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훈육
집에서 줄넘기 학원까지 어른 걸음으로 아무리 빨리 걸어도 오분이 넘는다. 조깅하듯 뛰어도 오 분은 걸릴 거리였다.
처음 스스로 학원에 가려 집을 나서는 아이에게 당부했다.
"절대 뛰지말고 걸어가. 비탈길은 위험하고, 추운 날엔 길이 살짝 얼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꼭 걸어가야 해."
아이는 자신있게 알았다고 대답하며 신나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닫았다.
오분이 채 지났을까? 줄넘기 학원에서 알람이 울렸다.
'ooo 원생이 16:57에 등원하였습니다.'
잘 도착했다는 말, 너무 감사한 말인데도 속에서는 불이 났다. '뛰었나? 내 말을 듣지 않았나? 넘어지면 어쩌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무사히 도착한 게 다행인데도 나는 걱정과 의심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수업이 마치고 학원 차량을 타고 안전하게 도착한 아이에게, 들어오자마자 물었다.
"아까 학원 갈 때 뛰었니?"
"아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전혀 아니라고 부정했다.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5분 만에 학원에 도착해? 신호등도 두 번 건너고, 엘리베에터도 두 번 타야 하는데. 아무리 바로 와도 엄마 걸음으로 5분도 더 걸리거든."
뛰었다는 대답을 이끌어내려 던진 미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아니”라고 답했다. 분명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뛰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증명할 방법도 없고, 계속 캐물어도 아이가 인정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뛰지 않았으면 다행이야. 절대 뛰면 안 돼. 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나는 거야. 자동차도 늘 조심해야 하고.”
너를 믿어준다는 의미로, 내 염려를 다시 한 번 전했다.
일주일 후였을까. 아이의 일기장을 펴보았다.
‘줄넘기 학원에 뛰어서 갔다. 버스 안타고 처음 가는 길이라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엄마는 귀신같이 다 알았다. 그래도 엄마가 걱정할까봐 안 뛰어갔다고 했다.다음부터는 안전하게 다녀야겠다.’
나는 사실 내 말이 백 퍼센트 맞다고, 정답이라고 애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내 진심은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되었을 것이다. 아이가 거짓말을 한 이유를 취조하듯 물었을 테고, 거짓말은 아주 나쁜 거라고,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게 거짓말이라며 생각보다 큰 훈육이 되었을 거다. 그런데 그 훈육에는 진짜 '널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 라는 마음이 담겼을까, 아니면 '네가 거짓말을 한 게 화가 난다’ 는 감정이 더 많이 담겼을까.
이 아이는 걷는 적이 없다. 항상 뛰고, 넘어지고, 또 뛰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철렁 내려앉는다. 다칠까 봐, 혹시라도 큰 사고가 날까 봐, 늘 뛰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런데도 아이가 그 약속을 어기면 속상함을 넘어 화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거짓말을 믿어줄 수밖에 없었던 건, 내가 없는 곳에서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까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네 말이 그렇다면 그런 거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득, 거짓된 훈육보다 믿어주는 거짓말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해서 널 다그친다’는 나의 거짓말보다, 뛰고 싶어서 뛰었지만 솔직히 말할 수 없었던 아이의 거짓말을 믿어주는 것. 아이가 알 수 없는 나의 교묘한 거짓말보다, 뻔히 알 수 있는 아이의 거짓말이 훨씬 선하다.
옳음을 무기로 내 감정을 정당화하지 않아서 참 다행인 날이었다.
건반 밖 엄마, 서나송