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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Mar 25. 2024

이래서 회사에 미래가 안 보이는 거야!

사장님! 제발 쟤네 먼저 짤라 버리세요!


게임의 모든 판은 우리가 짠다.


오피스 게임 최고의 엘리트. 핵심 브레인. 차가운 금테 안경 너머 보이는 가느다란 눈매.


미래전략실. '미래'나 '전략'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다 판 짜고 작당모의하는 곳이라 보면 된다. 여기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모아놓는다. 브레인 집단이다. 토종보다 해외파들이 많다.


이들은 회사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한다. 미래를 전망하고 사업성 있는 아이템을 발굴한다. 회사에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도 잘 모른다. 보일 때보다 안 보일 때가 더 많다.


날카롭다. 예리하다. 그들의 시선이 서서히 움직인다. 세계관 최고의 지능캐 등장! 회사의 미래 성장 전략을 발표한다. 고요하다. 적막이 흐른다. 공기마저 숨을 멈춘다. 적벽에서 마주친 풍전등화 아래 제갈공명의 계책을 기다리는 소인배들의 마음. 집중하자! 드디어 신의 한 수가 나오나 보다!


오피스 게임 최고의 지능캐는 미래전략실


"회사의 뉴비전 초맹웨이 아래, 커스터머와 스테이크홀더의 니즈, 마켓 트렌드를 반영하여, 우리의 비즈니스를 보다 더 이노베이티브 하게 밸류업하고, 글로벌 시장 익스펜션을 통해 미래 성장의 그로스 엔진으로 메이킹하여 내셔널과 글로벌의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스트렐러지를 수립하였습니다! 이로서 그동안 우리가 못했던 No, 궁금해하던 How는 NoHow가 되어, 미래의 Wow가 될 것입니다."


".........................………………...!!"

노비들은 좌우를 두리번 거린다. 무슨 소리지? 방금 한영키가 마구 뒤섞인 것 같은데.. 일단 알아듣기 어렵다. 해석기를 돌리는데 버퍼링이 좀 생긴다. 번역이 끝난 노비들부터 서서히 장내가 술렁거린다.


"그래서 그 전략이 뭐래요?"

"초맹웨이는 또 모야? 우리가 그런 게 있었어?"

"노하우 스펠이 저거였나? 가물가물하네.."

"글로벌 확대 저건 작년에도 나왔던 거잖아요."

"뭔가 붕어 빠진 붕어빵 같은 느낌인데.."

"사명이나 바꾸라 그래! 초맹이 뭐야? CM 이렇게!"


이럴 때는 노비들 중 현자 한 명이 통역을 해 준다.

"전략 없으니 원래 하던 거 잘하라는 얘기입니다."  


"뭐야! 결국 그냥 별생각 없다는 거잖아!"

"전략 없다고 하면 되지. 뭐 이리 어렵게 말해?"

"미래전략 저것들 다 짤라버려야 되는 거 아냐?"

"사장님이랑 임원들은 왜 다 가만있는 거래?"


걸음걸이는 당당하고 후광효과가 생긴다.


미래전략. 이들의 화법은 항상 동서양이 잘 비벼져 있다. 레시피 황금비율은 동양 3, 서양 7이다.


고상하다. 세련되다. 신지식인 같다. 가히 언어의 추월차선이다. 아무것도 없는 빈껍데기를 윗분들 좋아하는 단어로 꽉꽉 채워 넣었다. 현란하게 야부리 터는 것도 참으로 기묘한 재주다. 놀랍다. 현존하는 급여체 대부분 이들의 언어를 동경한 추종자들에게서 나온 하위호환이라 보면 된다.


이들은 현업의 실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실 잘 모른다. 현업 경험이 부족하고, 해외 컨설팅펌 출신들이 많다. 큰 판만 본다. 사업이 돌아가는 것도 자료만 보고 공부한다. 당연히 늘 현업과는 괴리가 생기는 미래전략실. 그들을 향한 현업 사람들의 신념은 굳어진다. '바보 멍충이들!'


근데 그게 다일까? 정말 바보들일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판이다. 전략의 방향을 잡는 것은 경영진이다. 물론 미래전략실은 새로운 아이템을 찾고 가능성을 점친다. 다만 회사의 성장 전략이나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은 이들의 표면적 역할일 뿐이다.


이상한 사람들과 딜도 척척 성사시킨다. 설마 회사매각?


고급 브레인 CPU 100%를 할당하는 일은 따로 있다. 사업재편, 구조조정, 인수합병, 지분투자, 주가부양, 경영승계, 지배구조 이런데서 비로소 책사의 면모가 나온다. 하루 종일 광물 캐고 사냥 도는 노비들의 일상과는 무관한 영역이다. 역시 비밀이 많다. 만나고 다니는 건 투자자문, 법무법인 이런 계열이다. 타이밍에도 민감하고 고려해야 할 것도 한 두 개가 아니다.


꿈과 행복이 넘치는 (주)초맹사를 예를 들어보자.

회장님이 꽂은 줄리어드 부사장님이 다음 달에 온다. 그분은 에너지 사업에 관심이 많다. 주주 지분을 어떻게 갈라야 할까? 사업재편도 해야 된다. 에너지를 한다면 어느 규모일까? 법인을 새로 설립할까? 해외투자를 유치할까? 계열사 출자비는 어디서 얼마나 땡길까? 상장은 언제 하는게 주가 띄우기 좋을까?


이런 건들이 생기면 CPU는 계속 100%를 친다. 머리가 빨개진다. 스팀이 올라온다. 당연히 단시간에 정해지기 힘들다. 변수가 너무 많다. 직원들에게 발표하는 미래 성장 전략이 무늬 밖에 없고 제때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의 가장 민감한 최우선 순위는 경영권과 승계다. 계열사들의 지배구조를 만들고, 계속 지분 체크를 한다. 원리는 사다리 타기 하듯 줄 세워서 지분율과 주식을 계산해 적당히 나누는 것이다. 어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더라도 실주인은 무조건 오너로 나오게 설계하면 된다. 계열사 한 두 개 흔들려도 최종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주주 구성도 중요하다. 배신자가 생기면 주인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 플랜을 수립하며 눈에 안 띄게 승계 작업도 진행한다. 적자 나는 계열사에서 자회사를 차린다. 갑자기 로스앤젤레스에 계열사가 생긴다.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회사에 큰 거래대금이 왔다갔다 한다. 사업성도 없는데 투자가 이어진다. 그렇다. 페이퍼 컴퍼니다. 페이퍼 컴퍼니는 해외에 차려야 추적을 따돌릴 수 있다. 이렇게 몇 번 접었다 차렸다를 반복한다.


페이퍼 컴퍼니를 차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사업을 위해 형식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의무적으로 독립 법인을 차려야 사업을 할 수 있다거나.. 그리고 돈세탁을 위해서다. 듣보잡 별 사업성도 없는 이상한 회사를 고가에 인수한다. 몇 년 지나 팔거나 폐업한다. 대부분 돈세탁 루트라고 보면 된다. 승계에 있어 증여세 너무 쎄다. 승계지분 취득은 투명하면 딱 걸린다. 합법적으로 세금 덜 내기 위해 계속 복잡하게 굴리는 것이다.


늘 수고가 많아. 자회사 매각 건 노비들 묶어서 비싸게 팔자구.


투자유치가 잘 안 되거나 실적 안 나오는 계열사 매각도 단행한다. 사업성 있어 보이게 철저히 포장한다. 최대한 비싸게 팔아야 한다.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내부가 술렁이면 안 된다.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미래 전략에 의한 사업재편으로 진실을 가린다. 알리는 타이밍은 계약서에 도장 찍고 나서다.


이유는 오직 하나다. 오피스 게임은 섭종이 알려지는 순간, 노비들의 대반란과 아수라장이 연출된다. 그러면 가격이 폭락한다. 매각이 안 된다. 언론이 달라붙는다. 주가에도 악영향이다. 돈을 못 번다. 노비들이 죽더라도 주인이 득을 보면 된다. 엘리트는 차갑다.


미래전략실은 최고의 요직으로 소위 말해 잘 나간다. 같은 직급이어도 연봉이 다르다. 뒤에서 남모르는 고충(?)을 수행하기에 보통 임원으로 영전한다.


미래전략실은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주고 우리를 이끌어주는 곳이 아니다. 이들의 역할은 주인의 경영권을 지키고 재산을 불려주는 것이다.


그들이 그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 여러분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아마 시즌2에도 없을 것이다.


브레인.. 맞다.

자신의 미래 성장은 전략적으로 잘 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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