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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맹 Sep 02. 2024

회사가 좋다고 주입하는 그 시기

Part 2. 전지적 회사 시점


너의 미래를 쥐고 있는 건 바로 우리야!


전편 : 회사가 좋다고 생각하는 그 시기


채용.. 쓸데없는 지원자들 다 걸러내고 스펙좋고 똘똘한 애들로 다 뽑았다. 지원자가 넘쳐나니 사람 뽑기 참 쉽다. 거르는 게 더 노가다일 뿐..


그간 잘라버린 사람들 자리는 신입사원으로 메꿔버릴 생각에 계산기를 두들겨본다. '인건비가 이렇게나 많이 굳는구나..' 옳거니! 무릎을 탁 친다.


신입사원들의 첫 출근. 일단 모아놓고 회사 소개를 해 준다. 회장님이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만들려고 창업했다는 전래동화부터 시작한다. 회장님의 존재란, 곰이 마늘 대차게 뜯어먹다 사람 돼서 고조선 세운 뭐 그런 존재인 것이다. 한 마디로 킹갓 레전드다!


'어라? 뭐야.. 얘네?'

신입사원들 지금 감동먹은 표정이다. '그래 이거지!'이어서 회사의 비전, 연봉, 복지, 제도, 사내 문화, 동호회.. 회사 안내와 교육을 한다. 사실 제대로 돌아가는 건 하나도 없지만 좋은 회사로 보여야 한다.


차가운 돈 냄새 풀풀 나는 상업성은 철저히 배제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최대한 아름답게 주입시켜놔야 한다. 귀 쫑긋 세우고 표정도 밝은 걸 보면 일단 먹히는 것 같다.


신입사원 교육. 반응들을 보니 세뇌가 제법 잘 먹히는 듯..


신입사원이 부서에 배치받고 왔다. 긴장과 설렘이 공존하는 저 표정.. 나도 저랬을까? 저 자리는 벌써 1년 동안 3명이나 못 버티고 나간 자리다. 근데 신입사원으로 채워주다니, 과연 누구 머리에서 나온 쓰레기 아이디어일까? 대단하다!


모르겠다. 카드 돌려막기도 아니고. 이제 돌려막는 것도 힘들다. 누구든 일이나 덜어가서 나 좀 편하게 해 주면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몰아치면 또 못 버틸테니 적당히 잘해줘야겠다.


곧 퇴사하는 사람과는 접촉 못하게 막아야 된다. 퇴사를 앞둔 자는 물불 안 가리는 무적 버프 상태! 안 좋은 얘기만 할게 뻔하다. 혹시라도 신입이 딴생각해서 야반도주라도 해 버리면 나만 피곤해진다.


처음 왔으니까 노트북, 문구, 수첩, 달력 이런 보급품부터 챙겨준다. 회사 시스템 접속 계정도 만들어 준다. 앞으로 이게 너의 오피스 게임 접속 계정이다.


신입사원 배정. 퇴사자와는 못 마주치게 해야 한다.


어쩌다 한번 모두 모인 점심 식사. 팀장님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말이 많다. 일 얘기만 하던 사람이 남들 안부를 다 묻고.. 아마도 신입사원에게 이미지 메이킹 시전중인가 보다.


신입도 썰 좀 풀기 시작한다. 험난했던 입사 과정, 떨어진 줄 알았다는 이야기, 열심히 하겠다는 말. 사실 관심없다. 많이 들었다. 이건 신입들 공통 썰이냐? 뭐 오늘은 신입 출근 첫 날이니 맞춰 줘야지. 이 헬게이트에 들어온 이상 앞으로가 문제겠지만 말이다.


여기 다 좋은 사람들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신입사원인 만큼 사고도 좀 치면서 잘 배워나가라는 팀장님의 멘트. 사고 치면 지가 제일 먼저 사자후 날릴 거면서. 저렇게 얘기해도 되는 건가 싶다.


신입이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에 얽힌 사연을 알까? 몇 달 동안 비어있던 자리였던가? 벌써 3명 나가고 4명째다. 근데 팀장님은 왜 나한테 신입사원 업무를 가르치라고 하는 거지? '벌써 4명째라구!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돈 더 줄 것도 아니면서..'


신입이라 당장 시킬 수 있는 것도 없다. 일단 놀게 해서는 안 된다. 구석에 있는 업무 매뉴얼 하나 던져주자. 첫날이니 오늘은 이거 보고 있으라고 한다. 팀장님이 허허 웃으며 다가온다.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차근차근 알려주라고 한다. '장난하나? 그럼 제 일은 누가 해주는데?'


신입사원.. 귀찮다. 대충 매뉴얼이나 던져주자!


바쁜 업무를 처리하며 신입사원 쪽을 힐끗 본다. 대충 쓱 보면 될 매뉴얼 뭐 저리도 자세히 보는지.. '가만? 근데 저 매뉴얼 언제 거였더라? 한 3년 됐나? 저거 하나도 안 맞을텐데.. 아 이거 어쩌지?' 모르겠다. 일단 일이나 쳐내자. 꺼야 될 불이 천지다. 지금 남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알아서 잘 보겠지..


아는 사람도 없고 빽도 없다? 너의 캐릭터는 다 파악됐다 신입!


신입사원은 어떤 애인지 티타임 탐색전 들어가 봐야겠다. 이미지 좋게 메이킹하면, 선임들이 신입사원 챙겨준다고 하는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다.


간단한 호구조사부터 이것저것 많이 물어본다. 사는 곳, 취미, SNS는 하는지, 술은 좀 하는지, 여기 아는 사람은 있는지.. 그래. 어디 계속 읊어 보거라. 그래. 그래. 읊는 김에 MBTI도 한번 아뢰어 보거라!


신입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다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정보는 불균형일 때 권력이 되는 법이다.

이제 대충 파악됐다. 막 굴려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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