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차단하는 오피스 게임의 설정
자아를 잊게 만드는 음모
여유가 없다. 쳐내기도 바쁘다.
회사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생각하고 있으면 노는 줄 아니깐. 매번 말로는 충분히 생각하고 일하라 한다. 다만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나에 대한 통찰이나 성찰에 대한 일말의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든다.
일거리를 던지고 또 던진다. 텁! 텁! 텁! 받다가 뭐부터 하지? 할 때, 또 회심의 한 방을 날린다. 어? 어? 버퍼링이 걸린다. 꼬인 일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고뇌와 번민에 휩싸일 때 즈음, 음.. 회의하자고 부른다. 뭐 때매 하는지는 꼭 회의실에 들어가서야 얘기해 준다.
이런저런 이슈들을 더 꺼내서 안 그래도 복잡한 나에게 잡스러움을 한 스푼 더 얹어주는 셈이다. 파스타 면에 크림을 비비고 접시에 나눌 차례. 갑자기 누군가 와서는 크림 위에 “주문하신 짜장이요!” 외치며, 그 위에 시꺼먼 짜장 한 그릇 훅 부어버리고 "자 한번 해봐! 헤헤." 마치 이런 느낌이랄까?
"아.. 나 이거 주문 안 했는데.." 이런 거! 몬 느낌인지 알지?
처리해야 하는 일이 치워야 되는 똥처럼 보이고, 신성한 노동의 가치가 똥 묻은 휴지처럼 보이고 있을 때쯤.. 다시 심기일전! 아껴둔 버프를 켜고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듯한 기세로 퀘스트를 깨고 있으면.. 때맞춰 새로운 이벤트 퀘스트는 어김없이 추가된다. 대기하던 빌런들이 한 둘씩 찾아와 괴롭히고, 이 단계에서 처음 그 포텐셜 버프의 강렬함과 웅장했던 기세는 한 풀 꺾이게 된다.
빌런들은 여러 스킬셋을 갖춰 찾아온다.
"불이 났어요! 불 좀 꺼주세요!"
별 것도 아닌데 큰일 난 것 같은 양치기들. 매번 똑같은 거 묻고 또 묻는 똑무새. 몇 번을 얘기해 줘도 못 알아먹는 모르쇠들. 빌런들은 차고 넘친다. 결국 할 일은 다 못 끝난다. 애초에 끝날 수 없도록 디폴트 설정되어 있다. 게임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그럼에도 불사의 정신으로 모든 퀘스트를 다 깨부수고 정점을 찍으려고 하면! 그 순간! 맵에 보스가 등장한다. 거대한 똥을 꾸역꾸역 싸고는 "치우라~!" 한 마디하고 잽싸게 사라진다. '아.. 진짜..' 보통 그쯤 되면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꺾이지 않는 마음을 먹는 순간 제대로 낚인다는 것이다. 어차피 치워야 될 일은 줄어들지 않는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일 먼저 하면 돈은 그 다음! 이른바 '근로계약서'라 불리는 '노비 문서'의 효과와, 회사 사람 다 그러고 있으니 '이게 맞는갑다..' 가 서로 조화를 부려 기묘하게 어우러진다. 결국 계속 자동 삽질만 하게 된다. 어차피 그런 것까지 생각할 틈도 없고.. 그냥 맵에서 하루하루 설정된 시간동안 자동사냥을 돌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원래 이 게임의 설정은 그렇다.
처음부터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 주위 사람들을 그렇게 하게 함으로써, 자아에 눈을 못 뜨게 하는 아주 기가 막힌 방법이다.
매일 챗바퀴는 계속 도는데 나아지는 게 아무것도 없는 오피스 게임의 설정인 것이다. 원래 이 게임 설정은 그렇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