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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Jan 22. 2024

회사에서 절대 생각을 할 수 없는 이유

생각을 차단하는 오피스 게임의 설정


자아를 잊게 만드는 음모


여유가 없다. 쳐내기도 바쁘다.

회사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생각하고 있으면 노는 줄 아니깐. 매번 말로는 충분히 생각하고 일하라 한다. 다만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나에 대한 통찰이나 성찰에 대한 일말의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든다.


할 건 많지만 뭘 자꾸 가져와서 시킨다.


일거리를 던지고 또 던진다. 텁! 텁! 텁! 받다가 뭐부터 하지? 할 때, 또 회심의 한 방을 날린다. 어? 어? 버퍼링이 걸린다. 꼬인 일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고뇌와 번민에 휩싸일 때 즈음, 음.. 회의하자고 부른다. 뭐 때매 하는지는 꼭 회의실에 들어가서야 얘기해 준다.


이런저런 이슈들을 더 꺼내서 안 그래도 복잡한 나에게 잡스러움을 한 스푼 더 얹어주는 셈이다. 파스타 면에 크림을 비비고 접시에 나눌 차례. 갑자기 누군가 와서는 크림 위에 “주문하신 짜장이요!” 외치며, 그 위에 시꺼먼 짜장 한 그릇 훅 부어버리고 "자 한번 해봐! 헤헤." 마치 이런 느낌이랄까? 

"아.. 나 이거 주문 안 했는데.." 이런 거! 몬 느낌인지 알지?


이 똥을 다 언제 치운다?


처리해야 하는 일이 치워야 되는 똥처럼 보이고, 신성한 노동의 가치가 똥 묻은 휴지처럼 보이고 있을 때쯤.. 다시 심기일전! 아껴둔 버프를 켜고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듯한 기세로 퀘스트를 깨고 있으면.. 때맞춰 새로운 이벤트 퀘스트는 어김없이 추가된다. 대기하던 빌런들이 한 둘씩 찾아와 괴롭히고, 이 단계에서 처음 그 포텐셜 버프의 강렬함과 웅장했던 기세는 한 풀 꺾이게 된다.


빌런들은 여러 스킬셋을 갖춰 찾아온다.

"불이 났어요! 불 좀 꺼주세요!"

별 것도 아닌데 큰일 난 것 같은 양치기들. 매번 똑같은 거 묻고 또 묻는 똑무새. 몇 번을 얘기해 줘도 못 알아먹는 모르쇠들. 빌런들은 차고 넘친다. 결국 할 일은 다 못 끝난다. 애초에 끝날 수 없도록 디폴트 설정되어 있다. 게임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또.. 또.. 뭘 던지고 가려고??


그럼에도 불사의 정신으로 모든 퀘스트를 다 깨부수고 정점을 찍으려고 하면! 그 순간! 맵에 보스가 등장한다. 거대한 똥을 꾸역꾸역 싸고는 "치우라~!" 한 마디하고 잽싸게 사라진다. '아.. 진짜..' 보통 그쯤 되면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꺾이지 않는 마음을 먹는 순간 제대로 낚인다는 것이다. 어차피 치워야 될 일은 줄어들지 않는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일 먼저 하면 돈은 그 다음! 이른바 '근로계약서'라 불리는 '노비 문서'의 효과와, 회사 사람 다 그러고 있으니 '이게 맞는갑다..' 가 서로 조화를 부려 기묘하게 어우러진다. 결국 계속 자동 삽질만 하게 된다. 어차피 그런 것까지 생각할 틈도 없고.. 그냥 맵에서 하루하루 설정된 시간동안 자동사냥을 돌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만! 오지 마! 오지 말라구!


원래 이 게임의 설정은 그렇다.


처음부터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 주위 사람들을 그렇게 하게 함으로써, 자아에 눈을 못 뜨게 하는 아주 기가 막힌 방법이다.


매일 챗바퀴는 계속 도는데 나아지는 게 아무것도 없는 오피스 게임의 설정인 것이다. 원래 이 게임 설정은 그렇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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