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의 질문
"이제라도 피아노 시작하는 거 괜찮을까요?"
아이들의 손을 놓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시간을 찾게 된 어느 중년 여성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손가락에 자리 잡은 주름은 그녀가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보여줬지만, 그 물음 속에는 오래된 꿈을 다시 꺼내 본 듯한 설렘이 담겨 있었다. 피아노를 배우기엔 늦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간절함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한다.
"지금도 충분히 배울 수 있어요."
배움에 시기가 정해져 있을까?
피아노는 누가 배워야 하는 걸까?
대답은 간단하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능하다. 사실 무언가를 배우는 데 나이는 큰 장애물이 아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상황을 움직이고, 시작할 이유를 만들어 준다. 간절하다면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다.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말이다.
_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모지스 할머니는 76세에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80세에 개인전을 열고, 92세에 자서전까지 출간하며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 그녀는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고, 그것을 매일 즐겼다. 삶이 화려하지 않아도 소박한 기쁨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모지스 할머니의 삶을 돌아보며 깨닫는다. 나이에 상관없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마치 내가 글을 쓰며 느끼는 기쁨처럼, 피아노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 줄 수 있다. 사람들은 "이미 늦었다"라고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시작하는 마음이다.
작년, 아마추어 콩쿠르 심사를 맡았던 적이 있다. 무대 위에 선 분들의 연주는 감동적이었다. 특히 70세의 한 참가자가 손을 떨며 연주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의 연주는 테크닉적으로 완벽하지 않았지만, 매일의 연습과 삶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 소리는 단순한 음이 아니라, 시간을 관통하는 진심이었다. 완벽함이 주는 감동과는 다른 종류의 울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더 느낀다. 진정한 감동은 연주의 흠결을 넘어 그 너머에 있는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늦게 시작한 그분의 연주는 나에게 나이는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오히려 시작의 시기가 늦었던 만큼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으로 하고자 하는가'다. 그분의 연주에서 느낀 감동은 완벽한 소리가 아니라, 늦었어도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와,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려는 마음이었다. 삶에서 진심으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순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아름답다. 그래서 늦었다고 여겨지는 때에도 우리는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심을 담아 한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다.
요즘 매일 글을 쓴다. 어렸을 때부터 쓰던 일기장에서 시작된 글쓰기가 이제는 내 일상이 되었다. 특별히 대단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무언가 쓰고 싶다는 간절함이 나를 계속 쓰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큰 기쁨을 느끼고, 내가 조금 더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도 생긴다.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바흐나 모차르트를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시작을 망설일 이유가 될 필요는 없다.
시작은 작아도 된다.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한 음이 나만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피아노는 우리 삶에 새로운 색을 더해줄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다. 그 친구와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은 우리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다. 피아노 앞에 앉아 첫 음을 울리는 순간, 그것은 단지 소리의 시작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다. 때로는 주저하는 순간이 우리를 멈추게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무언가를 시작할 이유가 된다. 마음을 열고 한 발 내딛는다면, 그 작은 용기가 우리의 이야기에 또 다른 장을 열어 줄 것이다. 그 소리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진심으로 울린 한 음은 여전히 오래 남듯이, 어쩌면 피아노는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은 때라고.
건반 밖 엄마,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