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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Mar 14. 2024

우린 팀장님이 퇴근하지 말래! 너네 회사는 어때?

회사를 수호하는 하수인 중간 보스


관리자가 내 편이라는 기대는 하지 마라!


회사는 많은 직원들의 관리가 필요하다. 관리자는 팀 조직의 원활한 관리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한다. 소속 팀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여 팀 성과를 극대화하는 중책을 맡는 자들이다. 가장 중요한 역량은 바로 리더십과 모티베이션이다. 그냥 조직관리론에 그렇게 나온다.


맞는 말이다. 리더십이란 즙을 쥐어짜내 숫자를 뽑아내는 능력이며, 모티베이션이란 가스라이팅 스킬이다.


오피스 세계관 최강자 경영진은 직원들의 업무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 일일이 감시하고 사냥을 시킬만한 능력치나 여력도 없다. 그래서 이를 위해 곳곳에 심복을 심어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중간 관리자다. 팀장, 파트장, 그룹장.. 등으로 불린다. 게임의 길마(길드 마스터) 역할을 하는 이들은 중간 관리자다.


현실에는 없고 사보에만 매번 나오는 설정 샷


중간 관리자는 보통 차장~부장 정도 된다. 대체로 레벨이 높다. 오피스 게임 맵에서 주로 만나게 되는, 바로 중간 보스의 역할이다. 쪼렙일 때는 한 대 맞으면 피를 토하고 쓰러지기 쉽다. 일폭탄 투척, 사냥 지시, 이랬다저랬다, 오타 찾기, 오늘까지, 내가 언제, 사자후 등 다양한 스킬셋을 기본 장착하고 있다. 또한 갈고닦은 필살기 하나씩은 반드시 가지고 있다. 필살기는 관리자들마다 다르다. 아무리 바보같이 보일지라도 이들은 쉽지 않은 상대들이다.


보통 게임 중에는 관리자에게 맞춰주고 일을 받아야 하는 특성상 이들을 중간 보스라고 여긴다. 중간 보스. 맞다. 잘 봤다. 수시로 맵을 들락날락 거린다.


관리자의 진짜 역할

이들의 주 업무는 부서 관리와 회의다. 실무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자꾸 옛날 거 얘기한다. 바빠는 보이는데 뭘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디 가서 적당히 노가리나 풀고 온다. 일하기 편해 보인다. 나도 할 수 있겠다. 이런 뒷담을 실무자들은 많이 한다. 이건 우리가 실무만을 일이라 생각하는데서 나오는 발상이다.


회사는 의외로 관리에 많은 비용을 쏟는다. 그렇기에 실무자보다 관리자의 월급이 훨씬 높은 것이다.


관리자가 정말 업무 체크, 회의, 결재 이런 것들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모르는 소리다. 관리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50%도 말하지 않는다. 비밀이 많다는 얘기다. 관리자들의 역할은 단순히 일을 시키고 관리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숨겨진 역할은 회사를 지키는 것. 이들이 회사를 지키는 길은 부서의 관리다. 회사의 중간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들이 중간 관리자요. 중간 보스인 것이다. 단순히 일을 주고 고과를 매기기 때문에 중간 보스가 아니다.


그 건 당장 진행시켜! 이번 일 잘 되면 알지?


관리자는 업무를 명목으로 직원들 간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팀원들 간 경쟁을 붙이는 것이다. 심복이 될 만한 직원들은 회유한다. 팀장이 누구를 가장 먼저 찾는지, 어디 다닐 때 누구를 데리고 다니는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팀장은 그들에게 여러 정보를 듣고 팀원들의 옥석을 가린다. 뒤로는 은밀히 숙청에 나서기도 한다. 이들은 회사가 원할 때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 직원들을 짜르거나 밀어낼 방법을 고안한다는 뜻이다.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그들. 아군일까 적일까 헷갈린다. 이들이 오른팔과 왼팔을 두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혼자서 직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앉아서 직원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지만, 정말 신경 쓰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자신이 지켜야 하는 보스다. 그리고 그에게 은밀히 받은 지시들이다.


어떻게 하면 저 옆 팀을 박살내고 망신 줄 수 있을지.. 우리팀 인원 3명을 줄이라는데 누구를 날려버릴지.. 저 말도 안되는 일을 하라는데 어떤 구실을 세울지.. 무슨 핑계를 박을지.. 이런 류의 일들이다. 그래서 비밀이 많아지는 것이다.


관리자의 기준과 중요한 일

사람마다 스타일은 다를 수 있지만, 관리자는 크게 두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회사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과 자신의 안위이다.


이들이 업무를 배정하거나 부서에서 일을 벌릴 때, 항상 대는 명분은 회사를 위함이다. 아마 실무자 선에는 우리의 성장을 독려하고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팀장이 누구와 다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다 끼워 맞춘 거다. 실무자는 자신의 일 밖에 모르지만, 관리자는 팀 내에서 일의 경중을 따진다. 누군가는 하찮은 일도 해야 된다. 누군가는 똥 치우는 뒤처리 같은 일도 해야 된다.


이를 관리자는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이 하찮다고 하는데 반길 직원은 없다. 뒤처리 좀 하라는데 나설 직원도 없다. 그래서 적당히 끼워 맞춰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명분을 만들어 내는 게 관리자의 주 업무 중 하나다.


관리자와 그 심복들은 알고 있다. 이는 심복들이 하는 일을 보면 된다. 아마도 성과가 날만한 일과 꿀빠는 일을 도맡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관리자의 입지가 탄탄해진다. 심복들의 충성도가 오른다.


안 중요한 일을 살펴보는 방법은 부서 주간 보고서를 보면 된다. 아예 언급조차 안 되거나, 끄트머리에 한 줄 정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런 사냥질은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나의 레벨 올리는데도 도움이 안 될뿐더러, 잘하든 대충 하든 관심 없기 때문이다.


가끔 그런 일들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덥잖은 일인데 팀장님이 너무 챙기고 있다. 그것은 팀장이 필요해서 챙기는 것이거나, 그보다 윗선에서 챙기는 일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중요한 일이란 그렇게 결정된다. 이성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결정된다. 관리자의 안위가 달려있거나, 임원이 신경 쓰는 일이 곧 중요한 일이 되는 것이다. 매뉴얼에서는 일의 본질이 중요하지만, 오피스 게임에서 본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제품을 만드는 업무의 본질은 양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획, 생산, 품질, 설비 등 여러 부서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어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가끔 신제품 내고 감격에 벅차 누가 시키지고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회식하며 서로 격려한다.) 그러나 윗선에서 품질보다 홍보에만 치중한다면, 품질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곧 품질 관리나 기획 업무는 천대받게 되고, 홍보마케팅이 대접을 받기도 한다.


이거 오늘까지 못하면 퇴근할 생각들 하지 마!


되도 않은 일에 목숨 걸고, 별 일 아닌데 관리자들이 사자후를 시전하는 모습들. 한 번쯤 봤을 거다.


우리의 상식과 동떨어진 일이지만, 그들의 안위에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말인지 가서 물어볼 필요 없다.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


관리자가 중간에 있는 이유와 괴물이 되는 과정

관리자. 그들도 처음에는 이 게임에 입문해 열심히 퀘스트를 깨며 나름의 숙련된 노하우로 레벨을 올리던 자들이다. 어느덧 성과들을 인정받는다. 회사는  리더라는 임무를 부여해 준다.


'아! 드디어 인정 받았구나!' 그들은 감사한다. 충성한다. 어느 순간 인사를 먼저 하기보다, 먼저 받고 다니게 된다. 일단 몸이 편해진다. 회사가 원하는대로 직원들을 성장으로 안내하고 팀 성과를 올리겠다는 다짐을 한다.


초임 관리자의 테스트는 그렇게 시작된다. 처음에는 무엇이든 다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점차 시간이 갈수록 실무에서 멀어져 간다. 이러다 나중에 제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두려워진다. 그러나 다들 그렇게 하니까.. '관리를 더 잘하면 되겠지.' 생각한다.


윗선에선 이해 안 되는 이상한 일들을 지시한다.

능력도 안 되는 거래처에 자꾸 큰 오더 주는 일.

옆 부서와 협업하면 쉬운데 단독으로 하라는 일.

5만원짜리 지폐 한 장 서울 보내는데, 굳이 비행기로 홍콩 찍고 배로 일본 찍은 다음, 다시 부산항으로 밀어넣고는 그 다음 퀵으로 서울 쏘게 하는.. 이런 부류의 일들이다.


“회사가 이렇게 일처리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저는 리더입니다. 팀장으로서 저희 팀원들을 뻔히 보이는 고생길로 내몰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험난한 보스전을 승리로 이끈다.


팀원들의 고충을 먼저 생각한다. 팀의 미래를 책임지는 마음으로, 총대를 짊어지고 온몸으로 막아낸다. 스크레치 진하게 남긴채. 팀원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다. 아니 괜찮다. 이게 리더의 숙명 아니겠는가? 그래. 지금처럼만 모두가 웃으며 일했으면 좋겠다. 무거운 짐은 내가 안고 갈거야. 괜찮아. 난 리더니까. 그게 어른이야!


근데 점점 주변 다른 팀들의 관리자가 바뀌는 게 보인다. 다시 돌아본다. ’저 팀장님들 실력있고 좋은 사람들인데.. 뭐지?‘, ‘아.. 주위에 소신파 관리자는 저렇게 날라가는구나..’ 시간이 지나며 깨닫는다.


그렇다. 사냥개는 사냥을 해야지 주인을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게 이 게임의 중간 보스룰이다.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러면 안 되겠구나..' 이미 실무에서도 멀어졌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여기까지 올라오던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가족들도 아른거린다. '그래..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조금만 타협하고, 조금만 올라가면.. 보인다. 임원의 자리! 성공의 아이콘! 머지않았다. 이 세계관에서 그토록 바라던 랭커가 될 수 있는 기회의 기로에 선 이들. 바로 중간 관리자이다.


어쩌면 난 악마와 거래를 한 것은 아닐까?


리더를 내려놓을지 양심을 내려놓을지의 기로에서 선택한다. 양심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푸르게 빛나던 눈빛이 빨갛게 변한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그래. 이건 다 회사를 위해서야!'


양심을 내려놓은 관리자의 생각은 딱 두 가지다. 나의 안위와 회사의 편에 서는 것! 그렇게 악마와 손을 잡는다. 그 충성 맹세의 대가로 관리자 수당은 기본, 예산도 늘어난다. 임원들의 여러 권력을 비공식적으로 위임받는다. 달다. 맛있다. 이때부터는 누가 봐도 이상한 일들이 정상으로 보인다. 보좌하는 임원을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온갖 중상모략을 짜내고 의전에 철저해진다. 비밀은 더욱 많아져만 간다. 그렇게 괴물이 되어 간다. 사람 행세를 해보지만 악마와 손을 잡은 관리자는 이미 괴물이다.


그들은 알지 못한다. 관리자는 괴물이 되는 순간 이미 목줄이 잡혀 있다는 것을.. 악마와 거래한 조건은 수당과 권력이 아니다. 관리자의 목줄이다. 그들이 꼰대가 되어가는 이유는, 목줄이 잡혀 있어 돌아가기에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착각하지 말자. 관리자는 회사의 일부를 관리하는 사람이지 나의 성장판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실적은 전적으로 부서원들이 일한 성과에서 나온다. 철저히 자신의 실적을 위해 당신의 성장과 기회를 논하고 갖은 회유와 협박을 한다. 그것을 리더십과 모티베이션이라고, 경영학이라는 애매모호한 학문까지 만들어 고상하게 부르는 것 뿐이다.


앞에서 웃고 토닥여 준다고 우리 편이라 생각하나?

이 게임은 우리 길드 마스터가 곧 중간 보스인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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