로 방어력과 전투 시간 향상. 자동 조준 발사 정확도 98% 달성. 360도 수시 연막으로 적 드론 차단 기능이 들어갔다. 시뮬레이션 결과 초매호크 한 대가 수준급 전차 T-1000 20대를 발라버리는 위력으로 나왔다.


초르살렘 요격 패키지. 투웨이 방식으로 1진은 하늘의 모든 포격과 미사일을 요격하여 격추한다. 2진은 초맹 AI가 계산한 원점을 모조리 타격하여 궤멸시켜 버린다. 유도탄도 궤적과 바람을 읽어내며 타격점을 계산한다. 적의 우회 공격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최첨단 초맹스에어 미사일. 전자파와 굉음으로 적 항공 전력과 방공을 교란하여 무력화시킨다. 타격 시까지 AI가 작동하며 자동 공격 기능을 가진다. 열탄두와 진공압력을 응용해 파괴 반경을 무려 300%까지 늘렸다.


(주)초맹 방위산업연구소. "어디 보자. 잘 나왔네?"


미쳤다. 대단한 성과다. 가공할만한 무기들의 탄생이다. 무엇보다 사용이 간편하다. 군 당국의 실험도 성공적이었다. AI 기술이 제대로 먹히지 않으면 하나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 낸 거지?


제니와 본사 관계자들이 연구소를 방문했다. 연구소장은 실물을 보여주며 성과를 소개한다. 초맹대 교수진과 초맹 AI 연구소의 합작품이었다. 작년에 경력 입사한 인공지능 개발자의 실력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저희 연구원 중 강책임이라고 있는데, 이번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개발 주역입니다. 오늘 나왔나 모르겠습니다. 원래 몸이 좀 불편해서 재택하다 이따금 출근하거든요. 장애인 전형으로 경력 입사했는데, 본사 HR 선과장이 직접 뽑아서 연구소로 보내줬습니다."


브리핑을 마친 연구소장은 제니에게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진들을 소개해 준다. 그 무리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도 있다. 연구소장이 휠체어 쪽을 가리킨다.

"아. 마침 오늘 출근했네요. 여기 이 친구가 이번 AI개발 주역 강책임입니다. 강책임. 이 분은 본사 부사장님이야. 인사드리지?"


"어?.. 소.. 소대장님?"

"…………………………"


응? 뭐지? 사람들은 강책임과 제니를 번갈아 쳐다본다.

제니의 입술이 떨리고 있다. 눈매가 촉촉하다. 잠시 후 표정이 환하게 고쳐 잡는다.


(주)초맹연구소 입사를 신고합니다!


"반갑다. 강일병. 여기까지 왔구나. 잘 왔다. 기특하다. 장하다!"

"충성! 일병 강책임. (주)초맹 연구소 입사를 신고합니다!"


휠체어에 앉은 강책임이 제니에게 힘차게 경례를 붙인다. 그들의 시간이 마치 군시절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모두 어리둥절하다. 심지어 제니가 누구에게 반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의 궁금함이 더해진다.


제니는 강책임에게 다가가, 휠체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니의 손이 강책임의 오른쪽 다리를 어루만졌다. 고개를 들어 강책임을 올려다본다.


"내 새끼.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미안하다.."


가까이서 제니의 얼굴을 본 탓일까? 강일병으로 돌아가서였을까? 강책임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만 미안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사고였습니다."

"사내자식이 울기는? 서러웠냐?"

"소대장님이 그동안 잘 돌봐 주셔서 컴퓨터 공부도 할 수 있었고, 인생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꼭 보답하겠다는 각오로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잘해 주었다. 오히려 내가 감사한데?"

"여기가 소대장님 계신 곳이니 제가 충성을 다해서 이 한 몸 불사를 겁니다."


강일병. 이제는 너가 나에게 의미가 되어주겠다는 것이냐? 제니의 얼굴이 환해진다. 다리를 만져주던 손은 강책임의 손을 꼭 붙잡는다.


"고맙다. 나는 언제까지나 너의 소대장일 것이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날 연구소 회식. 강책임과 제니와의 사연이 가장 화제였다. 평소 말이 없던 강책임. 불편한 다리로 인해 재택근무를 더 많이 해 왔던 그였다. 사람들의 이목과 호기심이 집중된다.


"저희 소대장님이셨어요. 저는 훈련 중 산에서 실족 사고를 당했어요. 보시다시피 이렇게 되었죠. 병원에서 진단받는 게 사형선고 같았습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게 어떤 일인지 아세요? 가장 창창한 나이에 인생 다 잃은 기분 아세요? 장애인이 되면 분명 세상은 날 버릴 거니까.. 모른 척할 거니까.."


"그래도 강책임님. 용케 컴퓨터 잘해서 이렇게 대기업도 왔잖아요. 잘 되신 거 아녜요?"

"원래 컴퓨터 쪽은 관심 없었어요. 음.. 제 사고로 다른 간부들이 모두 책임 피할 때, 소대장님은 그거 다 떠안았어요. 매번 병원에 면회 와서 앞으로 이쪽 전망이 좋다며, 책 사주고 컴퓨터 사주고 학비도 보태준 게 소대장님이었어요."


"그래? 강책임. 여어. 이제 보니 막 부사장님 빽이었고 그랬던 거 아냐?"

"네? 빽이요? 제가 빽을 써서 여기 왔다는 거예요?"

"아. 강책임. 몰 그렇게 놀래?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야. 하하"


"하아.. 사회 나와서 청년취업도 힘든데 저 같은 장애인은 어떻겠어요? 그냥 세상 사는 거 그 자체가 힘들더라구요. 월세도 밀리고 돈도 부족했죠. 그분은 뒤에서 집주인에게 월세도 내주고 생활비도 보태주셨습니다. 제가 장애라는 편견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제가 첫 취업할 때까지 계속 돌봐주셨습니다."


"그래도 강책임님 쉽지 않았을 텐데 잘해 오셨네요? 부사장님이 잘해주셨나 보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 길은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맞는 얘기예요. 여기서 포기하면 전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진짜 장애인이 될 테니까. 그 말 믿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믿은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소대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니까. 제니 소대장님은 그런 분이세요. 제게 의미가 되어주신 분이십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이 숙연해진다. 누군가는 들었던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누군가는 말없이 술잔을 홀짝인다. 연구소 사람들은 죄지은 것 마냥 고개를 숙인 채, 강책임의 말에 더 이상 어떤 애드립도 넣지 못한다.


한동안 절망감에 사로잡혀 방구석에서 나오지 못했다. 두려웠다.


그랬다. 장애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인생의 선택지가 확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세상은 편견에 가득 찼다. 안 그래도 기울어진 청년들의 운동장에 70도의 경사가 더 생겼다. 모서리를 붙잡고 있기도 버거웠다. 병신. 아무 생각 없이 말하던 병신이 된 기분이 이런 것일까?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 나에게..


애초에 제니는 걷지 못하는 그를 위해 컴퓨터 공부를 추천했다. 다리를 안 써도 되니까. 시공간에서 자유로우니까. 남들보다 불리하지 않으니까.


행동에 제약이 생기자 그는 더욱 컴퓨터에 몰두했다. 전에 없던 집중력이 생겨났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도 그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개발에 다리의 불편함은 더 이상 핑계가 되지 않았다.


강책임은 장애와 싸워가며 스타트업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실력을 쌓았다. 몇 번의 이직을 거쳐 (주)초맹연구소까지 온 것이었다. 강책임의 첫 취업 소식에 가장 기뻐한 건 제니였다. 쉽게 도와주려면 말 그대로 빽을 써주면 될 것이지만, 제니는 그가 스스로 설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수년의 과정에서 그는 깨닫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게 몇 개 안 남았다면, 그중에서 잘하면 되잖아. 어쩌면 나는 줄곧 스스로를 장애의 늪으로 더욱 밀어 넣고 있었는지도...'


컴퓨터가 그렇게 재밌냐? 밥 사 왔다. 먹고 해라.


"제가 만드는 소스 코드에는 어떤 장애도 없습니다!"


강책임도 부사장 제니의 존재를 이번에서야 알게 되었다. 어쨌든 강책임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었다. 전도유망한 인공지능 개발자였다.


"오랜만인데 뭐 먹고 싶냐? 오늘 소대장이 다 사 주마!"

"짜장면이요. 저 첫 휴가 나갈 때 소대장님이 사 준 짜장면이 제일 맛있었어요."

"겨우 짜장면이냐? 그래 가자. 탕수육도 같이 먹자."

"어? 이거 전동 휠체어라 안 미셔도 돼요. 하하."

"그냥 내가 밀고 싶어 그런다. 가만있어라."


강책임이 떠올린 한 그릇 짜장면은 어떤 의미였을까?

제니가 잡은 휠체어의 손잡이는 어떤 의미였을까?


분명한 건 그들에게 이미 장애라는 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더 이상 두렵지 않으니까..


P.S. 회사에 장애물이 많을 때 읽기 좋은 책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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